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문단 편집) === 학술&과학 === 일반인에게는 흔히 철학과 이공계의 나라로 알려져있다. 미국이 유럽을 역전하고 압도하게 되는 [[194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학술과 과학의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였다. [* 이때까지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출신 학자들이 노벨상을 휩쓸었다. 영어권 대표주자 영국과 미국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영국은 그나마 독일 다음가는 과학강국이였지만, 미국과학은 [[1930년대]]에서야 독일과학을 제치고 세계1등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국가가 독일이다.[* 1등인 [[미국]]과는 격차가 좀 크지만, 4등인 [[프랑스]]와는 차이가 2배이상 크게난다.[[https://www.researchgate.net/figure/The-cumulative-per-country-number-of-physics-chemistry-and-medicine-Nobel-prizes-Prizes_fig1_324471967|#]] 영국과 2등자리를 두고 거의 박빙이다. 표면상으로는 영국이 미세하게 앞서고는 있지만, 이는 꾸준히 엎치락 뒤치락 해 왔으며, 복수국적 등에 의해 집게방식에 따라 다르고 , 영어권 국가들 사이 학술교류와 학계이동이 활발하다는 점과 사실상 미국학계에서 키워낸&개발해낸 국적만 영국이 껴있는 사실상 미국학자인 허수들을 빼면 두 나라 학계수준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수준인 편. 이공계 고급인력 양성수 역시 대등하게 두 나라가 유럽내 최선두를 달리고있다.[[https://www.google.com/amp/s/m.yna.co.kr/amp/view/AKR20181008149400098|#]]/[[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3320-2|#]] 여기서도 [[프랑스]]는 두 나라의 절반수준이다. 인구가 서로 비슷한 나라들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독일과 영국이 과학분야에서 강하고 잘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대학이 영국대학에 비해 세계 랭킹의 대학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는 독일대학이 영국대학과는 달리 서열평준화되어있어서 판별기준이 달라서이지 수준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 물론 무작정 노벨상 수상자와 과학기술력이 정비례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치당이 독일에 집권했을 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위시한[* 아인슈타인은 독일 태생이지만 독일국적을 버리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스위스에서 대학을 나와서 스위스에서 특허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그 뒤에 독일에서 연구활동을 한지로 애매하다.] 고급 인력들이 대거 미국과 소련으로 빠져나갔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처럼 독일에 남아 과학부 [[장관]] 자리에 올라서 독일 핵개발을 지휘했던 사람도 있다.] 패전으로 몰락해버렸음에도 다시 일어난 것을 생각해 보면 기본적인 기술 기반은 탄탄하다. 애당초 국가의 과학기술력이란 특출난 천재1명의 역할도 물론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그 나라 학계 문화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인력유출이 있다 하더라도 그 나라 전반적 과학기반이 어디가지는 않는다. 또,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지원의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있다. 현대에도 일부 분야에서 특출난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성기처럼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공학/과학/기술분야에서 [[영국]]과 더불어 유럽 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예를 들면, 막스플랑크 과학연구소가 스탠포드대와 더불어 노벨과학상 수상자 수 2위 기관이고, 독일 [[바이온테크]]는 미국 화이자/모더나와 함께 최첨단 과학기술인 mRNA 백신 개발의 선두주자이다. ][* 최근의 화두인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영국]]과 더불어 유럽 내 선두권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독일의 시대'''였다. 1991년 [[미국]]의 역사학자 노먼 캔터는 "20세기는 가히 독일의 세기가 될 수도 있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베를린에서 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참석한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도 이 세 사람이 모두 1878~1879년에 태어난 것에 주목하여 독일계 미국인 역사학자 프리츠 스턴에게 유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럴 수도 있었다'는 캔터와 아롱의 말에는 1933년 [[아돌프 히틀러]]라는 재앙이 닥치지만 않았더라면 이 시기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던 독일의 사상가, 예술가, 작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갓 통일되었던 조국을 누구도 꿈꿔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로 만들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 1848년부터 1933년까지의 시기에 활약한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계 인물들의 명단은 이를 잘 보여준다. {{{#!folding [ 인물 명단 펼치기 · 접기 ] * [[물리학]]: '''헤르만 폰 헬름홀츠''',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에른스트 마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하인리히 헤르츠]]''', '''[[빌헬름 뢴트겐]]''', '''[[막스 플랑크]]''', [[막스 보른]], 필리프 레나르트, 빌헬름 빈, 요하네스 슈타르크, 구스타프 헤르츠, [[리제 마이트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896년에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에서 대학을 다니다 1901년에 스위스 국적을 얻었다. 1914년에 다시 독일 국적을 얻었고 1933년에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40년에 미국 국적을 얻어서 1955년에 사망할 때까지 스위스와 미국 국적을 유지한다.], 막스 폰 라우에, 제임스 프랑크, 발터 마이스너, '''[[에르빈 슈뢰딩거]]'''[* 독일에서 연구를 했지만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 [[화학]]: 아돌프 폰 배이어, '''[[프리츠 하버]]''', 에밀 피셔, 오토 한, 카를 보슈 * [[수학]]: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에른스트 쿠머, 레오폴트 크로네커,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고트홀트 아이젠슈타인, 헤르만 슈바르츠, '''[[베른하르트 리만]]''', 리하르트 데데킨트, '''[[게오르크 칸토어]]''', 펠릭스 클라인, 펠릭스 하우스도르프, 페르디난트 폰 린데만, '''[[다비트 힐베르트]]''', 헤르만 민코프스키, 아르놀트 조머펠트, 이사이 슈어, 한스 한, '''에미 뇌터''', 리하르트 쿠란트, 헤르만 바일, '''[[쿠르트 괴델]]''', 카를 루트비히 지겔, 게르하르트 겐첸, [[에드문트 란다우]] * [[공학]]: '''[[지멘스|베르너 폰 지멘스]]''',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다임러|고트리프 다임러]]''', '''[[카를 벤츠]]''', [[카를 폰 린데]], '''오토 릴리엔탈''', '''[[루돌프 디젤]]''', '''[[보슈|로베르트 보슈]]''', '''[[포르쉐|페르디난트 포르쉐]]''' * [[의학]] 및 [[생물학]]: '''[[그레고어 멘델]]''', '''[[로베르트 코흐]]''', 파울 에를리히, [[루돌프 피르호]], 율리우스 바그너-야우레크, 아우구스트 폰 바서만, 에리히 폰 체르마크,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 * [[기상학]]: 블라디미르 쾨펜, [[알프레트 베게너]][* 기상학보다 대륙이동설로 더 유명하다.] * [[정신분석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아들러''', '''[[카를 융]]''', 오토 랑크, '''[[빌헬름 분트]]''', [[헤르만 로르샤흐]], 에밀 크레펠린, 빌헬름 라이히, 카렌 호니, 멜라니 클라인, 에른스트 크레치머, 게자 로하임, 야코프 브로이어,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 * [[철학]]: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프리드리히 랑에, '''[[빌헬름 딜타이]]''', 프란츠 브렌타노,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 '''[[프리드리히 니체]]''', 루돌프 오이켄, 헤르만 코엔, 빌헬름 빈델반트, '''[[고트로프 프레게]]''', [[알렉시우스 마이농]], 파울 나토르프, 한스 파이힝어, '''[[에드문트 후설]]''', 하인리히 리케르트, [[막스 셸러]], '''에른스트 카시러''', 오스발트 슈펭글러,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카를 야스퍼스, '''루카치 죄르지'''[* 헝가리인이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 출생해 독일에서 공부한데다 학술 활동도 독일어로 했기에 독일 철학에 포함한다.], 에른스트 블로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돌프 카르나프, 한스 라이헨바흐, [[모리츠 슐리크]], 오토 노이라트, '''[[마르틴 하이데거]]''', 헬무트 플레스너, '''[[발터 벤야민]]''', '''막스 호르크하이머''', 카를 뢰비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레오 스트라우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칼 포퍼]]''', '''[[테오도어 아도르노]]''', 아르놀트 겔렌, [[칼 구스타프 헴펠]], [[한나 아렌트]] * [[신학]]: 하르트만 그리자르, 아돌프 폰 하르나크, '''에른스트 트뢸치''', '''[[루돌프 불트만]]''', '''카를 바르트''', 카를 라너, '''[[디트리히 본회퍼]]''' * [[역사학]]: '''[[레오폴트 폰 랑케]]''',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 게오르크 바이츠, 빌헬름 폰 기제브레히트, 하인리히 폰 지벨, '''[[테오도어 몸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 한스 델브뤼크, 루트비히 폰 파스토어, 율리우스 벨로흐, 에두아르트 마이어, '''카를 람프레히트''', '''오토 힌체''',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게르하르트 리터, 프란츠 슈나벨,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오토 브루너''' * [[미술사학]]: 빌헬름 폰 보데, '''하인리히 뵐플린''', '''[[아비 바르부르크]]''', '''에르빈 파노프스키''', '''[[에른스트 곰브리치]]''' * [[법학]] 및 [[정치학]]: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로렌츠 폰 슈타인, 베른하르트 빈트샤이트, 루돌프 폰 예링, 파울 라반트, 오토 폰 기르케, '''게오르크 옐리네크''', 구스타프 라트브루흐, '''한스 켈젠''', '''[[카를 슈미트]]''', 헤르만 헬러, 카를 뢰벤슈타인, 에른스트 프랭켈, 오토 키르히하이머 * [[경제학]]: 브루노 힐데브란트, 빌헬름 로셔, 카를 크니스, '''구스타프 폰 슈몰러''', '''카를 멩어''', 루요 브렌타노, 카를 뷔허,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조지프 슘페터]]''', 발터 오이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사회학]]: '''페르디난트 퇴니스''', '''게오르크 지멜''', 베르너 좀바르트, '''[[막스 베버]]''', 알프레트 베버, 로베르트 미헬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카를 만하임''', '''알프레트 쉬츠''' * [[문학]]: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고트프리트 켈러, 테오도어 슈톰, '''테오도어 폰타네''', '''파울 하이제''', '''카를 슈피텔러''', '''[[아르투어 슈니츨러]]''',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프랑크 베데킨트''', 슈테판 게오르게, 하인리히 만, '''[[토마스 만]]''', 카를 크라우스, 후고 폰 호프만스탈, '''[[라이너 마리아 릴케]]''', '''[[헤르만 헤세]]''', 게오르크 카이저, '''알프레트 되블린''', '''로베르트 발저''', [[한스 카로사]], '''로베르트 무질''', '''[[슈테판 츠바이크]]''', '''[[프란츠 카프카]]''', [[고트프리트 벤]], 아르놀트 츠바이크, 발터 하젠클레버, 프란츠 베르펠, '''넬리 작스''', '''요제프 로트''', '''[[에른스트 윙어]]''', '''한스 팔라다''', 카를 추크마이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에리히 캐스트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음악]]: '''[[로베르트 슈만]]''', '''[[리하르트 바그너]]''', '''[[안톤 브루크너]]''',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브루노 발터, [[프리츠 크라이슬러]], 아르투르 호네거, [[파울 힌데미트]], [[쿠르트 바일]], 프란츠 레하르,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 [[회화]]: 막스 리버만, [[파울 클레]], 막스 페히슈타인, 막스 클링거, [[구스타프 클림트]], [[프란츠 마르크]], 로비스 코린트, 한스 아르프, 게오르크 그로스, 오토 딕스, 막스 슐레포크트, 막스 에른스트, 레온 파이닝거, 막스 베크만, 알렉스 야블렌스키, [[바실리 칸딘스키]][* 러시아 태생이지만 뮌헨에서 활동하며 현대 예술의 전환점이 된 추상화 분야에서 활약했다.] * [[고고학]]과 성서학: D. F. 슈트라우스, [[하인리히 슐리만]], 에른스트 쿠르티우스, 페터 호르흐하머, 게오르크 그로테펜트, 카를 리하르트 레프시우스, 브루노 마이스너. * 당시 독일의 [[기업]]: AEG, [[보슈]], [[지멘스]], 회히스트, [[메르세데스-벤츠]], [[다임러]], [[라이카]], [[크루프]], [[티센크루프|티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