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남아시아 (문단 편집) === [[화교]] === 동남아시아는 중국과 가까운 지역이기에 [[중화권]]/[[중국인]] 혹은 [[대만인]]의 영향이 강하다. 실제로 중국계 혈통이 섞인 혼혈이나 실제 중국계가 곧 상류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좋은 예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및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중국계 태국인]]들이 경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은 베트남, 태국 등 [[인도차이나]]는 물론 [[인도네시아]]나 [[필리핀]]과도 인연이 깊다. 예를 들어 [[태국]]을 처음 통일하여 북부 란나 왕국을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룬 탁신대왕이 [[중국계 태국인]]이였으며 자바 섬에는 [[원나라]]의 자바 원정이 실패한 후 원나라군에 동원되었던 많은 남중국 주민들이 건너가 살았고 [[네덜란드인]]들은 중국인들을 통해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의 중심지는 당연히 자바 섬이었다. [[필리핀]] 독립 당시 중국계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활약했으며 필리핀의 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화교 후손이다. 사실 국가원수로 따지면 동남아시아 각국에 화교 출신은 매우 많았는지라 그뿐만이 아니라 페르난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도 똑같이 중국계 혈통이 섞였고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경우도 원래 차오저우인 가문 출신이다.[* 친나왓이라는 성씨는 태국에 동화되면서 만든 성씨다. 태국인들은 프랑스와의 오랜 인연으로 성씨가 동아시아와 달리 뒤에 오는 유럽식 성명을 쓴다.]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은 [[한자]]를 병기하며 [[전한]] 제국 ~ [[오대십국시대|오대십국]] 시기[* 거의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다!]에 중국의 1000년 지배를 받았으며 [[원나라]], [[청나라]] 시절에는 각각 몽골족+거란/여진족 기병의 동로군과[* 사실 몽골인들은 전원 귀족인 니룬으로 수가 적어서 고위급 지휘관이었고 하급 장수들은 금나라와 서요, 서하 유민들인 한족과 거란/여진인들이었으며 군졸들은 인구 수 많고 불만계층이 될 위험이 있던 한족들이 맡았다. 바투의 유럽 원정에서 몽골 통일 과정에서 축출된 외몽골, 남부 시베리아의 각종 [[튀르크]]계 부족들을 잡병으로 끌고 가고 위구르인이나 페르시아인, 한족 출신 하급 장수들이 이들을 지휘한 것과 똑같다. 인구 수가 부족한 몽골인들은 투항하거나 복속시킨 부족들을 잡병으로 동원해서 그렇다. 훗날 청의 팔기군도 한병이라 불리는 요양 출신 한족들이 대거 잡졸이었고 몽고병이라 불린 외번 내몽골 팔기군과 청병이라 불린 여진족 팔기군은 대우가 달랐다. 잡졸로는 야인여진 부족들이나 한족들 그리고 강홍립 휘하에서 포로가 되었던 조선인들뿐이었다. 원과 청 모두 상대국인 고려, 조선, 일본, 베트남과의 교지도 [[한문]]으로 주고 받았다.] 한족 수군[* 강남군이라 불리며 남송 항장 범문호 등의 지휘를 받았다. 남송은 [[문치주의]]로 군사력 전반이 약해 수만 개미떼처럼 많고 별 쓸모가 없었다.]으로 편성된 혼성부대 및 [[팔기군]]+ 한족 용병부대 녹영 수군이 침략을 시도했다 좌절되었고 [[명나라]] [[영락제]] 시기엔 중국의 속령으로 전락했다가 독립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은 [[유교]]의 영향력이 강하며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이다. 동아시아사에 베트남이 언급되어 간혹 이 나라를 동아시아로 잘못 아는 어린 세대도 존재한다.[* 노인 세대는 이갈리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정글에서 고생한 기억이 남아있으며 이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50-60대 중년층이나 그 밑의 주로 6차 교육과정을 공부한 30-40대 장년층은 베트남을 확실히 동남아시아로 인식한다. 6차 교육과정이나 7차 교육과정 초반 시절에는 동아시아사 같은 게 없었고 세계사로 퉁쳐서 베트남사가 동남아시아에서 태국, 자바와 함께 제일 먼저 소개되었다. 동아시아사 과목이 생긴 후 인식이 크게 달라진 어린 세대와의 차이점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 접촉이 적던 싱가포르는 정작 한자문화권으로 인식한 것과 다르다.] 동남아에선 나름대로 무력 최강을 자랑했던 [[미얀마]] 또한 [[쿠빌라이 칸]] 당시 [[원나라]]와 [[건륭제]] 당시 [[청나라]]에게 털린 쓰린 역사가 있었다. 몽골 침입 때문에 지금도 미얀마인은 중국인을 싫어하는 편이다.[* 몽골족이 중원을 통일한 원나라 때의 침략은 역시 여진족이 중원을 평정하며 벌인 조선에서의 [[병자호란]]과 같은 상황이라 대륙을 지배하는 몽골족은 물론 중국과 중국인 자체를 경계하고 꺼리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애초 쩐흥다오도 고생하면서 겨우 원나라의 대군을 격퇴시킨 것이다. 보통 미얀마인들은 한족, 몽골족, 여진족을 잘 구분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얀마인들은 원나라가 끌고 온 동로군 기병들과 청나라가 신뷰신을 잡으러 끌고 온 팔기군 기병들을 모두 접하며 중국인들을 두고 말 타고 여기저기서 도륙내고 다 빼앗고 다니는 잔악한 종족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민족 계통적으로는 미안마의 버마족은 티베트족이나 한족과 가깝다지만 [[유대인]]과 [[아랍인]]이 같은 셈족이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같은 동슬라브족인데도 불구대천지 원수가 된 것을 봐도 알겠지만 이것은 아무 관련이 없는 문제다. 그렇게 말하면 한국인과 혈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은 악연이 아주 뿌리깊은 일본인이다.] 파간 왕조가 망하면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미얀마 최초 독재자로 군부독재의 출발점이던 [[네윈]]도 화교 출신이었다는데 오히려 반중 폭동을 이용하기도 했다. [[필리핀]]도 의외로 꽤 일찍부터 무역중개지였던 탓에 많은 화교가 일찍 정착했다.[* 필리핀에서 원주민과 중국인의 혼혈은 [[상글레이]]라고 불린다. 일찍이 중국인을 접하며 동아시아틱한 얼굴의 필리핀 사람들도 꽤 많다.] 이 지역 나라들은 중국에 조공무역을 행했던 대표적인 국가들이기도 하다. 지금도 [[화교]]가 굉장히 많이 분포해 있는 지역이며[* 원주민과 중국인의 혼혈 [[프라나칸]]도 많다. 프라나칸 내진 페라나칸은 중국인 혼혈뿐만 아니라 인도-말레이 혼혈인 인도계 페라나칸도 많다. [[할리마 야콥]] 현 싱가포르 대통령이 인도-말레이 혼혈인 인도계 페라나칸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권의 상당 부분을 본인들에 비해 소수인 화교가 쥐고 있어서 이들에 대한 열등감 등으로 인해 화교에 대한 인식이 경계적이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은 몇몇 나라는 심지어 아예 법적으로 화교를 차별대우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같은 나라는 화교에겐 더 엄격하게 불이익을 가한다. 하지만 [[부미푸트라]] 정책으로 대놓고 말레이계만 우대하는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는 인도계에게도 똑같이 군다. 그리고 때론 폭동이 일어나 중국인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일도 벌어진다. [[말레이시아]]의 경우에는 아예 중국인이 많았던 지역이 도시국가로 반강제로 독립한 [[싱가포르]]라는[* 일각에서 알려지듯 일방 축출은 아니고 일방 축출 직전에 리콴유가 홀로서기를 결단하고 선제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 잔류할 방법은 당시 아예 없었다. 더 놔두면 타 지역들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라 말레이 연방 중앙정부와 싱가포르 주 정부가 모두 동의해 독립으로 결론을 냈다.] 케이스도 있다. 당연히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는 [[객가]]인 혈통이며[* 리콴유와 함께 싱가포르 독립의 아버지로 꼽히는 유수프 빈 이샥 초대 대통령은 [[말레이인]]과 [[인도계 싱가포르인]]의 혼혈인 페라나칸이었다. 이샥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싱가포르 달러]]에 인쇄되어 있다.] 지금도 싱가포르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70%나 되는 지분을 차지하는 중이다. 인도네시아에선 이러한 갈등이 격화되어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도 있었다. 이때 자바 섬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이 네덜란드에 동화되어 기독교 개종을 택하는 바람에 똑같이 기독교를 믿는 다른 소수민족들까지 싹 싸잡아 같이 죽여버렸다. 자바는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통치의 중심지로 중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보조해 식민통치를 사실상 주도해 예전부터 원주민인 자바인들의 원한이 깊었으며 전통을 어느 정도는 지켰던 수마트라의 중국인들이나 칼리만탄의 중국인들[* 이 둘이 중국 전통을 지키며 도교, 불교를 믿게 된 이유는 [[란팡 공화국]] 참조. 물론 수마트라 중국계 사회도 독립 후 이웃한 [[싱가포르]]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이 상당수 늘었다.]과 달리 자바는 중국인들이 전부 네덜란드에 동화되어 [[루터교]]와 네덜란드 개혁교회로 개종했는지라 종교적 원한도 상당했다. 인도네시아인들 대부분은 무슬림으로 이슬람을 민족주의에 연계했기 때문이다. 한편 [[태국]]의 [[중국계 태국인]]들도 인구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화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최소 10% 이상이고, 화교라는 정체성은 미미하지만 중국계 혈통이 있는 사람까지 친다면 사실상 [[중국계 태국인]]들의 인구 수는 절반 가까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도 태국 인구 상당수가 [[중국계 태국인]]으로 집계되기에 화교 영향력은 아주 강하고 아예 중국인들이 세운 도시인 [[방콕]]에서 중국어 간판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체성이 분명한 화교는 기존에 자리잡고 있던 사람들과 근대 이후 건너온 사람들로 나뉜다. 전자는 태국식 이름을 사용하고 동시에 중국 이름을 가진 경우도 꽤 있으나 대개 중국 기업들과 교류할 때 써먹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은 태국 문화에 더욱 익숙하다. 후자는 태국 정부가 펼쳤던 견제 정책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꽤 받았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태국 역시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극우적 성향의 군사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인데 더욱 극단적인 건 그들의 롤모델이 하필이면 [[일본 제국]]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더욱 극단적인 것은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게 협조하다가 축출당한 세력들이라는 점이다. 하여튼 범태국주의라 부를 수 있는 태국 문화의 동질성 구축 작업이 시작되면서 [[화교]]들은 생존을 위해 [[창씨개명]] 비슷한 현지화 노력을 통해 중국적인 면모를 버리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비교적 근래에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저런 화교 견제 정책을 펼쳤던 태국 총리 중에는 화교 출신도 있었다. 이런 견제 정책 때문인지 [[방콕]]의 [[차이나타운]]만 해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넓찍한 대로가 아니라 구시가지 한쪽에 틀어박힌 방콕의 한 골목이다. 물론 이 골목의 경우 주인은 당연히 [[중국계 태국인]]이므로 경제력은 꽤 되는 곳이니 빈민가로 오해하면 안된다. [[잉락 친나왓]] 및 [[탁신 친나왓]] 남매가 [[객가]] 출신 중국계 태국인이며 태국의 현 왕실인 [[차크리 왕조]], 즉 방콕 왕조의 기원도 모계가 중국계 진씨 형제의 후손이였다. 아유타야 왕조 역시 중국인 우통이 시조다. 탁신 왕조의 탁신대왕은 대놓고 중국인 혈통이었다. 이런 이유로 태국 정부의 화교 견제책과 별개로 [[중국계 태국인]]들의 경우는 돈을 많이 번 것은 물론 사회 지도층의 위치까지도 올라가게 되었다. 대신에 중국식 성명이나 한자 등은 모두 버리고 [[태국인]]으로 살아야 했다. [[호랑이 연고]]로 유명한 타이거밤의 창립자 후원후(湖文虎) 역시 중국계 태국인으로 그의 회사는 지금도 태국에 중심을 둔다.[* 이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공원이 타이거밤 가든으로 싱가포르에 하우파 빌라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홍콩에도 만들었으나 이쪽은 2010년 이후 코즈웨이베이 재개발로 헐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를 [[시진핑]]이 암묵적으로 지원하면서 반화교 및 반중 감정이 거세질 것으로 보였던 적이 있었다. 시위대가 중국 공장을 [[방화]]하기도 했다. 더 웃긴 건 군부가 [[서방]]을 향한 해명에서는 기존 정부가 너무 [[친중]]적이라서 중국의 [[꼭두각시]]가 되기 싫어서 행동한 거라고 했다. [[https://imnews.imbc.com/news/2021/world/article/6110997_34880.html|#]] 정작 중국,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며 이것저것 퍼준 주체는 다름이 아니고 미얀마 군부였다. 그러나 반중 감정은 군부의 잔인한 시위 탄압으로 대부분 시위가 실패하면서 억제되었다. 화교라고 해도 어린 세대에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잘못 인식해서 그렇지 '''동남아시아 화교는 이제는 해당 국가 국적을 갖고 해당 국가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냥 외국으로 취급한다'''. 당연하지만 [[중화사상]] 같은 건 희석된 지 오래이며 특히 화교가 70%인 싱가포르는 철저히 서양화되어 중국사를 학교에서 배워도 조상이 살던 남의 나라 역사라고만 생각한다. 당연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들에게 그냥 남의 나라, 그것도 싱가포르 안보를 위협하는 가상적국일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