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호 (문단 편집) == 다른 민족들과의 관계 == 중국사에 많이 등장하고, 그 다음으로 한국사에도 적지 않게 등장하지만 동호계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과도 관련이 적지 않았다. 특히 동호라고 불리던 지역에서 나온 한족들과는 이질적인 이민족들이 중국 황하 지역을 지속적으로 공략하고 정복하면서 한족을 피지배층으로 삼은 정복왕조를 수없이 건국했으니 중국 한족들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남겼으며,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이러한 이민족 왕조에 이기지 못한 한족 국가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면서도 안타까워한다. 또한 '''선비 [[탁발부]]'''처럼 튀르크계인 부족도 있었다. '''선비 [[모용부]]'''의 일파는 토번 인근 청해 지역까지 도망쳐서 [[토욕혼]]을 세웠으며, 지금도 [[투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환족의 별종인 거란족도 고구려 뿐 아니라 돌궐, 위구르의 지배 및 복속을 받았다. [[위구르 제국]]이 멸망하고, 몽골 초원에 여러 부족들이 할거하고 있을 때인 900년대에 '''거란'''은 본격적으로 서서히 성장했는데, 태조 야율아보기와 태종 야율덕광 때 이르러 옛 위구르 제국의 유민 등 돌궐(튀르크)계 민족들도 받아들였다. 이때 이들의 선진 문물도 받아들이면서 위구르 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거란은 또한 비단길을 통해 서역과도 교류를 많이 했다.[* 그래서 요나라때의 거란인들이 남긴 유물들을 보면 매우 화려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난다.] 탕구트(당항)족의 서하와는 관계가 좋기도 했지만 반대로 요흥종 때 서하를 침공해서 관계가 안 좋은 적도 있었다. 다만 요흥종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관계가 좋은 편이 많았다. 일본과는 공식적인 관계가 없었지만 어느 정도 무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몽골 일대의 요나라가 거의 망해갈 무렵, 야율대석을 비롯한 황실, 귀족, 일부 백성들은 외몽골로 탈출, 몽골을 통과해 서역 일대(지금의 [[투르키스탄]])에서 '''[[서요]]'''(카라 키타이)를 건국했다. 서요는 [[천산 산맥]], [[페르가나]] 계곡, [[파미르 고원]] 기슭, 발하슈 호 남쪽의 [[일리 강|이리(일리) 강]] 지역을 가지며 동카라한 왕조, 셀주크 튀르크 제국의 제후, 호라즘 왕조와 대립했다. 서요는 요나라때와 달리 한족들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보니 문화적으로 중국 문화를 이식한 시간도 길지 않다보니 대다수 튀르크계 주민들에게는 카라한 문화가 그대로 간직되었고, 거란인들만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했다. 다만 통치 제도 등 일부 정치적으로는 중국화되기도 하여 중국식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후반에는 유목식으로 통치) 서요의 멸망 이후, 이들은 해당 지역에 동화되거나 몽골에 흡수되었고, 거란의 옛 땅으로 돌아오거나 중국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다른 일부는 페르시아의 [[케르만]]까지 가기도 했으나 훗날 [[잘라이르 왕조]]에게 멸망당하고 흡수되어 페르시아인에게 동화되었다. 동호의 또다른 지파인 '''실위'''는 '''몽올실위'''가 되어, 아무르 강의 삼림에서 수렵 생활을 했지만 훗날 몽골 초원으로 남하했고, 요나라때는 '''맹고국'''이라고 불렸다. 요나라의 멸망 이후 이들은 훗날 [[몽골 제국|대몽골 제국]]의 전신인 '''[[카마그 몽골]]'''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