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군 (문단 편집) ===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 이후 === 4~5세기에 들어서서 [[서로마 제국|제국의 서부]]에는 구멍이 송송 뚫렸다. 서로마가 멸망하기 이전에 이미 그들의 군제는 무너질 대로 무너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야만족의 침입으로 병력 소모가 가속화되자 부족한 코미타텐세스 부대를 보충하기 위해 리미타네이에서 병력을 끌어오고 부족한 리미타네이 인원은 다시 제국 내 떠돌이 야만인이나 빈민, 노예, 검투사 등을 끌어와서 보충하는 등을 통해 병력의 질이 점점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에서 동분서주하던 [[스틸리코]]가 호노리우스 황제에게 암살당하는데, 이런 막장 행각에 반발하여 그의 휘하에 있던 서로마 중앙군은 탈영 후 서고트족에게 붙어버리고, 설상가상 군대를 유지하기위한 주요 세수 수입원이었던 북아프리카 지역 중 핵심인 카르타고 지역이 반달족에게 넘어간다. 또 서로마 정세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흔들리면서 정규군 재건 가능성까지 완전히 망해버린다.], 동방에서는 [[오도아케르]]의 찬탈 이후에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개혁한 군제는 지속되었다. 단지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숙적은 게르만 대이동의 주역인 [[고트족]] 약탈자들이나 [[훈족]]보다는, 바로 시리아 코앞에서 코카서스의 소국들과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두고 제국과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사산 왕조]]였다. 6세기가 되자, 제국은 실지 수복에 박차를 가했고, 대 사산 왕조 방어 및 서방 지역의 고토수복을 위한 새로운 군제개편이 벌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