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아역사재단 (문단 편집) ==== 삼한의 위치 문제 ==== 가장 어이없는 논의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하자면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한반도에 있지 않고 [[요동]]을 비롯한 만주에 있었는데 이를 지도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실로 대륙삼국스러운 주장이다. 이덕일이 언급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 한(韓)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 >《[[위서]]》동이전 [[한반도]]는 사방 4000리에 달하지 않으니 삼한은 [[만주]]에 있었다는 주장인데, 살펴보면 기사의 기본설정부터 잘못되었다는걸 알 수 있다. 사방이 4000리(1570km)에 달하면서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막힌 '''그런 지형은 [[동아시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덕일은 사방 4000리에만 주목해서 이런 내용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게다가 같은 책의 '왜인전'을 보면 [[대마도]](남북 70km, 동서 15km)를 사방 400리(160km)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중국인들이 특정 지역의 '둘레'를 '사방'으로 잘못 적은게 아니라면 그저 그 당시 중국인들의 무지함만을 증명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 삼한의 방위와 위치는 대개 지금의 [[심양|봉천]] 동북에서 길림 일대에 준해 있었고, 조선에 접해 있던 땅이며, 우리나라의 [[누르하치|국조]]가 처음 터를 잡았던 곳과 가까운 곳이다 >---- > 《[[만주원류고]]》 이외의 이덕일이 언급한 만주원류고에도 실제로 삼한이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만주원류고 자체가 [[일본서기]]처럼 [[청나라]]의 프로파간다 목적이 있는 책이고, 삼한이 있던 때보다 한참 뒤인 [[1777년]]에 완성되었으며, 중국의 [[동북공정]]처럼 과거 한국계 국가들을 [[만주족]]의 조상으로 편입시켰다는걸 감안하면 만주원류고를 한국의 상고사를 이해하는 일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고조선과 고구려는 자국사로 넣기 껄끄러웠는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애초에 이런 기록은 다른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와 전혀 부합하지 않아 교차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한국의 [[족보]]들처럼 사학계에선 진지하게 논의되지도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