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돈바스 (문단 편집) ===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 === 레닌 시절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소련]]이 세워지자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중심 도시 [[도네츠크]]를 중심으로 [[석탄]] 산업이 발달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돈바스가 재건되는 동안, 많은 수의 러시아 노동자들이 이 지역에 다시 거주하기 위해 도착했고, 이는 인구 균형을 더욱 변화시켰다. 1926년에는 639,000명의 러시아인이 돈바스에 거주했다. 1959년까지 러시아인 인구는 255만 명이었다. 1958년에서 1959년 사이 소련의 교육 개혁으로 러시아화는 더욱 진전되었다.[* 흐루쇼프가 스탈린식의 러시아어 획일화에 비판한다면서 부모와 학생들에게 어느언어로 가르칠지에 대해 선택권을 준것인데 소련에서 러시아어가 민족간 소통어의 위상을 가지고있었고 전국단위 매체에서도 러시아어가 쓰였기 때문에 이왕이면 출세를 위해 러시아어 학교로 보내는 현상을 확산시켜서 오히려 러시아화를 가속화시켰다.]1989년 소련 인구 조사 당시, 돈바스 인구의 45%가 러시아인이었다. 이들은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우크라이나 독립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