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군/외인부대 (문단 편집) == 말로 == 대개 조국에 대한 배신자들이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경우라도 그 말로는 대개 좋지 못하다. 조용히 숨어서라도 살 수 있으면 다행이고, 조국이 히틀러 때문에 쑥대밭이 된 나라라면 반역자로 처형당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영국 의용군과 프랑스 의용군들은 대부분이 처형되었고, 100만이 넘는 소련군 출신 독일군 부역자와 전향한 의용군들도 대부분이 처형되거나 굴라그로 끌려갔다가 스탈린 사후에야 사면되었다. 다만 소련측의 부역자 처벌은 미국을 빼면 연합국 중에서는 놀랍게도 생각보다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에스토니아에서는 지금도 무장친위대 출신자가 존경을 받는다. '''소련 시절에 목숨을 건져서 살아남았다'''는 그 말이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은 소련/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독일군에 입대하는 것이 조국 광복을 위해 [[독립군]]에 입대하는 정도로 취급되었다. 이 나라들은 무장친위대 복무 경력을 자랑스럽게 떠벌릴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보아도 무방하며, 에스토니아 영화 [[1944]]를 보면 이러한 시각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고국으로 귀환하여 무사히 살거나 독일, 미국등 타국으로 이민을 간 의용병들도 적잖다. 주로 무장친위대에 입대는 했으나 전쟁범죄나 원한 살 짓은 하지 않은 사람들이 해당되는데, 냉전시기 깃발 바꿔 다는 데 성공한 자들은 이전의 지위까지도 유지한다. [[잊혀진 병사]]의 저자인 [[기 사예르]]는 고국으로 돌아가 회고록 집필을 하고 만화가로 살았으며 [[무장친위대/부대일람#s-2.3.1|비킹]]사단에 의용군으로 참전한 핀란드인 올로프 라구스는 1943년 고국으로 귀환하여 핀란드군으로 [[계속전쟁]]에 참전하여 돌격포병으로 활약, 후엔 은행가로 생을 마쳤다. 심지어 무장친위대에서 복무했던 핀란드인 [[라우리 퇴르니]]는 미국으로 귀화해 래리 알란 쏜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MACV-SOG]]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다만 침투작전 중 실종, 사망처리되었다.]. 그 외 상당수의 의용군이 처형당하지 않고 평범한 말년을 보내고 생을 마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