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키콩(게임) (문단 편집) === 개발 비화 === 이 게임이 만들어진 계기가 여러모로 특이한데, [[게임&워치]]의 흥행으로 그동안의 적자에서 벗어난 [[닌텐도]]가 [[갤럭시안]]의 카피캣인 [[https://blog.naver.com/sunlin77/222598182379|레이더스코프]]라는 [[아케이드 게임]]을 [[북미]] 시장에 수출하려고 자신있게 3000대를 만들었으나 일본에서 미국으로 운반하는 몇개월 사이 북미 시장에선 유행이 지나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그중에 1000대만 북미시장에 판매되고 나머지 2000대는 [[악성 재고]]로 남게 되었다. 닌텐도는 [[창고]]에 골치덩어리로 쌓이게 된 레이더스코프 게임기의 악성 재고를 처리할 방법으로 이 게임기 기판의 소프트웨어만을 바꾼 후 아예 다른 게임기로 만드는 것을 생각했고 이를 위해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참신한 내용의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해 사내에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참고로 이 공모전을 제안한 사람은 [[요코이 군페이]]다.] 이 공모전에서 기획과에 소속된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 외에는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마땅한 인력이 없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프로그래밍을 외주로 두고 나머지는 스스로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뽀빠이]]를 소재로 쓰려했으나 [[저작권]] 협상 결렬 문제로 불가능했고,[* 그래도 끝내 저작권 협상에 성공했는지, 1982년 뽀빠이의 게임화를 내놓게 된다. 처음엔 아케이드로 나왔지만, 후일 [[패미컴]]으로 이식해져서 더 유명해졌다.] 영화 [[킹콩]]을 모티브로 고릴라 콩과 주인공 '''점프맨'''[* 후에 [[동키콩]]과 [[마리오(마리오 시리즈)|마리오]]로 바뀐다.]을 만들었다. 3개월 동안 작업한 끝에 게임을 완성한 당시 닌텐도 사내원들은 동키콩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결과물은 잘 알려진 대로 연 매출 1억 달러의 기업으로 성장시켜 닌텐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 게임을 계기로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야모토 시게루를 100명에 1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고 불렀다. --100명의 천재 중에 1명도 아니고 너무 과소평가하신 것 같은데-- 그런데 모티브를 [[킹콩]]에서 따온 게 저작권 문제를 일으켰는데, [[유니버설 픽처스|MCA 유니버설]]에서 닌텐도에 소송 협박을 걸며 동키콩으로 번 돈을 합의금으로 내놓으라고 했던 것. 당시 영세 완구회사였던 닌텐도와는 크기가 전혀 달랐던 MCA의 경영자이자 법률가였던 시드니 샤인버그는 킹콩의 저작권 문제로 여기저기 [[고소(법률)|고소]] 협박을 남발하여 돈을 뜯고 있었다. 주위에서도 닌텐도에게 합의를 종용했으나, 닌텐도는 합의를 재촉하는 유니버설의 태도를 수상하게 여겨 조사한 끝에 오히려 MCA 유니버설이 가진 킹콩 저작권의 맹점을 파고들어[* 원래 킹콩은 [[RKO 라디오 픽쳐스]]에서 제작한 [[킹콩(1933)]]이 원조였으며, MCA의 [[킹콩(1976)]]은 '''저작권이 만료된 뒤에''' [[리메이크]]한 영화판이다. 거기다 MCA는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메리안 쿠퍼(1933년판 킹콩 감독)한테 고소를 당하자 저작권 만료를 들먹이며 '''킹콩은 저작권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해 승소한 바가 있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MCA는 '''[[자승자박|없는 저작권을 가지고 닌텐도한테 고소를 한 셈]]'''. MCA의 저작권은 자신들이 만든 리메이크판에만 있지 원작 킹콩 저작권은 없고, 닌텐도 측은 원작 킹콩을 패러디했다고 하면 그만이니...] 승소한다. 이때 닌텐도 측의 변호사 존 커비는 후에 [[별의 커비 시리즈]]의 주인공인 [[커비]]의 이름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원래 플레이어 사이에서 돌던 루머였으나 이후 미야모토 시게루가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기념비적인 게임이자 사건이었다. 앞에서 서술한 대로 게임의 설계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했으나 실제 프로그래밍은 외주인 이케가미 통신기라는 회사[* 이후에도 한동안 닌텐도는 꽤 많은 수의 게임 프로그래밍을 외주로 맡겼었다.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같은 작품들도 프로그래밍은 외주이며, 닌텐도의 사장직까지 올랐던 [[이와타 사토루]] 역시 이런 외주 프로그래밍 업무로 닌텐도와 인연을 쌓기 시작한 인물.]가 맡았다. 현재는 [[도시바]] 그룹 계열로 방송용 장비등을 제조하는 회사인데, 1980년대에는 닌텐도나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의 실 제작을 하청받아 하고 있었다.[* 방송용 장비 쪽에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회사다. 방송 업계에서 사용되는 ENG 및 베타캠 카메라는 90년대 중반까지는 소니 아니면 이케가미였다.] 다만 이 게임의 성공으로 인해서 이케가미 통신기 측이 1983년에 닌텐도에게 저작권 침해 혐의로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닌텐도의 하청 계약이 계약서대로 정상적으로 이행됐다는 점을 들어 닌텐도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케가미 통신기는 그 이후로 동키콩의 소스 코드를 닌텐도에게 넘겨주지 않았고, 그래서 닌텐도는 [[동키콩 주니어]]를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만들어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서 아케이드판 오리지널 동키콩의 데이터에는 IKEGAMI라는 영문자가 거울처럼 뒤집힌 문자열과 ITC라는 이케가미 사의 로고가 [[더미 데이터]]로 숨겨져 있다. 또한 아케이드 일판 롬파일의 0x3F00 헤더에는 "[[스카우트|축하합니다. 당신이 만약 어렵게 이 프로그램을 분석했다면, 우리는 당신을 가르쳐 드리게 될 것입니다.]]"로 해석될 수 있는 영어 문자열과 함께 이케가미 사의 당시 전화번호와 사명이 나온다.[[https://tcrf.net/Donkey_Kong_(Arcade)#Hidden_Text|#]] ~~그 시절에 오락실 게임의 기판을 개인적으로 사서 롬을 덤프한 뒤 컴퓨터로 분석이 가능할 정도면 이미 다른 직업이 있지 않을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