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군/외인부대 (문단 편집) ==== [[프랑스]] ==== 1940년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가 먼저 항복한 후 독일에 병합된 [[알자스-로렌]] 출신자가 주를 이루었는데, 순수 독일계거나 부계 또는 모계 중 어느 한 쪽이 독일계인 경우가 많다. [[잊혀진 병사]]의 저자 [[기 사예르]]에 따르면, 프랑스인 부모를 둔 자들은 전후 분류 과정에서 [[반역]]자로 분류되어 처형되었지만 자신처럼 독일인 어머니, 프랑스인 아버지를 둔 자들은 처형 대상으로는 분류되지 않고 [[한군두|프랑스군에 재입대]]하는 선에서 처분이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혼혈이 아닌 진짜 프랑스인들도 상당수 독일군에 참여하였다. 독일군에 입대한 프랑스인들은 원래 극우 파시스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나, 그저 군대에 다시 들어가 전투를 하고 싶어서 입대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에 등장하는 한 프랑스인 장교는 "어느 군대건 상관없다! 내 휘하에 다시 포병 중대가 들어온다는 게 중요해!"라는 멘트를 남긴 바가 있다. 전쟁이 끝날 때 [[무장친위대/부대일람#s-2.3.2|샤를마뉴 사단]] 소속 무장친위대원 12명과 국방군 소속 프랑스인 대원 1명이 [[필리프 르클레르]] 장군이 지휘하는 [[자유프랑스]]군 2기갑사단 병력에게 포로가 되었다. 르클레르가 이들을 심문하면서 "왜 독일 놈들 옷을 입고 있나!"하고 질책하자, 이들은 도리어 '''"그러는 댁은 왜 양키 놈들 옷을 입고 있소?"'''라고 패기 있게 대꾸했고, 이에 르클레르는 12명에게 재판이 없이 즉결 [[총살형]]을, 즉 포로학살을 저질렀다.[* 자기 친구 아들이었던 1명은 빼돌려서 살려줬다고 한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619311|#]]] 시체도 매장하지 않고 들판에 버려둬서, 사흘 후에 [[지나가던]] 미군이 보고 묻어줬다고. [[무장친위대]] 57/58 무장산악엽병 연대로 편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