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문단 편집) === 종교 ===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탄생한 곳이다. 해당 문서 참조. 2023년 현재 종교별로 [[가톨릭]] 18.1%, [[개신교]] 16.2%, [[이슬람교]] 3.9%, [[무종교]] 60.8%다. 무종교인 비율이 높은데 특히 젊은 층은 사실상 거의 다 무종교인이다. 20세기 중반 ~ 21세기 초반에 들어서 무종교인은 증가하고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인들의 비율은 대부분 점점 감소하는 추세이다. 무슬림들은 대부분 튀르키예나 구 유고 출신 이민자나 난민 및 그 후손 출신이다. 특히 무종교인은 20세기 후반 ~ 21세기에 매우 빠르게 증가했으며 개신교와 가톨릭 인구 모두 2010년대 후반에 20% 미만으로 감소했다. 독일은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정교분리가 이루어져 [[국교]]는 없다. 다만 역사적 전통을 존중하여 국가는 교회의 재산권과 신자에 대한 종교세 부과를 인정하며 교회활동의 유지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개신교는 독일 인구의 16.2%인데 전통적으로 북부 지역에서 강세이며, 대부분 EKD{{{-2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독일 복음주의[* 여기서 '복음주의'는 영어권 신학의 [[복음주의]]와는 다른 의미다. 독어권 신학에서 '복음주의'는 '개신교'와 동의어이다.] 교회)}}} 소속이다. [[가톨릭]]은 18.1%를 차지하고 남부·서부에서 강세다.[* 그 외에, 농촌에서 가톨릭을 믿고 도시에서 개신교를 믿는다는 도식화도 있지만, [[막스 베버]]의 테제{{{-2 (개신교가 자본주의 정신을 고무시킨다)}}}가 실증적 데이터에서 반박이 쌓이면서 학자들은 이런 도식화와 거리를 두고 있다. 경제력 차이는 종교보다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경제 헤게모니가 넘어간 장기적 추세에 더 가깝다는 갓이다.] 동부의 구 동독지역은 [[국가무신론]]의 영향으로 종교적 색채가 엷다.[[https://commons.m.wikimedia.org/wiki/File:Religious_denominations_in_Germany,_2011_Census,_self-identification_of_the_population.svg#mw-jump-to-license|지도]] 다른 나라와는 달리 천주교-개신교 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독일 교회의 특징이다. 그 외에 소수 교파로서 장로회· 침례회나 독립 루터회[* EKD 소속이 아닌 루터교회를 말한다. EKD 소속 신자의 대부분은 루터주의 성향이지만, EKD 자체는 엄연히 루터주의, 칼뱅주의 등을 독일 정체성을 매개로 한 울타리에 넣은 '연합' 체제이다. 때문에 이러한 연합에 동의하지 않는 루터주의자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가 칼뱅주의를 포괄한 연합 체제이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따로 남은 칼뱅주의자들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등 자유교회(Freikirche)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구 [[동독]]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개신교가 우위였지만 이웃한 [[체코]]와 마찬가지로 공산정권 40년의 영향으로 무종교인 비중이 높다.[* 다만 폴란드와의 접경지대는 폴란드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개신교:가톨릭 비중이 2:1이었는데 지금은 1:1로 바뀌었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교회세와 각종 지원을 통해 [[물주|바티칸 재정의 20% 이상을 지원]]하면서 가톨릭계 안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사제 및 사제의 결혼, 이혼 및 재혼, 동성애 문제 등에 있어서 급진적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특히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기간 중에는 교회 안에 270개 [[낙태]] 상담소를 설치한 뒤 여성들에게 확인서를 발부하기 시작하면서(속칭 낙태 면죄부 사건) [[교황청]]과 3년 동안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교회가 분열되는 사태로 발전될 조짐까지 보였으나 마침내 독일 주교회의가 교황의 최후 통첩을 받아들여 낙태확인서 발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3년 동안 지속되던 교황청과 독일 천주교회 간 다툼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런 풍모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독일의 한 대교구의 종교개혁 기념 [[미사]] 중에 보수파 청년들이 항의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루터회 교인이자 동성애자인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의 합동(가톨릭[* [[몬시뇰]]]과 루터교회[* 루터회 목사] 공동 주최) 장례예식이 가톨릭 성당에서 치뤄지기도 했다. 이런 측면 때문인지 [[전통 가톨릭]] 성향의 신자들 중 일부는 '독일은 [[자유주의 신학|이상한 신학]]의 발원지다', '(게르만계인 [[한스 큉]]과 엮으며) 게르만은 영적으로 이상한 것이 나오는 동네다', '게르만(독일) 애들은 영성이 이상하다'며 경계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독일 가톨릭교회가 막나가는 곳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워낙 철학적 기반이 탄탄한 국가이다 보니,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사실상 대장님 소임을 맡고 있다.[*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 가톨릭교회는 최강의 집사를 보유한 셈이다.] 게다가 철학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모두 발달해서 우수한 신학자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그리하여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꼽히는 카를 라너, 교황이자 초 네임드 신학자인 [[베네딕토 16세]],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등 다른 나라 가톨릭교회가 부러워 죽는 슈퍼스타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리고 상기한 비판 중 '기념'은 그 대상이 긍정적일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 국가의 신학을 진보적이다 보수적이다 일반화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그런 경향성이라는게 있을 수는 있지만, 독어권 역시도 영어권처럼 아주 보수적인 신학자와 아주 진보적인 신학자가 공존하는 동네다. "독일 신학은 급진적이다/수구적이다"라는 프레임화보다는, 신학자 개개인의 성격을 조사하는게 훨씬 유익하다.] 독일 개신교는 2차대전 이후 EKD라는 교회협의회 체제로 개편되었으며, 11개의 지역 연합교단, 7개의 루터주의 교단, 2개의 칼뱅주의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소속된 신자들은 7%정도를 종교세로 납부해야 한다.[* 독일의 목사들은 평균적으로 한달에 한화로 약 500만원 가량을 안정적으로 번다.] 2011년 조사 기준으로 개신교 신자가 많은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55.7%)과 [[니더작센]](51.5%)으로 나왔다. 다만 실제 출석률은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한 자릿수대에 불과하다. 한국 개신교와 정반대로 독일에는 국민선동금지법이 있어서 근본주의적인 설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015년에는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를 비판한 브레멘의 한 목사가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 독일에서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할 경우 [[증오발언]] 내지는 혐오선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다. 독일은 그리스도교(천주교+개신교+기타 소수종파) 인구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지만 [[http://www.pewglobal.org/2013/06/04/the-global-divide-on-homosexuality/| 국민의 절대다수가 성소수자들에게 호의적인 국가이다.]]] 독일 정부는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탈동성애 운동|성 정체성을 바꾸기 위한 치료]]를 금지하기로 하고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1189570|#]]] 개신교 신학에서도 독일의 위상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한국의 개신교 고학력 목사 중 유학파는 영미권 아니면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찍이 마르틴 루터가 탄생하기도 했고,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디트리히 본회퍼, 루돌프 불트만 등의 신학자 라인업을 자랑한다. 독일에서도 그리스도교 외에도 소수의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중 [[https://en.wikipedia.org/wiki/Islam_in_Germany| 독일내의 이슬람교]]는 [[알바니아]],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튀르키예]],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 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주로 믿고 일부 독일인들중에도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비율도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로 독일에 정착했던 튀르키예인들이 이슬람 신자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는 [[유럽 난민 사태]]로 무슬림비율이 높아지자 독일은 교회세를 본따서 모스크세를 걷고 튀르키예, 이란, 사우디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0497716|#]] 또한, 독일정부는 외국인 성직자에 대한 입국요건으로 독일어 구사 능력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0672225|#]] [[유대교]]도 있었지만, 나치 독일의 탄압, 학살 등으로 유대인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불교]],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적지만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슬람은 [[이슬람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현대 정치 사상을 접목하여, 민주주의의 관용을 약점잡아 이슬람 근본주의를 전파하려는 정치 사상 체계]가 확산하면서 특히 논란이 많다. 그 이전에는 서독에 60년대부터 들어온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이 90년대 초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주민들과 마찰을 빚은 것이 사회 문제가 되긴 했었으나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독일 내 이슬람 이미지에 결정타를 날린 계기는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및 이를 두고 이슬람주의 선교사들이 강간범을 옹호[*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은 한겨울 1월 1일에 일어났는데도, 근본주의 선교사들은 __와하비즘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의 선교 자금을 바라는 목적__에서, 독일 여성들이 음란한 복장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덕분에 독일 내 모스크들에 대한 와하비즘 선교 재정 지원은 증가했으나 그 결과는 [[이슬라모포비아|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온건 성향 무슬림보다 와하비즘 국가가 선교 자금을 더 후하게 주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양심을 팔아먹었다 보면 된다.]한 일이었다. 이후 튀르키예의 강경 이슬람 성향 대통령 에르도안과 독일 사이의 외교적 갈등과 [[메수트 외질]] 논란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이슬람 이미지가 바닥을 쳤다.[* 결정적으로 외질이 2019년 결혼식 때 독일과 원수지간에 가까운 에르도안을 초청하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2020년 2월 17일에 독일에서 모스크를 표적으로 동시다발적 대규모 테러 공격을 모의한 극우 단체 회원 12명이 체포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3&aid=0009706924|#]] 2021년 1월 3일에 니더작센주의 오스나브뤼크대학이 4월부터 이맘을 육성하는 과정을 신설할것이라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211874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