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두벌식 (문단 편집) == 상세 == 두벌식의 자판 종류가 의외로 많고, 표준 두벌식의 단점이 일반 두벌식의 단점보다 많기 때문에 두벌식과 표준 두벌식을 구별해서 쓸 필요가 있다. 두벌식 자판은 키보드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좌측에는 자음, 우측에는 모음을 칠 수 있도록 만든 자판이다. 두벌식은 국가 표준 자판이 두벌식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제일 많이 쓰고 있는 자판 배치이다. 세벌식도 그렇지만, 원래는 키보드를 위한 자판 배열이 아니었다. 역사는 세벌식보다도 오래되었다. 1900년대 초에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언더우드가 형이 운영하는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를 통해 자모만 자판에 배열한 두벌식 타자기 시제품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물이 없는 상태다. 이어 1927년 송기주가 네벌식을 만들기 전에 두벌식으로 타자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구상했지만 이어 네벌식으로 선회했고, 1940년대에 미국에 있던 김준성이 두벌식으로 한글 타자기를 만들었다. 또한 1959년에는 도덩보 타자기가 시제품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들 두벌식 타자기는 수동식 타자기의 특성 때문에 한글을 풀어쓰는 방식으로 쓸 수밖에 없는 제약이 있었다. 이건 현대의 두벌식 키보드에서 발생하는 [[도깨비불 현상]]과 관련이 있는데, 누르면 종이에 바로 찍히는 타자기의 특성상 글자 낱자가 종성으로 붙었다가 초성으로 다시 붙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두벌식은 세벌식이나 네벌식에 비해 일반 타자기 시장에서는 거의 활약할 수 없었다. 대신 전신 타자기(텔레타이프)에 많이 채용되었다. 전신 타자기는 종이에 바로 찍지 않고 모르스 부호로 변환하여 전송하는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두벌식이 활약할 여지가 많았다. 이것도 처음에는 풀어쓰기로만 되다가 1958년 송계범 교수가 모아쓰기가 되는 두벌식 전신 타자기의 시제품을 개발하였다. 이에 송계범은 박영효와 함께 연구를 통해 두벌식 자판의 배열을 연구해 나갔다. 그러나 이 두벌식 자판의 연구는 1969년 정부의 표준 글자판 지정과는 연관이 없었다. 1969년에 정부는 네벌식을 수동 타자기의 표준 글자판을 지정하면서, 네벌식의 배열을 기준으로 한 두벌식을 전신 타자기의 표준 글자판으로 지정했다. 이것이 현재 쓰이는 두벌식 자판 배열의 시작으로, 현재의 두벌식 배열은 그 동안 연구가 되고 있던 두벌식 자판 배열을 무시하고 만든 네벌식의 사생아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두벌식 자판은 처음에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지금의 [[IME]] 역할을 하는 모아쓰기 회로가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히 신뢰성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두벌식 자판은 쓰이지 못했고, 1971년 국무총리 지시로 전신 타자기는 세벌식으로 회귀하면서 잠시 묻히게 되었다. 이후 1970년대를 거치면서 수동 타자기에 두벌식 배열을 채택하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 나온 것들은 두벌식 자판에 종성에 해당되는 자음 키를 추가한 이상한 형태였으나, 1980년 외솔 [[최현배]]의 손자인 [[최동식]]이 완전한 두벌식 자판을 쓴 수동 타자기를 개발, 최초로 모아쓰기가 되는 두벌식 타자기가 탄생하였다. 방법은 받침 키를 누르면 해당 글쇠는 종성 자리에 찍히는 원리였다. 결국 이 두벌식 타자기는 네벌식을 밀어내고 1982년에 표준이 되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PC에서의 키보드 표준 배열로 지정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두벌식 타자기들을 체험해 보고 싶다면 [[http://ohi.pat.im|온라인 한글 입력기-팥알]]을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