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명왕 (문단 편집) == 분석 및 현대의 인식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20435&cid=50223&categoryId=51051|출처#]] 결국 고구려, 부여의 설화가 구분되지 않았던 이유는, 전체적인 줄거리가 비슷한 데다 부여의 동명왕과 고구려의 동명성왕(고주몽)은 왕명도 같아 구분하기 쉽지 않고, [[고구려]]가 부여에서 파생되어 길게 존속했다는 점에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덜한 부여의 동명이 고구려의 주몽으로 귀속되어 두 인물이 한 명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바라보아진다. 이에 대해 '동명왕'이라는 호칭 자체가 당시에 '태조'를 뜻하는 부여계 고유어라서 부여와 고구려 양쪽에서 '동명' 왕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 있다. [[조선]] 후기 이러한 현상에 의문을 품은 [[정약용]] 등의 [[실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비판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한민국]]에 들어서도 기존의 동일인물설에 비판이 가해지는 상황이다. 일단 부여가 고구려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건 참이기에 부여 건국설화가 고구려 건국설화보다 앞선다는 것 역시 사실이며, 고구려 <주몽 설화>는 부여 <동명왕 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 현대인의 시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