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인 (문단 편집) === [[해외]] 거주 독일계 ===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기 전까지는 [[독일국]] 국민을 '''제국독일인'''(Reichsdeutsche)[* 사실 [[라이히]]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 어렵다. 다만 [[영어]]에서 해당 단어는 Imperial Germans라고 번역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도 제국독일인으로 번역했다.], 독일국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독일민족을 '''민족독일인'''(Volksdeutsche)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단어가 [[나치즘]]에 이용되었던 관계로 현재는 사장된 구분법이고, 지금은 해외 거주 독일계를 Deutsche Minderheit라 부른다.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도 독일인들이 많이 사는데 이들을 [[독일계 러시아인]]이라고 부르며, 러시아로 이주, 이민을 간 독일인들의 후손이다. 주로 [[볼가강]]과 [[흑해]], [[발트해]] 연안에 많이 정착했다. 러시아의 황가였던 [[로마노프 왕조]]의 시조도 독일인이며 중간에 독일인인 [[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가 독일에서 건너와 [[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되기도 했다. 독일계 귀족들도 있었으며 러시아의 [[대도시]]에도 독일계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았다. 러시아의 [[남극]] 탐험가 벨링스하우젠, [[장군]] 베니히센, [[외교관]] 네셀로데 등이 독일인이었다. 덕택에 [[소련]] 건국 초기에 [[볼가강]] 유역에 [[볼가 독일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독일인들의 자치구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서 독일계 러시아인들 상당수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는 바람에 현재까지도 [[중앙아시아]]에도 독일인들이 제법 많이 살고있으며, 지금도 [[시베리아]]에는 독일인들이 모여사는 취락들이 존재한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독일로 돌아가는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수가 증가했다. [[독일 정부]]에서는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독일 귀환과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잔류한 독일인들을 지원한다.] [[하인리히]], [[헤르만]] 등의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이름들은 러시아에서 게인리흐[* 예:[[알렉산데르 게인리흐]].]와 [[게르만]] 등으로 불리는데 1기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게르만 그래프 역시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독일계 러시아인이다.[* 주의할 점은, 러시아 내에서 독일 뉘앙스의 이름은 과거 [[이디시어]] 상용자들, 즉 [[아슈케나지]] 러시아인들에게도 흔하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대부분이 추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독일계가 남아 있는 [[폴란드]](15만명)와 [[헝가리]](18만명), [[루마니아]](4만명)에서는 독일계 소수민족 대표를 그 나라 국회에 1명씩을 배출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폴란드:[[https://en.wikipedia.org/wiki/Ryszard_Galla|Ryszard Galla]], 헝가리:[[https://en.wikipedia.org/wiki/Imre_Ritter|Imre Ritter]]([[헝가리 독일인 국민자치정부]] 소속), 루마니아:[[https://en.wikipedia.org/wiki/Ovidiu_Gan%C8%9B|오비디우 간츠]] 의원이 독일계를 대표한다.(루마니아에선 하원의원을 스무 명 넘게 배출하는 최대 소수민족 헝가리계 말고도 18개 소수민족에게 하원 의석 각 1석씩을 보장한다.)] 또한 과거 독일은 과거에 [[남서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보유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향으로 현재 [[나미비아]]에도 독일인들이 살고 있다. [[독일계 나미비아인]] 역시 생각보다 많으며, 나미비아 내 [[백인]]으로는 [[아프리카너]]에 이어 두번째 규모의 민족집단이다. 나미비아 내의 [[독일어]] 사용 인구는 약 3만 명에 달한다. [[독일계 미국인]]의 숫자는 약 4천만에 이른다. [[1950년대]]부터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었고 덕택에 [[독일 흑인]]과 [[튀르키예]]계 이민자 등으로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 애초에 [[독일]]의 [[출산율]] 자체가 [[1970년]]을 기점으로 1명대로 떨어지면서 정체추세에 놓여있는데다가 출산율이 2명대 정도인 [[프랑스]]와 다르게 출산율이 1명대 중반 수준에서 좀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구유지가 안 된다. [[1990년대]]에는 [[독일 재통일|흡수통일]] 때문에 실업자가 넘쳐났을 때도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유로화]] 도입으로 경제가 회복추세에 놓이면서 독일 산업계에서는 많은 이민자들의 유입에도 인재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중.] 튀르키예계 이민자 출신 유명인의 예로, 축구선수 [[메수트 외질]]이 있다.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등 [[신대륙]]에 독일인 [[이민자]]들이 많이 건너갔다. [[독일계 미국인]]과 [[독일계 캐나다인]], [[독일계 호주인]], 독일계 [[뉴질랜드인]]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독일계 캐나다인은 그 유명한 [[저스틴 비버]]이다. 그리고 [[독일계 칠레인]]과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독일계 브라질인]] 등 [[남아메리카]]에도 독일계가 많다. 이는 [[스페인]], [[영국]] 식민당국의 이민 [[정책]] 때문이다. 다만 아메리카를 개척할때는 스페인과 영국에 묻어가는 편이었다. 아메리카를 정복했을때는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을 같은 군주가 통치했지만 얼마안가 별개의 왕이 통치하게 되었거, 별개의 왕이 통치했기때문이었고 영국도 독일본토의 하노버 왕국과 같은 군주가 통치했지만 영국으로 무게중심이 쏠렸기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