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프로이센 (문단 편집) ===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 그리고 동프로이센의 해체 === ||[[파일:AfterWW2germansterritory.png|width=500]]||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에게 1773년 1차 [[폴란드 분할]] 이전의 폴란드의 영토였던 지역을 양도했다. [[폴란드 회랑]]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을 넘겨준 결과 동프로이센은 독일 본토와 분리된 [[월경지]]가 되었다. 이 때 동프로이센 일대는 약간의 영토 변화를 겪었는데, [[클라이페다|메멜]] 지역을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에 넘겨준 대신, 해체된 [[서프로이센]] 지역 중 독일에 잔존한 일부분[* 엘빙, 마리엔베르더, 마리엔베르크, 슈툼, 로젠베르크]을 흡수했다.[* 기본적으로는 폴란드 분할 이전 폴란드가 가지고 있던 옛 영토가 반환의 기준점이 됐지만, 이미 독일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의 경우 독일계 주민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기에 주민투표를 거쳐서 몇몇 지역은 독일 잔류를 선택했다.] 이 밖에도 폴란드는 동프로이센 남부에 폴란드계가 다수라는 이유로 주민투표를 통해 이 지방의 귀속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주민투표를 시행하였으나 정작 투표 결과는 폴란드의 보이콧으로 절대 다수가 독일 잔류에 투표하여 독일 잔류가 그대로 확정되었다.[* 딱 두 곳을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독일 잔류 측의 득표율이 90%를 넘겼다. 특히 올레츠코 선거구의 경우 독일 잔류가 28,625표가 나올 동안 폴란드 귀속은 단 2표. 득표율 99.99%. 반올림해서 100%. 유일하게 동프로이센 남부에 위치한 졸다우(Soldau, [[폴란드어]]로는 자우도보(Działdowo)는 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폴란드로 넘겨졌다. 졸다우는 전간기 동프로이센 지역 중 유일하게 폴란드령으로 귀속된 곳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나치 독일]]의 패배가 자명해지자 [[소련군]]의 보복을 피해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소련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독일 중서부로 탈출했다. 1945년 독일의 패전 후 [[연합국]]은 전쟁의 직접적 원인([[폴란드 회랑]]과 [[단치히 자유시]] 문제)이자[* 물론 이는 독일의 개전 명분 중 하나로, 실제로는 전쟁 발발에 수많은 원인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원인]] 참조.] 독일 군국주의의 사상적 기원[* 동프로이센은 브란덴부르크와 더불어 근대 프로이센의 양대 본향인 만큼 독일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발원지 겸 성지 겸 상징으로 여겨졌다.]으로 여겨진 프로이센 지역, 즉 동프로이센을 해체하여 지도에서 아예 없애버리기로 합의했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동프로이센 전체를 소련이 차지하거나 동프로이센 북부 3분의 2를 차지하려 했지만 관대하게(?) 폴란드에 동프로이센 남부 3분의 2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소련은 주도인 쾨니히스베르크와 부동항인 필라우 등 요충지 항구도시를 모두 차지했으며 [[비아위스토크]]를 제외한 [[커즌 선]] 동부의 구 폴란드 영토를 반환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도 융커의 기반 지역 중 하나였던 동프로이센 남부 곡창지대와 폴란드도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독일 영토를 합병하면서 소련에게 잃은 영토 손실을 벌충하긴 했다. 사실 민족 감정을 차치하고 산업적, 농업적 가치만 놓고 보면 얻은 영토가 더 높기 때문에 폴란드에 마냥 손해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폴란드 입장에서도 상실한 폴란드령을 쉽게 포기할 수야 없었지만 그러면 마찬가지로 새로 획득한 독일 동부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프로이센 북부 끝자락의 [[메멜란트]]는 [[리투아니아]]에 넘어갔다. 이 지역에 대한 독일의 영유권 주장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당연히 거주하던 독일 주민들도 모두 추방.[*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구 독일 영토에 살던 독일계 주민은 피난민과 추방민을 합쳐서 대략 800만 명 정도로 당시 독일 인구의 10% 정도였다. 체코, 헝가리 등 중부유럽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추방당한 독일계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1500만 명에 달했다. 이들 중 [[서독]]을 정착지로 택한 난민들 중 다수가 종전 후 '추방민협회'라는 이익단체를 조직해서 1970년대까지 서독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폴란드와 소련 당국에 의한 추방 과정은 꽤나 잔혹해서 수십만 명 가량이 도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게 결국 다 나치의 업보로 인한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는지라 독일도 이 일로 동구권 국가들에 항의하지 못한다. 여담으로 폴란드는 오늘날에도 '이주'라는 표현을 쓸 뿐, '추방'이라는 단어에 엄청난 거부감을 보인다. 물론 커즌 선 이동의 폴란드령 주민들도 소련에 의해 추방당했고 대다수의 폴란드 실향민들이 새로 차지한 구 독일령에 정착했다.] [[서독]]은 분단 시절 이들 지역에 대한 폴란드와 소련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동방정책]]을 외교 정책으로 채택한 이후 외교 노선에 변화를 주어 실질적으로 이 지역을 포기했으며, 공식적으로는 1990년의 [[동서독 통일|통일]] 과정에서 영구히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것을 선언했다. 폴란드가 획득한 동프로이센 남부 지역은 몇 차례 행정구역 변화를 거쳐, 1998년 이후 [[바르민스코마주르스키에|바르미아마주리 주]]를 이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