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돈가스 (문단 편집) === 소수설 === * 몇몇 책에서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GHQ]] 사령관으로 부임한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을 농업, 목축 위주 국가로 만들기 위해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시장에 일부러 적게 풀도록 한 것이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부족한 고기를 좀 푸짐하게 보이려고 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덴푸라]] 조리법으로 돈가스와 [[고로케]]를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이다. 하지만 돈가스든 고로케든 이미 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이전인 [[메이지 유신]] 시기에 도입되어 어느 정도 현지화되고 조리법의 틀이 잡혀 대중식으로 보급되었으므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이 시기에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보급된 요리들은 주로 [[밀가루]] 계열 요리이다.[[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510082041365|#]]] 굳이 따지자면, 돈가스에 채 썬 [[양배추]]를 곁들이는 건 [[전쟁]]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본래 돈가스에는 삶은 [[야채]]가 곁들여졌지만, [[요리사]]들이 징집되어 버렸기 때문에 야채를 일일이 조리할 일손이 부족해지자 생양배추를 썰어서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도 전쟁을 한참 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에는 이 설과 주류 설을 절충해서 "육식을 잘 안하던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고기 맛에 눈이 뜨자 수요가 급등한 고기의 물량을 해결하기 위해 포크 커틀릿을 [[어레인지]]해서 만들었다"라고 나온다. * [[일본]]은 [[불교]] 영향을 받았던 7세기 말 [[덴무 덴노]]부터 19세기 [[메이지 유신]] 전까지 약 1200년이 가깝게 육식 금지령[* 사실 원래의 [[불교]]는 육식을 금지하는 종교가 아니였다. 단지 '자신이 먹으려고 일부러 살생을 하는 것'만을 금지했을 뿐이므로, 자연사한 동물에게서 얻은 고기나 다른 사람이 자기가 먹으려고 살생했다가 시주로 나눠준 고기 같은 건 허용했다. 오히려 시주로 받은 고기를 거부하면 '신도의 정성을 무시하는 무례한 행위'로 죄악시했기 때문에 시주로 고기를 받았으면 남기지 않고 무조건 먹어야 했다. 이것이 [[중국]]으로 전파되던 도중 [[양무제]]가 [[사이비]] 불교에 빠져서 "불교 신도들은 육식을 하지 말라"는 황명을 내려버렸고, 이 상태로 변질된 불교가 한반도, 이후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불교가 육식을 금지하는 종교로 알려진 것이다.]으로 식육을 금기시하던 나라라, 국민들이 고기가 익숙하지 않기에 튀김 옷을 두껍게 둘러 고기처럼 보이지 않게 하여 내놓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다.[* 이런 주장들은 보통 [[일본 극우]]들이 "일본인은 고기를 먹지 않아 동물 도축하는 방법도 모르는 순한 민족인데 그런 일본인이 어찌 타민족에게 나쁘게 굴었겠냐?"라는 주장을 펼칠 목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애초에 약하고 기술이 부족한 것과 성격이 순한 것은 별 상관이 없다.] 다만 육식이 금지된 시절에도 일본에서도 육식을 하던 사람은 했다. 단지 큰 [[돼지]]나 [[소]]를 도살하여 먹는 것을 피했고, 그 외 다른 잡다한 고기들은 대체품으로 먹었다. 대표적으로 [[오리고기]]는 "물갈퀴가 달려 있으니 이건 [[생선]]이다"라면서 먹었고, [[토끼고기]]도 '(커다란 귀를 보고) 이건 날개니까 새다" 같은 식. 이 외에도 [[곰고기]], [[멧돼지]]고기 등도 먹었다. 다만 이것이 고기를 대중적으로 먹었다는 뜻은 또 아니기는 했고 독실한 신도들은 고기를 진짜로 안 먹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