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둔전(삼국지) (문단 편집) ==== 무엇을 할 것인가? ==== * 관련 인물: [[한호#s-2|한호]], [[조지(삼국지)|조지]] * [[정전#s-5|정전]](井田) -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때 시행되었던 법으로 우물 정 모양으로 아홉 구간으로 나눈 다음 가운데를 공전으로 두고, 주변 8곳은 백성들이 가져가고 공전은 여덟 명이 다같이 경작하여 세금으로 바치는 것. * 관련 인물: [[사마랑]] 196년, [[헌제#s-1|천자]]를 허도로 영접한 [[조조]]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대대적인 토론을 펼쳤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일찍이 조조가 전대의 위대한 업적에 따라서 둔전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그것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상당한 의견의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승상의 주부였던 [[사마랑]]은 조조에게 대란이 발생한 이후로 백성들이 흩어졌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정전(井田)'을 다시 부활시킬 때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조조는 정전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를 거부한다. 역사에 따르면 당시에 정책의 [[손익#s-1|손익]]에 대한 대대적인 격론이 벌어졌으며, 그 가운데 [[한호#s-2|한호]]가 제시한 농지대책이 가장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었으므로 조조가 크게 칭찬하면서 그를 호군으로 임명했다. 다시 한 번 「무제기」의 기록을 보면, >그해(196년/건안 원년)에 조지와 한호의 건의에 따라서 둔전을 크게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한호와 [[조지(삼국지)|조지]] 두 사람이 조조가 건안 원년에 둔전정책을 실행하는 일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둔전을 크게 일으키기 시작했다(始興屯田).'는 말은 조조가 196년에 처음으로 둔전을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둔전이 이 때 처음 실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앞에서 지적했다. '시흥(始興)'이라는 두 글자는 처음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조가 황제를 허도로 영접한 이후에 한의 정권을 잡고 다른 정책과 함께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조조가 둔전을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의 의견이 있다.[* 1987년 인민출판사에서 간행된 고민의 <위진남북조시대의 사회경제사에 대한 탐구와 토론>에는 초평과 흥평 년간에 실시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의 사료로 보아 대체로 타당한 주장으로 여겨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