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돤치루이 (문단 편집) === [[호법전쟁]]과 [[안직전쟁]] === 복벽진압 이후 [[량치차오]] 등은 장훈복벽으로 중화민국은 한번 멸망한 것이니 새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국 재조설을 내세워 신해혁명의 전례에 따라 임시참의원을 소집하고 국회조직법과 선거법을 다시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돤치루이는 이를 수용하여 1917년 11월 10일 임시참의원을 구성하고 구국회도 약법도 옛총통도 필요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장쉰이 해산한 국회와 약법의 회복을 거부했다. 이어 세계대전 참전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니시하라 차관]]을 들여 재정을 농단했다. 이 때문에 [[쑨원]]과 [[탕지야오]], [[루룽팅]]을 비롯한 서남군벌들이 1917년 [[1차 호법운동]]을 열어 호법정부를 수립하자 이를 토벌하기 위해 [[호법전쟁]]을 일으켰다. 돤치루이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지만 [[우페이푸]] 등 직계의 반대로 쉽지 않았고 사천 전선에서 패배한 이후 [[차오쿤]], [[리춘]], [[진광원]], [[왕잔위안]] 등이 무력토벌 반대를 통전하자 패전에 책임을 지고 국무총리에서 퇴임하여 [[왕스전]]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왕스전 내각이 출범한 틈을 타서 대총통 펑궈장은 정전령을 내려 내전을 중단하고자 했다. 하지만 돤치루이는 주전파들이 펑궈장을 압박한 끝에 참전독판의 자리에 올라 군권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으며 1918년 3월 [[장쭤린]]의 지지를 받아 다시 국무총리가 되어 독재를 하였다. 또한 1918년 2월 국회조직법과 의원선거법을 제정, 공표하였다. 이때 환계의 왕읍당 등은 직계에 대항하여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 1918년 3월 8일 안복구락부를 만들었고 1918년 8월 12일 선거에서 470석의 의석 중 342석을 이들 안복계가 차지하였다. 안복계 왕읍당과 유은격이 중의원 의장과 부의장에 임명되고 참의원 의장과 부의장에도 친 안복계인 구 교통계의 [[량스이]]와 주계검이 각각 임명되었다.[* 그나마도 곧 사퇴하여 아예 안복계로 교체.] 국회가 돤치루이의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한편 리위안훙을 계임한 펑궈장의 임기가 끝나서 새로운 대총통을 뽑아야 했는데 돤치루이와 펑궈장의 대립이 심하여 둘은 자연스레 총통 후보에서 제외되었고 돤치루이는 군사기반이 없는 [[쉬스창]]을 추천했다. 돤치루이는 펑궈장이 원한다면 자신이 부총통까지 양보하겠다고 했고 만약 펑궈장이 부총통에 나오지 않는다면 하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톈진의 독군단 회의가 이에 동의하면서 [[쉬스창]]이 어부지리로 9월 4일 436표 중 425표를 얻어 대총통에 당선되었다. 10월 10일에 취임한 [[쉬스창]]은 돤치루이를 국무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후임으로 내무총장 [[첸넝쉰]]을 임명하고 11일에 각부 총장을 임명했으나 참전독판이 된 돤치루이가 여전히 북양정부의 실세였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다는 구실로 참전군을 조직하여 [[쉬수정]]을 참전군 사령관에 앉혔고 [[5.4운동]] 이후 참전군 조직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이 쏟아지자 참전군을 변방군으로 개칭하여 1919년 [[외몽골 출병]]을 단행, 외몽골과 투바를 복속시켰다. 이때 변방군 사령관 겸 서북주변사 쉬수정을 비호하여 직계와 봉계의 큰 불만을 샀고 쉬수정과 변방군을 제거하라는 직계의 요구와 장쭤린의 중재에도 요지부동으로 나왔으며 우페이푸의 북상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하남독군 [[자오티]] 축출을 시도하여 전국적인 반발을 샀고 오히려 국무총리 [[진윈펑]]이 [[하남독군 교체 파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며 압박하여 하야를 강요했다. 결국 쉬수정이 주도한 장쭤린 암살 시도가 실패하면서 1920년 7월 [[안직전쟁]]이 일어났다. 전투경험이 없던 참전군은 쉬수정이 도주하면서 황당하게 패배하였고 우페이푸가 [[취퉁펑]] 등 안휘계 지휘관들을 사로잡으면서 안휘군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쉬수정]], [[돤즈구이]] 등은 도주했다. 7월 19일 돤치루이는 쉬스창에게 정전을 청한 후 사직서를 제출하고 하야하면서 권력을 상실했다. 직계는 돤치루이에게 보복을 하고 싶어 했으나 대총통 [[쉬스창]]과 봉계가 관용을 베풀면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안복구락부는 해체되었으며 환계의 주요인물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