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디아도코이 (문단 편집) == 제4차 디아도코이 전쟁: 안티고노스 VS 셀레우코스, 리시마코스, (카산드로스) 연합군 == [[파일:터키 디아도코이.png]] [[입소스 전투]] 직전 디아도코이들의 영역. 이에 카산드로스는 안티고노스 1세를 대적하기 위해 리시마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셀레우코스 1세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가장 가까운 트라키아에 있던 리시마코스가 아나톨리아 반도에 침입하자 그리스의 데메트리오스 1세는 부친 안티고노스 1세를 돕기 위해 아나톨리아로 철수했다. 아나톨리아를 휩쓸고 다니던 리시마코스의 군대는 입소스에서 안티고노스 1세와 데메트리오스 1세의 군대에 의해 고립되었는데, 때마침 셀레우코스 1세의 군대가 당도하여 양측 사이에 대전투가 벌어졌다. 이것이 BC 301년 벌어진 '''[[입소스 전투]]'''로써, 디아도코이 전쟁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으며, 셀레우코스 1세의 압승으로 끝났다. 당시 70대 중반의 노인이던 안티고노스 1세는 전사했고, 데메트리오스 1세만 패잔병을 이끌고 겨우 그리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셀레우코스의 역습"이 가능했던 것은 서방에서 디아도코이들끼리 각축전을 벌이는 동안 셀레우코스 1세는 큰 방해를 받지 않고 땅따먹기 하듯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동방 영토를 차례차례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를 저지할 만한 유일한 세력은 한창 [[인도]] 전역을 석권하고 있던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마우리아 왕조]]였는데, 셀레우코스 1세는 찬드라굽타가 차지한 동방 영토를 공격하려다[*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사료는 남아있지 않다. [[아피아노스]]는 둘이 전쟁하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어" 동맹을 맺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아래 서술하듯 셀레우코스 1세가 영토를 꽤 많이 떼 준 것을 보면 그의 공격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했음은 짐작할 수 있다. 일단 병력차가 너무나도 컸는데, 마우리아 왕조의 상비군은 60만 보병, 3만 기병, 9천 코끼리 부대였다고 한다. 이 중에 1/4이라도 셀레우코스 왕조군보다 많은 수준이다.] 휴전하고 BC 303년 동맹을 맺었다. 이 결과 셀레우코스 1세는 아라코시아와 게드로시아, 드랑기아나 및 그 외의 모든 인도 접경 영토를 포기하고, 딸을 찬드라굽타와 결혼시키는 대신 [[코끼리]] 500마리를 받았다.[* 다만 일부 의견에선 정말로 이해가 맞아서 그만두었을 확률도 제법 있다고 나온다.] 이로써 다소 굴욕적이긴 하나 큰 손해 없이 안정된 동방 영토를 차지한 셀레우코스 1세는 기본적인 수적 우위에 더해 페르시아 기병과 인도 코끼리까지 동원한 압도적인 전력으로 안티고노스 1세에게 결정타를 가할 수 있었다.[* 셀레우코스 1세는 다른 마케도니아인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 결혼한 페르시아 아내와 이혼할 때 끝까지 이혼하지 않았고, 자신의 후계자 역시 페르시아 아내와의 혼혈인 아들 안티오코스를 선택한 인물이다. 페르시아 기병대에 호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셀레우코스 1세와 안티고노스 1세의 인망 차이도 큰 영향을 미쳤다. 셀레우코스 1세는 바빌론의 사트라프로 있을 때 바빌론 주민들의 인망을 얻어 안티고노스 1세에게 밀려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있던 이집트로 도망쳤다가 돌아올 때, 바빌론 주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고 '''니카토르'''(= '''[[승리자]]''')라는 칭호까지 바쳤다. 그래서 셀레우코스 1세는 원정을 나갈 때도 바빌론 지역에는 최소한의 경비 병력만 남기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안티고노스 1세는 난폭한 성정 때문에 주민들의 인망을 사지 못했고 그가 죽자 그의 영토는 별 저항 없이 셀레우코스 1세에게 접수된다. 입소스 전투 이후 안티고노스 1세의 영토는 승자들이 나누어 가졌다. 리시마코스가 아나톨리아 서부를,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유대]]를 차지했으며, [[킬리키아]]와 뤼키아는 카산드로스의 형제인 플레이스타르코스에게 돌아갔다. 패배한 데메트리오스 1세는 [[테살리아]], 그리스 일부, 키프로스 섬 정도만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셀레우코스 1세가 차지했다. 이 시기를 마케도니아의 [[안티파트로스 왕조]] / 트라키아의 리시마코스 왕조 /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4왕국이 정립된 시기라 하여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4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라고 설명을 마치기도 하지만, 아래 서술대로 안티파트로스 왕조와 리시마코스 왕조는 이후 역사의 무대에서 그야말로 [[광탈]]하고 몰락한 [[안티고노스 왕조]]가 부활하므로 이후 3왕국의 정립까지 적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