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디아도코이 (문단 편집) == 대왕의 요절과 분열 == BC 323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 상당 부분을 정복한 위대한 [[정복군주]]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빌론]]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는 아직 어머니 [[록사나]]의 뱃속에 있었고 대왕은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요절한다. 일설에 따르면 임종에 가까워질 무렵 알렉산드로스 3세는 잠시 정신을 차렸으며, 부하들이 "누구를 후계자로 정할지 알려 달라"고 묻자 [[유언]]으로 이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가장 강한 자(kratistos, κράτιστος)'''에게." 대왕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 급히 달려온 마케도니아 장군들은, [[배틀로얄|명확한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하나같이 [[역심|다른 마음]]을 먹게 된다'''. 당시 대왕의 임종을 지켜본 장군들 중 중요한 인물들을 꼽아보면 아래와 같다. * '''[[페르디카스]]'''(Περδίκκας): 최선임 [[헤타이로이]] 지휘관(chiliarch). * 멜레아그로스(Mελέαγρος): [[페제타이로이]] 지휘관(taxiarque). * '''[[프톨레마이오스 1세|프톨레마이오스]]'''(Πτολεμαῖος):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소테르(Σωτήρ, "구원자") * [[레온나토스]](Λεοννάτος):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 '''[[리시마코스]]'''(Λυσίμαχος):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 '''[[셀레우코스 1세|셀레우코스]]'''(Σέλευκος ): [[아르기라스피데스|히파스피스타이]] 지휘관(taxiarque), 니카토르(Νικάτωρ, "승리자") * [[페우케스타스]](Πευκέστας): [[파르스|페르시스]]의 [[사트라프]]. * '''[[에우메네스]]'''(Εὐμένης): 왕실 서기관, 헤타이로이 지휘관, 유일한 [[그리스]]인. 아래는 임종 자리엔 없었지만 중요한 인물들이다. * '''[[안티파트로스(마케도니아)|안티파트로스]]'''(Ἀντίπατρος): 마케도니아 본국 섭정, 마케도니아에 거주 중, 장군들 중 최연장자. * '''[[카산드로스]]'''(Κάσσανδρος ):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 [[크라테로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유언인 '''가장 강한 자(kratistos, 크라티스토스, κράτιστος)'''가 사실은 "[[크라테로스]]를 말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가설도 있다.](Κρατερός): 최선임 페제타이로이 지휘관, [[킬리키아]]에 체류 중.[* 안티파트로스의 후임으로 마케도니아 섭정 자리를 이어 받기 위해 본국으로 귀환하는 중이었다.] * '''[[폴리페르콘]]'''(Πολυπέρχων): 크라테로스의 부관, 킬리키아에 체류 중. * '''[[안티고노스 1세|안티고노스]]'''(Ἀντίγονος): [[프리기아]]의 사트라프, 모노프탈모스(Μονόφθαλμος, "애꾸눈") *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데메트리오스]]'''(Δημήτριος ): 안티고노스의 아들, 폴리오르케테스(Πολιορκητής, "도시 공격자") [* 단, 안티고노스를 제외한 인물들은 아직 별명들을 얻기 전이었다.] 제국은 크게 두 파벌로 나뉘었다. [[아르게아스 왕조]]하에서 통합된 제국을 유지하려는 '''제국통합파''', 제국을 분할해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하는 '''제국분할파'''가 그것이다. 1~2차 전쟁은 제국통합파와 제국분할파의 대결로 볼 수 있고, 3~4차 전쟁은 제국통합파가 몰락한 후 제국분할파 간의 대결로 볼 수 있다. 제국통합파의 대표적인 3인[* [[페르디카스]], [[에우메네스]], [[안티파트로스(마케도니아)|안티파트로스]]]은 서로 다른 이유로 죽었고,[* 암살, 사형, 노환] 제국분할파의 대표적인 3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 1세|셀레우코스]], [[안티고노스 1세|안티고노스]]]은 제국통합파 3인이 죽은 뒤, 공공연히 자신을 왕으로 칭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왕조를 세우게 된다. 다음 왕이 결정될 때까지 왕을 대리해 회의를 주재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노장 [[파르메니온]]과 왕의 측근 [[헤파이스티온]]이 사망한 이후 공식적인 2인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군 직제상 엘리트 근위기병대 [[헤타이로이]]의 최선임 천인대장의 서열이 가장 높았고, 그 직위는 [[페르디카스]]가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왕의 친위대[* 알렉산드로스의 최측근 장교 7인. 멤버는 --헤파이스티온--, 페르디카스, 프톨레마이오스, 아리스토누스, 페우케스타스, 레온나토스, 페이톤, 리시마코스]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높았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받은 왕의 [[도장(도구)#s-5.3|인장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의미는 왕이 회복할 때까지, 또는 왕이 죽은 뒤 다음 왕이 등극할 때까지 그가 왕을 대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처음 현안은 다음 왕을 누구로 할 것인가였다. 멜레아그로스는 [[필리포스 2세]]의 사생아, 즉 대왕의 이복 동생이었던 [[필리포스 3세|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를 옹립할 것을 주장했지만, 페르디카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자식이 태어나기를 기다려 아들이면 공동 왕으로 옹립하고, 딸이면 필리포스 아리다이오스를 단독 왕으로 옹립하자고 주장했다. [[네아르코스]]는 왕의 사생아 헤라클레스를 왕으로 옹립하자고 제안했다. 그런가 하면 프톨레마이오스는 여러 장군들이 과두정치를 하자고 주장했다.[* 장군 중 최선임자인 페르디카스를 견제하려는 제안이었다. 결국 페르디카스와의 정쟁에서 이기게 된다.] 결국 멜레아그로스는 필리포스 아리다이오스를 앞세워 페르디카스를 공격했으나 페르디카스를 비롯한 장군들은 모두 도망가 버렸고 에우메네스만 남아[* 에우메네스는 그리스인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역이용해 자신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권력 투쟁에 관계없으며 따라서 중립적으로 중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멜레아그로스가 장군이 아닌 문관인 자신까지 죽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멜레아그로스와 페르디카스를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록사네는 아들을 낳았고 양측의 입장을 절충하여 아리다이오스와 갓난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각각 [[필리포스 3세]][*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와 [[알렉산드로스 4세]]로 옹립하였다. 하지만 필리포스 3세는 [[뇌전증]] 환자였고, 알렉산드로스 4세는 [[갓난아기]]였기에 페르디카스가 제국 [[섭정]]이 되고 멜레아그로스가 그를 [[보좌]]하기로 했다. 하지만 페르디카스는 곧 자신을 죽이려 한 멜레아그로스를 살해하고 전권을 차지했다. [[파일:Diadochi satraps babylon.png]] || 지역 || 직책 || 인물 || ||<|3> 바빌로니아 || '''국왕''' || [[필리포스 3세|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br][[알렉산드로스 4세]] || || 섭정 || [[페르디카스]] || || 태수 || 아르콘 || || 마케도니아[br]일리리아 [br](에페이로스)[br](그리스) || 섭정 || [[안티파트로스(마케도니아)|안티파트로스]][br][[크라테로스]] || || 트라키아 || 태수 || [[리시마코스]] || || 소(小) 프리기아 || 태수 || [[레온나토스]] || || 대(大) 프리기아[br]팜필리아[br]리키아 || 태수 || [[안티고노스 1세|안티고노스]] || || 카리아 || 태수 || 아산드로스 || || 리디아 || 태수 || 메난드로스 || || (카파도키아)[br](파플라고니아) || 태수 || [[에우메네스]] || || 킬리키아 || 태수 || [[필로타스]] || || 이집트 || 태수 || [[프톨레마이오스 1세|프톨레마이오스]] || 권력을 잡은 [[페르디카스]]는 바빌론에서 장군들에게 제국 각지의 사트라프 자리를 분배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프톨레마이오스]]는 이때 [[이집트]]를 받아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에우메네스]]를 제외한 모든 유력 장군들이 마케도니아인이었으므로 마케도니아의 향방이 중요해졌는데, 당시 마케도니아 섭정은 안티파트로스였고 [[크라테로스]]가 그의 후임 섭정으로 임명받아 마케도니아에 귀국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고와 함께 그 명령은 무의미해졌고, 결국 마케도니아는 안티파트로스와 크라테로스가 공동 통치하기로 했다. 마침 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고를 틈타 [[고대 아테네|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폴리스#s-2]]들이 반란을 일으켜 안티파트로스를 라미아 요새에 고립시켰지만 레온나토스가 이끄는 지원군 덕분에 안티파트로스는 탈출하였고[* 정작 레온나토스 자신은 적들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크라테로스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에 합류하여 '''크란논 전투'''에서 반란군을 참패시켰는데, 이를 '''[[라미아 전쟁]]'''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