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남아시아 (문단 편집) === [[원나라]]([[몽골 제국]])의 동남아시아 침략 === 의외로 [[몽골 제국]]을 구성하는 국가였던 [[원나라]]가 침공에 실패한 드문 지역이기도 한데 [[내몽골]] 및 [[만주]] 북동부 [[초원]]에서 [[말(동물)|말]] 타고 놀던 [[몽골인]] [[기병]]들이 동남아시아의 지형과 기후를 극복하지 못했을 거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몽골 제국이라고 해서 북쪽인 [[중앙아시아]] 초원에 대제국을 이룬 그 몽골 제국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 땐 이미 몽골족이 중원을 평정해 나라 이름을 원이라고 정해 눌러앉고 중앙아시아 쪽의 4한국과는 분할 상속으로 갈린 지 오래였으며 지리상 몽골 제국 계통의 중원 통일왕조인 '''[[원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원은 남중국까지 싹 쓸어버린 후 [[광둥성]] 방면으로 베트남 북부, [[윈난성]] 방면으로 [[미얀마]] 북부를 쳐들어오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원정대는 이 쪽 지리를 잘 아는 [[한족]]인 [[남송]] 출신 유민들로 구성되어 몽골족은 고위급 지휘관조차 찾아보기도 힘들었으며 군인들끼리도 한어로 소통하고 한문으로 교지를 주고 받았다. 베트남 쪽에 원나라가 항복 및 입조를 요구하는 으름장도 한문으로 적힌 문서를 통해 전달되었다.[* 비슷하게 고려 국왕에게 보내는 몽골 문서들도 전부 금나라 출신 한족 유민들이 한문으로 작성해 전달했다.] 안그래도 원의 남송, 고려, 일본 원정군은 대다수가 옛 금나라/서하 치하 한족들이 잡병 및 하급 장수들이었고 여기에 기병으로 여진족+거란족으로 구성된 동로군이 있었는데 동남아시아 원정은 수군이 주축이라 100% 남송 출신 항장들이 이끄는 한족 용병부대였다. 남송 출신 원나라 항장으로는 일본 원정에도 동원된 범문호가 대표적이었다.[* 훗날 똑같은 북방민족인 여진족 청나라도 미얀마 원정이나 삼번의 난 진압, 정씨왕국 토벌을 위한 대만 원정 등에 바다를 잘 아는 남중국 출신 한족들을 대거 동원했다. 이때 조직된 [[조총]]병으로 구성된 한족 용병부대가 청나라 후기 군사력 주축이 되는 녹영이다.]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싸워 격퇴한 나라들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는데, 먼저 [[쩐흥다오]]의 베트남이 있다. 이것은 베트남인이 중국 혹은 중국을 정복한 유목민 왕조를 격퇴한 여러 사례 중 하나다.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1000년간의 지배로 중국에 착취당한 경험이 있는 베트남은 중국을 매우 싫어하며 이후 [[송나라]], [[원나라]], [[청나라]]가 모두 쳐들어왔으나 전부 격퇴했다.[* 이전 서술과 달리 [[한나라]]는 실제로 [[베트남]] 북부에 교지군, 일남군을 두고 다스렸다. 물론 직할령은 아니고 사섭 같은 제후들에 위임했지만 그 사섭 등도 모두 중국계였고 중국식 문화를 이식했다. 그리고 송의 경우는 약체라고 베트남도 우습게 보기는 했다. 원나라의 경우는 말이 필요없이 남송 출신 용병들로 구성된 함대 하나로 먹으려다 크게 당했고 청나라 역시 기병 위주 팔기군이 베트남에서 전혀 먹히지 않아 패배했다.] 물론 국력에서 열세였던 터라 베트남도 중국 혹은 중국 대륙의 유목민 정복왕조들과의 전쟁에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장 저 원나라 침입 이후의 후유증도 심했고 [[명나라]] [[영락제]] 땐 일시적으로 나라를 먹히기도 했으며 청나라 팔기군이 쳐들어온 후에는 완전히 [[건륭제]]에게 복속했다. 또한 [[캄보디아]]는 사도(唆都, Sogetu) 원수가 [[참파|점성]](占城)에 행성을 설치한 이후 일찍이(1282년) 호부백호(虎符百戶) 하나와 금패천호(金牌千戶) 하나를 보내 이 나라에 도착했으나 붙잡혀 돌아오지 못했다는 기록이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 적혀있는데, 최병욱 교수는 이를 원의 침입을 나타내는 기록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정확히는 [[자바섬]]으로 원나라가 남송 출신 수군 함대를 보내 원정갔으나 실패한 경우다.[* 동남아시아는 아니지만 원의 침입을 격퇴한 예로 [[고려]]와 원이 연합해서 침공했으나 원정군이 [[큐슈]]에서 태풍에 쓸려가 살아남은 [[일본]]이 있다. 여원연합군의 원정은 [[화포]] 등 신무기와 몽골족, 여진족이 자랑하는 [[기병]], 고려군이 자랑하는 해군이 시너지를 일으켜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망하게 할 뻔하였다. 문제는 지휘관인 몽골족들이나 금나라인들은 [[태풍]]의 존재를 몰랐고 남송인이나 고려인들은 태풍을 알았으나 바다 폭이 좁은 칸몬해협을 건너는 일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으며 거기에 바다 항해에 부적합한 [[장강]]에 떠 다니는 강가용 배들을 징발한 탓에 태풍에 완전히 쓸려나갔다는 게 문제였다. 일본은 역시 신이 지켜주는 나라라며 당시 태풍을 카미카제(神風)라며 찬양하기도 했다. 두 번째 침입 때는 일본이 미리 대비를 잘해서 꽤 잘 싸웠다고 했는데 어디까지 여진-거란 기병과 금나라 및 서하 출신 한족 유민들로 구성된 동로군을 상대로만 기병 저지력을 확보해 잘 싸운거지 왜구 하면 이골이 날 정도로 상대해 온 고려군에겐 쨉도 안 되었다. 일본인들 스스로 고려인들이 원나라인들보다 잘 싸운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다시 태풍이 불어 연합군의 배가 모두 쓸려나갔기 때문에 묻힌 감이 있지만, 태풍이 불기 전까지 연합군의 공세를 잘 막아냈다.] 도서부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는 바다라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였다. 원나라의 수군이 북방 왕조라 미약한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남송 출신 항장들이 지휘하는 한족 용병부대인 강남군은 별로 사기가 높지도 않았으며 남송은 오랜 기간 문치주의를 택해 전력 자체가 보잘 것 없었다. 중국 중부와 남부에서 남송 재상 가사도가 원군을 고전시켰던 건 맞지만 막상 어딘가를 쳐들어가는 원정을 벌이기엔 애석하게 그들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애산 전투]]라는 피흘리는 접전으로 정복당한지라 남송 용병들은 어떠한 모티브가 없었고 되려 태업을 하면 하기 일쑤였다. 거기에 원나라 침입으로 수많은 송나라 유민이 배 타고 동남아시아 곳곳에 내려가면서 본이 아니게 이들이 원군 침입 정보를 흘리고 다니기도 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경우엔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는 므당 왕국이 멸망하고 [[마자파힛 제국#s-3.3.5|싱하사리 왕조]]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왕이었던 크르타나가라(Kertanegara)가 원에서 조공을 바치라는 사신이 오자 사신들의 코를 자르는 대형 어그로를 끌었다. 그러자 분노한 원세조 [[쿠빌라이]]가 크르타나가라를 응징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토벌 대상이었던 크르타나가라가 이전에 싱하사리 왕국에 복속되었던 크디리(kediri)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원군은 크르타나가라의 사위 라덴 위자야와 손을 잡고 크디리군을 무찔렀다. 하지만 라덴 위자야가 원군의 뒤를 쳤고, 이로 인해 원나라 군은 자바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렇게 라덴 위자야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바로 그 유명한 '''[[마자파힛 제국]]'''이다. 이때 원나라 군은 몽골이라는 이름과 달리 한족 수군이 주축으로 자바 원정에 나섰으며 남송 항장인 범문호가 대원수를 역임하며 남송군이 전면에 나섰으나 문치주의가 중심이던 남송의 군사력이 보잘 것 없던데다 남중국 수군인 강남군은 이미 일본 원정으로 전력을 대거 깎아먹은지라 자바인들에게 크게 패배했다. 강대국인 중국마저 [[여진족]] [[금나라]]와 탕구트족 [[서하]], [[한족]] [[남송]], [[윈난성]]의 묘족들이 세운 대리국에 거란족 [[요나라]] 잔당이 만든 서요 및 대요수국 등까지 죄다 몽골족에게 [[개발살]]나고 몽골족이 중원을 평정한 것을 생각하면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고는 해도, 좀 놀랄 만하긴 하다. 물론 미얀마는 나라가 멸망했고, 베트남도 멸망 직전까지 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중원을 평정한 몽골족의 [[원나라]]를 물리친 것으로 중국의 침략을 격퇴한 사례에도 들어간다. 참고로 이 때쯤 몽골 제국은 분할되었다. 원나라와 4칸국이 존재했으며 동남아시아는 [[윈난성]]과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의 양광지방을 기점으로 [[원나라]]가 찝쩍거렸다. 이때 원은 중국 통일왕조 최초로 [[대만]]에 가기도 했으나 경영은 못 했다. [[하이난 섬]]을 완전 장악한 것도 원대 일이다. 그리고 4칸국 중에선 [[일 칸국]]이 [[맘루크 왕조]]의 이집트와 맞붙었고 소수의 군사로 껄쩍거리다가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맘루크 왕조에게 제대로 박살났고 이후 아프리카 쪽으로는 일 칸국은 진출도 못했다. 되려 일 칸국과 원수지간인 킵차크 칸국이 북쪽에서 쳐들어와 빈집털이까지 했다. 애초 일 칸국과 킵차크, 차가타이 칸국 등 중앙아시아 족 4칸국은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오고 같은 알타이계 기마민족인 [[튀르크]]에 완전히 동화되어 왕족 혈통만 보르지긴이지 이슬람교 믿고 [[터키어]] 계열 언어나 [[페르시아어]]를 쓰는 몽골-튀르크 이슬람 국가들로 변모했다. 한편 [[베트남]]은 [[당나라]] 멸망 후 [[오대십국시대|혼란]]을 틈타 [[응오꾸옌]]에 의해 독립한다. 그리고 이후 중국의 여러 차례에 걸친 침략을 격퇴했다. [[송나라]], [[명나라]] 등 [[한족]] 왕조들은 물론이고 [[원나라]] 및 [[청나라]] 등 이민족 왕조들까지 거하게 썰려나갔다. 그러다 [[명나라]] [[영락제]] 시기에 점령되어 일시적으로 명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나 [[레러이]]에 의해 [[정글]]과 늪지대에서의 게릴라전으로 간신히 다시 독립하였다. 청조 역시 [[팔기군]]의 침입을 물리치긴 했으나 곧 만주족의 중원 평정 통일왕조 청과 싸우는 게 버거워서 조공국을 자처해 청의 조공국이 되었다. 애초에 [[청불전쟁]]부터가 [[청일전쟁]]과 비슷한 해당 지역에 대한 영향력 다툼이다. 아무튼 이런 역사 때문에 [[베트남인]]은 중국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편이며 [[베트남인]]의 중국을 보는 관점은 일본을 보는 한국인의 관점과 비슷하다. [[중월전쟁]] 참조. 그러나 양국 관계는 트럼프 등장 후 미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가 크게 파탄나서 [[2017년]] 이후 급속히 긴밀해지는 중이다. 트럼프가 TPP를 멋대로 파기하여 베트남과 미국의 사이가 멀어진 탓이다. 그리고 [[미얀마]]는 원나라 침입 때문에 나라가 황폐화되어 지금도 미얀마인들이 중국을 싫어한다. 중국 하면 접촉도 별로 없던 한족보다는 몽골족의 원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부터 떠올리며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끈질기다고 생각한다.[* 원나라의 동로군에 편성된 대규모의 여진-거란 기병이나 청나라 팔기군에 의해 다 빼앗기고 다 죽임당하며 중국인은 말 타고 다니며 약탈하고 도륙내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침략자로 인식했다.] 물론 군부 정권이 다스리던 [[아웅산 수지]] 이전에는 완전 친중 국가라고 불렸다는 반론이 있었는데 친중을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만 그렇고 일반 국민들까지 중국을 무조건 좋아하지 않는다. 군부 정권조차 무조건적인 친중은 아니며 탄 수웨가 자신을 지지해주는 중국을 향한 립서비스에 가까웠다. 구 군부 정권 하 미얀마와 중국 간 관계는 다음 한겨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296421|한겨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214&aid=0000598842|MBC]] 반면 이웃의 [[태국]] 즉 시암은 알아서 '''원나라의 조공국'''을 자처, [[수코타이]] 대왕이 원 사신을 접대하고 알아서 입조할 것을 자처해서 원나라군의 말발굽에 밟히지 않고 중국 남부지역과 평화롭게 무역만 했다. 현재도 태국은 중국과의 사이가 좋은 편이다. 원나라 침입을 겪지 않았고 후대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도 거리가 너무 먼 데다 청을 자극했던 신뷰신과 달리 태국은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어 청나라와는 남방을 통해 무역을 전개해 돈을 벌었다. 청나라에서는 활을 만드는데 필요한 수우각궁면 즉 [[물소]]의 뿔을 원래 전쟁으로 패망시켜가며 입조시킨 조공국 조선을 통해 류큐에서 사오도록 삥뜯었다가[* 이때 조선도 [[물소]]가 서식하지 않아 류큐에서 사와야 했으며 일본이나 명나라를 거쳐 다시 류큐에 가는 중계무역을 해야 해서 국력 소진이 매우 심했다.] 태국과 무역이 전개되자 태국에서 주로 수입했다. 참고로 미얀마의 [[버마인]], 태국의 [[타이인]], 베트남의 [[킨족]]은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 남부에서 내려온 민족들이다 [* [[한민족]]이 [[만주]]에서도 있다가 내려온거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동아시아인들보다 [[갈색 피부]]이거나 [[키(신체)|키]]는 작지만 생긴게 비슷한 사람들도 꽤 많다.[* 반대로 거기서는 [[동아시아]]인은 [[눈(신체)|눈]]이 작다는 편견이 좀 있다] 물론 태국 등에서도 동아시아인과 완전히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과거부터 유입된 [[중국계 태국인]]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5대10국의 혼란을 피해 인도차이나로 많이 내려갔으며 이때 주로 간 나라가 태국과 라오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