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군/역사 (문단 편집) === 고대 === 게르만족은 원래가 호전적인 야만족이었다. 그 이미지의 역사는 고대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군을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개발살]] 내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현[[프랑스]] 일대의 [[갈리아족|갈리아인]]들이 그들의 잔인함과 군사적인 강력함에 두려워했다고 하며, 그 때문에 로마 제국의 힘을 빌리려다 [[로마]]에게 먹히는 단초를 제공했다.[* 단, 이건 게르만 군대가 갈리아 군대보다 강군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게르만인들이 겨우 철제 검 들고 '''우왕ㅋ굳ㅋ'''하며 부러질 때까지 써먹는 동안 갈리아인들인 사슬갑옷으로 무장한 정예 귀족전사계층까지 완성해 놓았다. 이는 게르만들이 유목민이었는데 비하여 갈리아인들은 정주민, 게다가 상당히 농업생산이 좋은 갈리아 지역 자체의 풍족함등이 기인했다. 그리고 갈리아는 게르만보다 더 빨리 기병대를 양산했다. 그러나 갈리아의 유력부족인 아르베르니와 아이두이가 '''자기들끼리 치고 박느라 귀족전사 계급이 싸그리 몰락'''. 이 참에 게르만족이 한 숟가락 걸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이 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고대 유럽의 지배자였던 로마 공화국과 제국 모두 게르만족을 제국의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주적으로 간주하였으며 게르만족의 군대를 상당히 경계하였다.[* 동쪽으로는 파르티아가 있었지만 파르티아의 경우 로마에게 있어서 게르만족 처럼 오직 전쟁으로만 해결이 가능한 적국이라기 보다는 외교로 어느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가상 적국으로 간주했다. 물론 적극적으로 서진을 추진한 사산조 페르시아가 등장하면서 바뀌었지만] 기원전 102년에는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 족이 알프스까지 밀고내려오며 로마 공화국을 위협하였으며[* 이때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무려 8만 명의 로마군이 몰살당하고 이 소식을 들은 로마 시민들이 겁에 질려 패닉 상태에 빠졌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킴브리 전쟁]] 항목을 참조하기 바람.] 저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반로마 갈리아인들의 강력한 지원세력이었던 게르만족을 소탕하기 위해 수차례 라인 강을 넘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울창한 숲을 활용한 게르만족의 공격에 적지 않은 손실을 보고 물러났다. 이때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게르만족은 로마군 기준으로 이미 말을 잘타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있던 갈리아인들보다 더 우수한 기병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카이사르는 자신의 최정예 경호대로 가장 신뢰하였던 제 10군단이 아닌 게르만족 기병들을 등용하였다. 이후 [[아우구스투스]]가 [[게르마니아 전쟁]]을 이르켜 [[티베리우스]]와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를 중심으로 하여 엘베강 서안까지 게르만족을 평정하나 싶었지만 정복 이후 속주 안정화작업을 맡은 후임 사령관 바루스가 게르마니아 실정에 맞지 않는 정책을 펼치며 민심을 잃었고 그 결과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전체 로마군 전력의 10%에 달하는 3개의 군단을 말아먹으며 게르만족은 라인강 서안의 영토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게르마니쿠스]]가 다시한번 엘베강까지 밀고 올라가는데 성공하지만 [[티베리우스]]는 앞선 바루스의 전례와 자신의 게르마니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엘베강 서안의 게르만족을 로마화시켜 속주로 삼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하여 철수를 지시하게 된다. 이후 로마는 국경지대 게르만족을 동맹부족으로 삼고 보조부대로 적극 채용하였다.[* 덕분에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유가 로마의 고귀한 문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인 게르만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로마제국의 역사를 제대로 배운다면 로마의 쇠락은 단순히 게르만족 유입이 아닌 정복 전쟁으로 유지되던 국가 재정의 불안전성, 군인들의 정치 개입, 사산조 페르시아의 등장과 훈족의 남하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세기부터 훈족이 서쪽으로 대량 이주하기 시작하며 로마군과 게르만족은 대규모 충돌을 거듭하는데 이때 로마군은 도나우강을 넘어 빈일대까지 게르만족을 소탕하는데 성공했지만 로마군 역시 피해가 극심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게르만족과 강화를 맺었다. 이후 3세기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이 내전으로 혼란한 사이를 틈타 빠른 기동력을 활용하여 판노니아 속주를 농락하였으며 251년에는 아브리투스 전투에서 데키우스 황제와 공동 황제였던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전멸시켰고 410년 로마를 약탈하는 일까지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