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똥 (문단 편집) == 역사 == 똥에 빠져 죽은 군주가 있으니 중국 춘추시대 [[진경공(33대)|진 경공]]이 측간에서 배변하다 발을 헛디뎌 똥통에 빠져 죽었다. 1188년 [[하인리히 6세]]는 폴란드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튀링겐 백작 루트비히 3세와 마인츠 대주교 콘라트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에어푸르트]] 성에서 제국의회를 개최했는데 2층의 나무바닥이 수백 명의 제후들의 몸무게를 못 견뎌 붕괴하고. 1층 바닥도 연쇄적으로 붕괴해 지하실로 추락했는데 문제는 그 지하실이 똥통이었기 때문에 60여 명의 제후가 똥통에 빠져 [[익사]]하거나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고 하인리히 본인이 선 곳은 석재 바닥이었던 덕에 무너지지 않아서 생존했다. 자세한 건 [[에어푸르트|문서]] 참고. 똥을 맛본다는 것은 최고·최악의 굴욕 중 하나로 [[춘추시대]] 말기 [[와신상담]]으로 유명한 [[오나라]] 왕 부차는 아버지 합려가 [[월나라]] 왕 구천과 싸우다가 입은 상처로 사망하자 장작을 쌓아서 일부러 불편한 곳에서 자며 복수를 잊지 않았다. 결국 월나라를 쳐서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구천을 포로로 잡았다. 그런데 구천의 뇌물을 받은 태재 백비가 살려주라고 해서 살려줬지만 구천을 왕궁의 [[말똥]]지기로, 구천의 왕비를 첩으로 부린 적이 있었다. 구천은 충성을 다하면서도 [[와신상담|쓰디 쓴 쓸개를 맛보며 치욕을 갚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월나라에 흉년이 돌자 오나라에 빌린 다음 그대로 갚았다.[* 구천은 [[오나라]]에 흉년이 돌자 이전에 빌린 쌀과 함께 속국으로써 엄청난 쌀을 보내줬는데 오나라 사람들은 이 쌀을 땅에 심어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싹이 나지 않았는데 이것은 구천의 신하 범려의 계책으로 [[찐쌀]]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결국 오나라는 흉년에 이어 이번에는 농사 자체를 망치게 된다.] 이때 마침 부차가 아프자 구천이 그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병든 부차의 똥을 핥고 증상과 회복일을 예언했다. [[오자서]]조차 "내가 못 하는 걸 하는 걸 보니 대단한 놈이다. 우린 망했다."라며 탄식했고 구천은 이런 식으로 충성심을 인정받아 결국 풀려난 뒤 오를 쳐서 멸망시켰다. 다만, 왕후장상의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똥을 맛보는 전문직은 동양에 존재해왔으며, [[조선시대]]에도 왕의 똥을 맛보며 건강을 진단하는 내관이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똥을 맛봐 가면서 아버지를 간호했다는 [[효자]]의 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전해지는 걸 보면 똥을 맛봐서 건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믿음인 듯하다 [[조선시대|조선]]의 왕은 [[매화틀]]이라는 [[구리(원소)|구리]]로 만든 휴지곽처럼 생긴 전용 이동식 [[변기]]에서 용변을 해결하였는데, 왕이 왕 전용 배설 담당관인 복이나인(僕伊內人)을 부르면 장소가 어디든지 복이나인이 [[궁녀]]들을 대동하고 당장 달려와 왕의 주변에 휘장을 치고 안에 매화틀을 넣어준다. 궁궐의 내전에는 변소가 갖춰있지 않은데 왕이 친히 외부에 있는 누추한 변소까지 행차[* 특권층에 해당하는 왕을 위해 변소 시설을 건립한다해도 당시 기술로는 동계의 한파나 하계의 [[악취]]에 대처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여 볼일을 치르는 것이 왕실 관례상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것이 매화틀이다. [[유교]]사관에 입각한 왕의 지존화에 따라 왕의 옥체에서 생산된 똥도 똥이라 불리지 않고 매화향이 난다 하여 '[[매화]]'라 존칭되었다. 이것은 내의원에서 왕의 매일 건강을 체크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매화틀에 담긴 임금의 매화를 색깔과 냄새, 맛을 점검해 임금의 건강상태를 확인했던 것. 따라서 어의를 다른 말로 상분직(嘗糞職)이라고 하기도 했다. [[https://www.mk.co.kr/news/it/view/2016/06/392015/|기사]]. 물론 내관 입장에서도, 아무리 먹고 사는 문제라지만 차마 [[인지부조화|자신의 사명은 똥을 맛보는 것]]이라고 용납할 수는 없었던 듯하다. 민간에서도 이러한 의료적인 용도의 똥맛보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리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똥맛을 꾸준히 맛보면서 건강체크해주면 [[효자]]라고 칭송받았고, 조정에 알려지면 효자문이 세워지고 세금도 면제되는 등 혜택이 주어졌다. [[https://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0510112009271|기사]] [[매화틀]]과 변소에 대해서 더 얘기를 해보자면 매화틀처럼 편리한 방식으로 일을 편하게 볼 수 있는 왕족 외의 궁인들은 사정이 달랐다. 궁궐 안에만 약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 3천 명이 감히 왕의 복이나인을 쓸 수도 없을뿐더러, 쓸 수 있다쳐도 복이나인 몇 명으로 3천 명이 커버가 되겠는가? 그러나 감히 왕이 사는 내전에다 [[화장실]]을 놓을 수는 없으므로, [[경복궁]] 외전에다 28개의 화장실을 놓았는데, 이마저도 내전에서 [[https://blog.naver.com/alsn76/40200767575|24시간 살다시피]]하던 [[궁녀]]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생고문이었다. [[오줌|작은 일]]이야 [[요강]]을 쓰면 되었지만 한 번 큰 일 보겠답시고 그 먼 외전까지 나가야 했던 것이다. 거기다 이 28개 화장실 하나하나가 무려 51간이나 되는지라 궁녀 혼자서 들어가기는 무서워 두세 명씩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니 점입가경도 이런 점입가경이 없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00029&code=13110000|기사]] 궁궐에는 궁 내에서 발생하는 [[인분]] 등을 처리하기 위해 48명으로 구성된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4/2014030400034.html|전연사(典涓司)]]'라는 관리 팀을 두었는데 당연하겠지만 이 48명으로도 3천 명의 [[인분]]을 처리하기에는 일손이 너무 딸렸다. 더구나 이들은 인분뿐만 아니라 궁궐 내의 쓰레기 분리수거 및 처리까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http://www.ecomedia.co.kr/news/newsview.php?ncode=1065607412461780|기사]] [[박헌영]]은 자신의 똥을 벽에 바르고, 먹고 미친 척 해서 [[일본]] 교도관들의 눈을 속여 감옥을 빠져 나왔다. 이 때문에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났고, [[똥독]]으로 얼굴도 심하게 부어올랐다고 한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93|기사]] 하지만 놀랍게도 [[조선시대]]에 인분은 [[약]]으로도 [[인분을 이용한 약|사용]]되었다. [[똥술]]이 말 그대로 똥을 사용해 수개월간 빚어 담근 술이다. [[동의보감]]에까지 실려 있는 사항으로 효능은 대체로 종기나 기타 환부 치료나 해열, [[해독]] 작용이 있다고 되어 있다. 다만 옛날 [[상민]]이나 [[천민]]들이 약재가 귀하던 시절 쓴 미확인 [[민간요법]] 같은 것으로 보자. [[곤장]]을 맞고 매의 후유증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먹였다고도 한다. 약으로 먹는 똥은 바로 나온 똥이 아닌 뒷간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 오래 푹 삭은 똥을 퍼서 마시게 했다. 그나마 깨끗하게 먹기 위해서 대나무를 뒷간 가장자리에 오랜 기간 꽂아두면 마디 안에 여과된 똥물이 고이는데 그걸 따라 마시기도 했다고... 헛구역질이 올라올 수도 있으니 굳이 상상하지는 말자.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에도 막부 시대에 일본에서는 엄연히 똥이 약재로 [[인분을 이용한 약|사용]]되었다. [[에도 시대]] 일본의 의학 서적인 [[https://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3259530?&sst=wr_datetime&sod=desc|용약수지속편(用薬須知続編)]]에서는 가마를 대운 후 감초를 넣어 둥근 나무 토막으로 이를 막아 틈새는 밀랍으로 채우고, 이 안에는 [[사람]]의 대변을 채워서 한 달을 두고 꺼내어 말려서 [[https://medigatenews.com/news/2247197202|인중황(人中黄)]]이라는 약재를 만들어 질병에 시달릴 때에 먹었다고 나왔다. [[영국]]에선 왕의 똥을 치우는 것이 최고 명문 중 명문이었다. 비슷한 예로 [[루이 14세]]의 옷 갈아입는 의식 때는 건네주는 옷에 따라서 귀족의 격이 달라졌는데 가장 높은 게 내복이었다고 한다. 옷의 서열은 내복>팬티스타킹>상의=바지>허리띠>외투>신발 순서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뒤를 닦아주는 '[[시종|청결관]]'([[https://en.wikipedia.org/wiki/Groom_of_the_Stool|Groom of the Stool]])이라는 직책[* [[https://en.wikipedia.org/wiki/Lords_and_Gentlemen_of_the_Bedchamber|Gentleman of the Bedchamber]] 중 선두이다. 왕비나 여왕에게도 [[https://en.wikipedia.org/wiki/Lady_of_the_Bedchamber|해당 직책]]을 맡는 귀족 부인들이 있다.]이 있었는데, 이 청결관은 [[공작(작위)|공작]]이나 후작 수준의 높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최고위 귀족 가주가 손수 치워야 했다. [[헨리 8세]] 시기 기준 약 4명 정도가 있었다. 헨리 8세의 똥을 치우던 공작은 다른 귀족들에게 질문을 받자 "뭐, 왕이 [[대식가]]라는 건 알겠더군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조선시대]]의 내관 이야기처럼, 왕과 가장 가깝고 은밀한 공간에 함께 있게 되고 따라서 국왕과 왕실의 개인사와 비밀, 정치, 행정 업무를 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국왕이 가장 신임하고 지위도 높은 인사가 이를 맡게 된 것. [[피에르 캉브론]]이라는 장군은 [[워털루 전투]]에서 적군의 항복 요구에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날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대 질문에 다섯 글자로 대답하겠다. M.E.R.D.E."[* 혹은 단말마적인 MERDE! [[프랑스어]]로 똥이라는 의미로 [[미국]]의 [[shit]]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며, 여기서는 [[좆까]]라는 의미로 쓰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89878|기사]] [[일본]]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패해 도망치다가 말안장에 똥까지 지렸다. 도쿠가와는 도망친 후 이때의 모습을 그린 그림까지 남겼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석상으로도 제작했다. 분변 처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골칫거리였다. 생각 없이 아무데나 쌓아 놓으면 각종 [[세균]]과 더불어 [[기생충]]의 복마전이 되었고, 이는 위생상 문제가 되며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대와 중세의 몇몇 도시는 당대 최고의 기술로 하수 시설과 수세식 [[변기]] 등을 구현해서 오물을 치웠지만 전근대의 특성상 한계가 명확했다. 냄새를 피하고자 [[향수(화장품)|향수]]가 발전되기도 했지만 질병은 역부족. 영국 런던 소호 거리에 콜레라가 대량으로 발생한 사태를 연구하던 [[존 스노우]]가 온갖 분뇨가 유입되는 펌프를 폐쇄해 버리자 창궐이 호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시대|조선]]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양이 본격적으로 대도시로 성장한 17~18세기에는 [[사람]]은 많은데 그 사람들의 생활을 감당할 역량이 부족해 거리 여기저기에 똥, [[오줌]]이 굴러다녔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똥이 [[비료]]로 잘 쓰였지만 도성의 여염집에서는 [[재래식 화장실|뒷간]]에서 나오는 분뇨를 비료로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뒷간이 가득 차면 그냥 퍼다가 집 근처 하천이나 한강변에 무단으로 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물론 그 똥들을 농민들에게 팔아치우는 경우도 있지만 한양에 사는 사람들 상당수가 당대기준으로 금전적으로 있는 계층이었을테니 굳이 똥을 팔아치울 메리트가 없었다. 당연히 [[장마]]로 하천이 범람이라도 하면 한양 거리거리가 똥물로 뒤덮...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이 지은 ≪연암집≫의 ≪예덕선생전≫ 편에는 도성 안 뒷간의 똥을 퍼다가 도성 밖의 밭에 뿌려주고 대가를 받아 생계를 잇는 '엄행수'[* 嚴行首. '엄항수'라고 나오는 문서도 있다. [[行]]의 독음은 '행', '항' 두 개이다.]라는 인물이 나온다. [[https://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28719|기사]]. [[박제가]] 역시 "북학의"에서 "뜰이나 거리에 오줌을 내버려서 우물물이 온통 찝찔하고 냇가 다리에는 똥이 말라붙어서 큰 장마 없이는 잘 씻겨지지도 않는다"고 적어 두었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1100602001|기사]]. 이러한 사정은 청이나 일본도 크게 나을 바가 없었다. 이 당시에 동북아에 [[공중화장실|공중변소]]라고 해봐야 몇 곳 없었을테니 더더욱 위생상태가 나쁠 수 밖에 없기는 했다. 개화기에 [[김옥균]]이 가장 먼저 했던 일도 분변 처리이다. [[일본]]에 시찰을 다녀온 후,[* 다만 [[일본]]의 도쿄도 1882년부터 190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마차철도가 운행되어왔고 이 때문에 곳곳에 가축 분뇨가 쌓이는 문제점이 있었기에 한성에 비해서는 몰라도 현대기준에서 볼때 위생상태가 좋은 도시는 아니었다. [[도쿄만]]도 이촌향도 현상으로 오염이 심해지기도 했고 위생문제가 개선된것은 마차철도가 노면전차로 개편되고 나서의 일이었다.] 개혁을 하든 뭘 하든 간에 한양의 거리, 물가, 가도 내에 넘쳐나는 사람 똥, [[말똥]], 쇠똥 등으로 인해 '''여름에는 코를 막고 지나가야 할 판인''' 당시 조선의 심각한 위생상태부터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리의 위생을 다스린다 하여 이름붙은 '치도국(治道局)'이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도성에서 분뇨를 내다버리는 사람들을 몽땅 처벌하거나 감옥에 가두고 분뇨 처리 시설을 개혁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소]]'였다. 사람이야 화장실 가서 똥 싸면 된다지만 우마차가 화물차 역할을 했던지라 우마차의 소들이 싸는 똥까지 트집을 잡아 문답무용으로 잡아가니 원성이 극심했고, 더구나 얼마 되지도 않아 개화파가 모조리 축출되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치도국은 개관 3개월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삼일 천하가 끝나고 김옥균이 쫓겨난 이후에도 지식인들은 하수도 및 분뇨 처리시설 개혁을 계속해 주장했다. [[https://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0508161918221|기사]] 똥은 오랜 세월 매우 귀한 자원으로 활약했고, 앞으로도 활약할 것이다. [[인도]]라든지 많은 나라에선 [[소]]똥이나 [[낙타]]똥이 귀중한 [[비료]] 및 [[땔감]] 자원으로 쓰이는 걸 봐도. [[https://bioresourcesbioprocessing.springeropen.com/articles/10.1186/s40643-016-0105-9|논문]], [[https://www.motorgraph.com/news/articleView.html?idxno=6650|기사]]. 참고로 인도에서 축분 바이오매스라고 해서 소똥으로 작동하는 화력[[발전소]][* [[인도]]같은 경우는 [[소]]가 워낙 많아서 소똥을 태우는 [[화력]]발전소가 있다. [[미국]]에서도 소똥 화력 발전소를 [[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94-02-22-mn-25874-story.html|1980년대 후반]]에 세운 바 있는데 재료비는 무척 싸지만, 건설비가 좀 비싼 편이라고 한다. 보통 화력난로가 아닌 더 특별한 난로를 써서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똥이 건조해야 하기 때문에 폭우에 취약하다.]까지 있다. [[https://www.hindustantimes.com/india-news/chhattisgarh-launches-cow-dung-based-power-generation-project-101633194612169.html|기사]]. 이렇게 땔감으로 쓰는 것은 초식동물에 한해서다. 육식을 하는 동물의 것은 섬유질이 상대적으로 적어 불이 잘 안 붙고 단백질이 분해, 부패되면서 생기는 역한 냄새가 초식동물의 것보다 더 심하다. 그리고 [[태국]]이나 [[미얀마]] 등지에서는 [[코끼리]]의 똥에서 섬유질만 추출해서 그걸로 [[종이]]를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aDHHNyP-Cqc|영상]]. [[비료|화학비료]]가 나오려면 아득히 먼 세월이 남은 고대에는 인류가 바로 곁에서(혹은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비료였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695|링크]]. 이는 화학비료를 구하기 힘든 현대의 여러 지역에서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또한, 인류가 사는 곳에 따라 말린 똥은 나무 등을 구하기 힘든 곳에서 매우 훌륭한 연료였다. 무기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부비트랩]]에 똥을 발라놓거나 하는 것은 유명한 비법이고 [[임진왜란]] 때 수성 무기로 분포(糞砲)[*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 '똥 [[대포]]' '''이다.]를 만든 기록이 나온다. 거대한 물총을 만들어 안에 똥물을 넣고 발사해 성으로 돌격하는 왜군들에게 시원하게 뿌려줬다. 왜군들은 냄새도 냄새거니와 상처에 [[똥독]]이 올라 전력에 손상이 꽤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비한 부대가 또 쳐들어오면 그 때는 금즙(金汁)을 이용했는데 금즙은 똥을 1년 동안 발효시킨 농축액 중의 농축액이었다. 수성용 무기로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https://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0507241959091|기사]]. 베트남전 당시 밑창에 철판을 댄 정글화라는 물건이 나온 이유가 똥 발라놓은 쇠창살이 있는 함정[* 부패한 배설물에는 [[세균]]이 다량 서식하므로 이 세균이 잔뜩 묻은 쇠창살에 찔려 상처라도 생긴다면 안 그래도 [[항생제]] 보급이 부족한 전시 상황에 치명적인 질병으로 번질 수 있다. 특히 항상 통기가 잘 안 되는 전투화를 신고 다니는 군인의 경우 [[연조직염|연조직염(봉와직염)]] 및 [[참호족]]은 기본.] 때문이다. 참고로 이런 바닥을 보호하는 정글화가 나오자 [[베트콩]]들은 발목을 공격하는 측면 창살도 박았다. 가정에서 키우는 [[금붕어]]가 죽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어항 내의 질산화물의 농도 증가이다. 금붕어 똥 속의 [[암모니아]]를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쌓인 질산화물의 농도가 어항 내에 지나치게 높아져서, 즉, 쉽게 말하면 [[똥독]]이 올랐기 때문이다. [[https://sputnik.kr/news/view/5964|기사]]. [[사람|인간]]으로 치면 온통 방에 [[똥냄새]]가 가득하고 똥독으로 콩팥 기능이 정지되어 혈중에 요소농도가 높아지는 신부전증에 걸려 죽는 것과 비슷하다. 똥으로 만든 [[비료|거름]]이라고 하면 [[재래식 화장실]]이 대표적이다. 똥을 발효시켜 천연 유기농 [[비료]]로 만들어주는 시설이다. 똥을 거름으로 쓰려면 [[기생충]]이며 [[세균|박테리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생똥을 그냥 쓰면 안된다. 조상들은 뒷간을 만들어 똥을 푹 발효시킨 다음에 서리가 내리면 잘 발효되어 거름으로 변한 똥을 똥장군에 퍼담아 나가서 밭에 휘휘 둘러 뿌렸다. 어쨌든 농민들에게 소중한 것이 비료이기 때문에 어느 구두쇠가 외출을 나갔을 때 [[오줌]]이나 똥이 나올 것 같아도 집에 갈 때까지 참았다가 반드시 집에 가서 눴다는 민담이 있다. 더럽기는 해도 그만큼 소중은 했던(?) 장소였던 것이다. [[이란]]이나 [[아랍]] 등 중동지역에선 사정이 비교적 나았다. 똥을 냅다 [[사막]]으로 내다버리는데 사막의 건조하고 뜨거운 온도 덕에 급속도로 건조되버려 [[세균]]과 [[기생충]]이 죽어버리기 때문. 이렇게 잘 말려진 대변들, 특히 [[낙타]]의 대변은 유목민들이 [[땔감|연료]]로 사용해왔으며 [[이란]] 같은 경우엔 다른 아랍 지역 사막과 달리 사막에 [[비료]]라든지 여러 가지로 첨가하면 땅이 되살아날 곳이라 이렇게 오래 똥을 뿌려주면 꽤 풍요로운 땅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초석]](염초(焰硝)) 광산은 특정 지역에만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초석을 구할 때 초기에는 [[박쥐]]가 사는 동굴 바닥에 박쥐똥이 발효해 질산염이 축적된 동굴의 벽의 흙을 모아 만들었으나 공급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염초밭을 인공적으로 조성하여 화약용 염초를 생산했다. 염초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흙구덩이를 파고 액체가 새지 않게 진흙으로 바닥과 벽을 바른다. 칼륨을 많이 함유한 식물이나 미역 등의 해조류를 태운 나무 재나 석회암 가루를 쌓고 그 위에 지푸라기나 나무 잔가지 숯 등 다공성의 물질들을 쌓고 그 위에 인간이나 동물의 똥[* 특히 [[요산]]을 함유한 닭똥 등 [[새똥]]이 더 좋다.]을 쌓고 지푸라기로 다시 덮은 뒤 그 위에 삭힌 [[오줌]]을 붓고 그걸 반복하면서 1-2년간 숙성시킨 짚더미는 꺼내어 짜내고 오줌을 부어 우려낸다. 구덩이에 고여 있는 용액은 나무 재를 담은 단지에 부어 질산염으로 만든다. 그 후 용액을 거른 후에 끓여서 증발시켜 농도를 높이는 분별결정화를 반복하면 백색의 염초결정 가루를 얻을 수 있다. 과거 [[유럽]]에서는 나무를 태운 나무재(탄산칼륨 함유)를 물에 녹인 후 걸러서 농축된 수산화 칼륨 용액을 먼저 만들고, 발효된 동물 똥이나 오줌으로 질산염 용액을 만든 다음, 이것들을 반응하게 하여 질산칼륨을 만들었다. 핵심은 질화박테리아가 번식하게 하고 오줌에 포함된 요소(尿素, urea)가 산화하면서 [[암모니아]]로 변화하게 만들어 질산염을 얻는 것이다. 똥 싸다 늦은 사람 때문에 전쟁이 난 경우도 있다. [[루거우차오 사건]] 문서 참고. 가끔 [[콘도]] 화장실이라든지 밀폐된 [[화장실]]에서 똥을 쌌을 때 [[똥냄새|냄새]]가 안 빠져서 곤란한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물]]을 사방으로 뿌리면 해결된다. [[암모니아]] 기체가 물에 잘 녹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국회가 시끄러워지던 중, 국회의원 [[김두한]]이 각료를 상대로 [[국회 오물 투척 사건|똥물을 뿌리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969년 [[아폴로 10호]]의 대화록 중에는 공중에 똥이 떠다녀서 처리해야 했다는 내용이 있다. 자세한 건 [[아폴로 10호|문서]] 참고. 1990년 [[게리 리네커]]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조별 예선 F조의 잉글랜드 VS 아일랜드의 경기 도중에 바지에 똥을 쌌다. [[https://www.fmkorea.com/453239625|링크]] [[개그맨]] [[정찬우]]는 똥 싸다가 맞아서 [[군대]]에서 울었다고 한다. 똥 만드는 기계가 실제로 있다는 게 [[https://www.youtube.com/watch?v=VdlLBWymnUA|2007년]]에 밝혀졌다. 단, 일반인들의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히 쓸모없는 기계는 아니며, [[소화 기관|소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이다. 자세한 내용은 [[네놈은 그냥 하루하루 똥 만드는 기계일 뿐이지]] 문서 참고. 이와 별개로 집에 있는 도구들로 똥을 직접 만들 수도 있다. EBS에서 실제로 했으며 소화작용을 비닐봉지에 식초와 쪼갠 [[음식]]을 넣어서 주무르는 등 고퀄리티로 만들었다. 2007년 [[잔루이지 부폰]]은 [[급똥]] 때문에 9월 26일에 있던 유벤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벤투스 vs 레지나의 07/08 세리에 A 5라운드 경기 도중에 교체 신호를 보냈는데, 부상당한 줄 알고 달려온 의료진을 쌩까고 교체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weuweE2Tpag|링크]] 2011년 6월 16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10617MW084135323926|일본에서는 똥을 이용해 인조고기를 만들어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걸 먹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하겠지만 응답자의 83.87%가 싫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똥고기]] 문서 참고. 2011년 12월 말 [[미국]] 펜실베니아 주 에이번 그로브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여학생 3명이 동급생에게 똥을 섞은 [[케이크]]를 먹여 200시간의 사회봉사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226601001|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해당 동급생은 케이크를 먹어보고 이상한 맛이 느껴졌고 가족들에게도 맛보게 한 뒤 버렸는데 다음날 가족들이 복통을 일으켰고 이상한 악취가 나서 쓰레기통에 있는 케이크를 가져가 학교 선생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성분 분석을 의뢰했는데 케이크 속에 똥을 섞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케이크를 선물한 여학생 3명을 고소했다. 2014년 8월 16일 [[애슐리 영]]은 축구 경기 중에 [[새똥]]을 먹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DzdNY5JAug|영상]] 의외의 부분에서 치료제로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 건강한 사람의 똥[* 엄밀히 말하면 똥 속의 미생물]을 [[장염]] 환자의 장에 넣어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92921|장염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다만, [[쿠르츠게작트]]의 [[https://youtu.be/VzPD009qTN4?t=6m8s|영상]]에 언급된 내용처럼 특정 질병을 치료하다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부작용이 발생하는 이유는 해당 대변 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유해한 균이 문제. [[생로병사의 비밀]] 2019년 12월 11일 방영에서 장내 미생물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도 했고 [[대한민국]]에서 대변 이식을 받은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우스파크]]에서도 나왔는데 여기선 허가없이 대변이식을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장염에 시달리는 사람은 대장에 미생물들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유해한 미생물에도 치명적이므로 각국의 의료기관에서 엄격히 관리한다. 무허가 대변을 받았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무허가는 아니지만 2019년 6월 항생제 내성 [[대장균]] 때문에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9443|실제 사망 사례]]도 발생했다. [[잠비아]]에서는 [[젠켐|마약으로 쓰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