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들국화(밴드) (문단 편집) == 총평 == 현재의 한국 [[록 음악]]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영향이 크다. [[신중현]], [[유재하]], [[김현식]], [[조용필]], [[산울림]], [[송골매(밴드)|송골매]], [[김수철(가수)|김수철]], [[서태지와 아이들]][* 참고로 서태지는 들국화의 열성팬이기도 하다. 인생 명반을 꼽을 때 들국화 1집을 꼽을 정도. 서태지는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출신인데 음악 스타일이 다른 들국화 1집을 인생 명반으로 꼽은 것을 보아 얼마나 저 앨범이 명반인 지 알 수 있다.] 등과 함께 한국 대중 음악사를 엄청나게 뒤바꿔놓은 그룹. 그들의 음악세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곡으로 ''''[[그것만이 내 세상]]''''과 ''''[[행진(노래)|행진]]''''이 있다. 암울하고 어두웠던 지난 날들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표현한 명곡들이라 할 수 있겠다. 여러모로 한국 록이 '무엇을'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를 재정의한 그룹이다. 기존 한국 음악의 소위 '뽕삘'(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이라 불리던 것에서 벗어나, 해방 후 새로운 형식의 한국 감성으로 각광받던 포크 음악을 잘 계승하면서도 정형화된 록 음악의 형태를 도입했고, [[민주화]] 운동 시기 빼놓을 수 없었던, 저항 정신도 갖춘 완전체라고 보면 된다. 물론 해외의 록 마니아나 요즘의 록 청자들이 들으면 당장 서구의 7080 로커들 같은 하드함이나 혁신성은 겉보기에는 약간 부족해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의 음악적 기반이 포크 음악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렇지, 당장 각 멤버들의 연주력이나 보컬 능력, 곡의 구조나 요소들을 보면 순수하게 '록 밴드'로서만 평가하여도 충분히 평균 이상이며, 거기에 '80년대 한국 음악가'라는 가치가 더해져 전설적인 밴드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사실 상당수의 '민족적' 뮤지션들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평가가 상당히 미묘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당장 동아시아 삼국에서만 봐도 일본의 '[[핫피 엔도]]'나 중국의 '[[최건(가수)|최건]]' 같은 뮤지션들 또한 현대의 젊은 록 청자들이 그 고평가에 대해 상당히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록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그들이 자국의 음악 시장에 미친 영향과 그 역사를 본다면, 그들이 왜 전설이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꽃밭의 꽃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막의 꽃은 유독 아름다운 법이다. 들국화의 경우에 대해서만 설명해보자면, 한국 음악 시장에서 록계에는 이미 이전부터 당대까지 신중현, 산울림, 송골매, 김현식 등의 걸출한 뮤지션이 있었고, 포크 계에도 세시봉 4인방, [[한대수]], 양병집, [[김민기(가수)|김민기]], [[조동진]], [[이장희(가수)|이장희]], [[정태춘]], [[어떤날]] 등등 상당한 거장들(다른 장르까지 따져보면 훨씬 많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해방 후 새로이 태어나는 한국적인 음악 형질이 서서히 형성되었는데, 들국화는 그 '현대 한국의 대중음악'을 이루는 큰 줄기 중 하나인 록과 포크라는 양 줄기를 모두 포괄하여 등장하였고, 그 감성을 자연스럽게 완성했다. 비틀즈가 기존의 로큰롤에다가 포크음악의 감수성과 인도음악 등 제3세계 음악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퓨전시킴으로써 기존 록음악의 표현언어를 확장시키고, 비틀즈만의 색깔을 가진 음악세계를 창조해낸 것처럼, 그러한 장르적 융합을 통한 독특한 화학작용을 한국에서는 들국화가 이루어냈다. 들국화의 음악은 록이면서 동시에 포크이기도 했고, 심지어 연주력이나 선율도 훌륭했으며 시대적 상황까지 반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지만 어느 기원을 쫓아가도 결국에는 한국 자생적이라는 결론(해외 음악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두 합쳐져 해외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형식이 되었다는 것)에 이르게 된다. 달리 표현하면,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에 마침내 완성된 '현대 한국의 감성'이 '완성된 록'의 형태로 등장한 최초의 사례가 들국화라는 것. 또한 당시의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대상 또한 확고해져 6070에서 포크 음악이 수행하던 '저항'의 역할이 세대교체를 거치며 록 음악으로 이전되었고 들국화는 시대의 요구까지 반영되어 있는 밴드로 태어났다. 젊은 청자들이 들국화를 들으며 흔히 생각하곤 하는 "이게 왜 '록'이지?"하는 궁금증은 여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들국화는 록 음악이 한국화된 결과물이라기보단, '한국 음악'이라는 존재가 록의 형태로 현현됐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며, 그렇기에 훨씬 부드럽고 대중친화적인 형태로 접근했을 뿐이다. 비틀즈가 뒤로 갈수록 정형화된 록의 형태를 벗어나 '탈 장르화된 총체적인 음악'에 접근했음에도 여전히 록 밴드로 취급받듯이, 들국화의 음악 또한 그러한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사실 최성원, 전인권, 허성욱 초기멤버 셋의 출발이 포크였을 뿐, 당대의 내로라하는 하드락밴드 출신의 드럼 주찬권과 기타 최구희가 합류하여 들려주는 사운드에 포커스를 둔다면 이게 왜 락이냐는 물음은 애초에 나올 수가 없다. ~~드럼소리만 듣는 사람이 어딨냐?~~ (다만 들국화의 시대가 전 세계적으로 메탈 음악이 유행했던 때임을 감안해 보면 그런 부분에서는 상당히 유한 음악을 들려줬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해방 후 받아들여진 서구의 대중음악들이 서서히 한국화 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들국화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지며 '현대 한국의 대중음악'이라는 여러 장르 간의 공통된 실체가 발현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1980년대 격동의 시대상까지 저항적인 록 음악의 형태로 반영되었으며, 1980년대 한국인 감성의 상징이자 신시대 한국 음악의 시작을 고하는 아티스트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 바로 들국화라고 말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