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유럽/문화 (문단 편집) ==== 헝가리의 후사르 ==== [[세르비아 공국]]에는 전통 병과로써 도둑, 약탈자를 뜻하는 구사르(Gusar) 경기병이 있었다. 이들은 나무방패와 금속 패딩, 창으로 무장하고 기사들을 2선에서 지원하는 경기병들이였는데, 전장에서는 주로 기사들을 지원하는 지원병으로 보조적 임무를 맡았고, 전방에서 척후임무 및 적이 패주할 때에 추격전을 벌이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임무는 후의 후사르들이 맡은 것과 유사했다. [[오스만 제국]]이 14세기 말~15세기 초에 [[세르비아 공국]]를 공략하면서 다수의 세르비아 전사들이 [[헝가리 왕국]]으로 이주해갔고, 최초의 후사르를 형성하는 인적 기반이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Than_tapiobicskei_utk%C3%B6zet2_1849_aprilis_4.jpg]] [[헝가리]]에는 중세시기부터 전통적으로 오랜 경기병 전통이 있었다. [[동로마 제국]]이 10~11세기 무렵에 이지역에서 '호사리(Chosarioi)'라는 용병 경기병들을 모집해 전장에서 활용할 정도였다. 여기에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제압되면서 많은 수의 세르비아 전사들이 헝가리로 이주했고, 이로 인해 세르비아의 병제가 헝가리로 대거 유입되면서 '후사르'라는 경기병 병과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조직적으로 편성한 것은 [[야노슈 후냐디]]의 아들이자 헝가리의 왕이 되어 헝가리의 마지막 전성시대를 열었던 [[마차시 1세|마챠시 1세 코르비누스]](Matthias 1 Corvinus)[* 재위기간 1458~1490(헝가리 왕), 1486~1490(오스트리아 대공, 보헤미아 왕 겸임)]로, 국왕 친위대인 '검은 군대'[* 1458년에 창설되어 1494년까지 활동한 상비 용병군으로, 전성기 때에는 병력이 28,000명에 달했다. 중앙 유럽 정복 활동 등 마티아슈의 군사 활동에서 크게 활약했으며, 기병 강국 헝가리답게 기병이 2만에 보병이 8천이었다고 한다. 다만 보병 가운데 25%가 총병이었다는 점도 중요한데, 검은 군대가 해산되고 10년이 지나 16세기로 바뀐 뒤에도 서유럽의 전체 군대 가운데 총병의 비율은 10%에 불과했기 때문. 또한 당시 유럽에서는 헝가리와 오스만 제국을 제외하면 상비군을 거느린 유일한 나라가 프랑스였는데, 그나마도 전원이 중기병에 그 수도 수천 명에 불과했다.]에 주력 경기병으로 조직화, 편성한 것이다. 이들은 마챠시 1세의 정복활동 기간중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과 대등한 전투력을 지녔음을 입증했다. 마챠시 1세가 헝가리 왕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대공 및 보헤미아 왕을 겸임하던 중 사망하면서 '후사르'는 동유럽 일대로 퍼져나갔다. [[쉴레이만 1세]]에게 헝가리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의 주요 경기병 병과로 존재했으며, 오스만 제국도 일부 이들 후사르들을 활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