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탁 (문단 편집) === [[후소제(후한)|소제]] 폐위와 폭정 === 정권을 장악하자 동탁은 가뭄을 이유로 사공 유홍을 면직시키고 대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자마자 [[태위]]로 승진한다. 그 뒤 동탁은 한 달도 안 되어 소제를 폐위하여 [[홍농왕]]으로 [[강등]]시킨 뒤 이틀 뒤 곧바로 [[이유(삼국지)|이유]][* [[삼국지연의]]에서는 이유가 동탁의 사위로 나와서 여러가지 꾀를 내주지만 정사에서 이유는 동탁과 별 관련 없는 사람이었고 동탁의 명으로 소제를 독살한 것만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유는 동탁보다 꽤 연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를 시켜서 소제의 모후인 [[영사황후 하씨]]를 함께 시해[* [[삼국지연의|연의]]에서는 그 이유가 유폐된 이후 '[[외톨이(노래)|날 구해줄 충신 어디 없나]]'라는 의미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참고로 연의에서는 홍농왕과 영사황후 하씨 말고도 홍농왕의 아내인 [[당희]]까지 죽였다고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 당희는 죽지 않았다.][* 후한서에서는 하태후가 먼저 죽고, 반동탁연합군이 기의한 뒤 소제가 독살당했다고 나온다.]하고 [[헌제|진류왕]]을 옹립시켰다. 동탁의 포악함이 극심해진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군대를 이끌고 순찰 중에 양성에서 주민들이 지신제를 지내는 것을 보자 거기에 있던 [[남자]]들은 몽땅 도적떼라고 괜히 뒤집어 씌워서 모조리 [[학살]]해 버리고, [[여자]]와 재산은 탈취했다. 그리고 귀가해서는 "도적떼들을 소탕하고 오는 길이다."라고 쌩[[구라]]를 쳤다. 심지어 [[궁녀]]나 [[공주]]에게까지 희롱을 하며 함부로 [[폭행]]을 가하거나 [[강간]]까지 했다. 또 [[영사황후 하씨]]의 시신을 [[영제(후한)|영제]]가 묻힌 문릉에 묻었는데, 그 틈을 타서 문릉에 있던 부장품과 [[보물]]들을 모두 [[도굴]]했다. 이와 같은 만행들을 참다 못한 [[오부]]가 동탁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꾸몄지만, [[실패]]하여 [[처형]]되고 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曹操)도 ([[왕윤]]의) 칠보도(七寶刀)를 빌려 동탁 암살을 모의하지만, 실패하여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오지만 이는 정사에 없는 연의의 창작이다. 또한 하내 태수 [[왕광]]도 이에 반발하여 수도 근방에 병력을 배치한 뒤 동탁을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그러자 동탁은 자신의 병력을 강을 건너는 것으로 눈속임한 뒤 몰래 정예병을 보내 왕광군의 배후군을 급습하고 대파하여 거의 몰살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