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파육 (문단 편집) == 유래 == 이름은 [[소식(시인)|소동파]]에서 따 왔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조리법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가설들이 있다. * 1. 소동파로부터 이름만 따왔다. * 1-1. 원래부터 항저우 지방 사람들이 즐겨먹는 이름 없는 요리였으나 이를 소동파도 특히 좋아하여 동파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2. 소동파가 의도적으로 개발했다. * 2-1.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소동파가 자기가 먹으려고 연구해서 만들었다. * '''2-2'''. 소동파가 지방관으로 있을 때 그 지방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을 줄 몰랐기 때문에 맛있게 먹는 법을 고안했다. * 2-3. 소동파가 지방관으로 있을 때 제방공사하는 인부들 수고한다고 대접한 요리가 유명해졌다. * 3. 소동파가 본의 아니게 만들었다. * 3-1. 친구와 바둑을 두다가 냄비에 돼지고기를 올려놓은 것을 깜빡했다 확 쫄아붙었는데 그게 의외로 맛있었다. * 3-2. 돼지볶음과 [[황주(술)|황주]]를 주문했는데, 사투리를 잘못 알아듣고 돼지랑 황주를 함께 볶아서 내온 것이 의외로 맛있었다. * 3-3. 소동파를 흠모하는 백성들이 그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바쳤는데, 그게 양이 너무 많아서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술에 재워놨다가 먹었더니 의외로 맛있어서, 이를 요리법으로 발전시켰다. 이 중 2-2의 설이 가장 유명하고 널리 퍼져 있으며 소동파의 지방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 + 뜻밖의 요리실력을 강조하는 일화이기 때문에 흥할 요소도 가장 많다. 소동파는 항저우의 지방관으로 부임하기 전 황주(黃州)에서 다년간 유배살이를 했는데, 그 유명한 식저육(食猪肉) 역시 이 시기에 직접 쓴 것이다. '돼지고기 졸라 싼데 부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요리법을 모른다'는 구절도 이 시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시 후반의 조리법과 스스로 대만족하는 듯한 분위기를 감안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 맛을 몰라''' 같은 자화자찬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옛날 양반들이 짓는 시가 다 이렇다.~~ 유배 생활을 하며 요리사를 따로 거느릴 수도 없었던 소동파가, 황주에서 흔히 구할 수 있던 돼지고기를, 시에 나온 것처럼 적은 물에 오래도록 삶아 즐긴 요리를 동파육의 원형으로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3-1의 가설이, 중국어 위키에는 2-1과 2-3의 가설이, 그리고 일본어 위키에는 1-1, 2-1, 2-2, 2-3, 3-3을 섞은 가설이 실려 있다. [[신 중화일미]]에서도 2-2 가설을 기본으로 요리의 유래를 설명한다. 최근에는 명나라 시대 고위 관료층의 연회용으로 만들어진 음식에 청빈의 대명사인 소동파의 이름을 붙였다는 문헌 연구 결과가 나왔다. [* 巫仁恕. (2018). 東坡肉的形成與流衍初探. Journal of Chinese Dietary Culture, 14, 13-56.] [[이연복]]과 음식 칼럼니스트 박준후 등이 출연한 여행-요리 프로그램인 [[중화TV]]의 '주유천하'에서는 두 가지 주장이 나왔다. [[https://youtu.be/BJoB_Xq6F6Q|클립 영상]] 첫번째는 2-3에 가까운 주장으로 설명했다. 소동파가 제방을 쌓도록 해서 물난리를 피한 항주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소동파에게 돼지고기와 술을 선물했는데, 받은 돼지고기를 자신이 개발한 요리법으로 요리했던 것이 바로 동파육이라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3-1로 고기를 익히다가 깜빡해서 고기가 졸아들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깊은 맛을 낸다는 것을 알아내 요리법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자기가 우연히 발견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마침 열심히 일한 백성들에게 전했다는 식으로 이 둘을 합칠 수도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