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경민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어린 시절부터 유망주로 인정받아서 이미 전략적으로 육성하던 선수였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가져오기 위한 필승의 카드를 위해 은퇴했던 [[박주봉]]을 컴백시켰는데, 그 파트너로 낙점된 선수가 바로 한체대 제자이기도 했던 라경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조합은 아쉽게도 실패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합의 목표를 좌절시킨 것은 같은 한국 대표팀의 제 2 카드였던 [[김동문]]-[[길영아]] 조합이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한국 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김동문-길영아 조합이 이겼다. 연습 경기 때는 성적이 반대였지만, 실전은 달랐다. 그 뒤 박주봉과 길영아가 모두 은퇴하고, 김동문과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 조합을 다시 꾸렸다. 이 둘의 조합은 무적이었는데, 국제 대회에서 이 둘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둘 중 한 명이 다치는 것 외에는 없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실제로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에는 라경민의 부상 때문에 세계 랭킹이 4위였지, 실제로는 우승 후보였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정말 모든 오픈 대회란 오픈 대회는 다 휩쓸었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도 가볍게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는 '''14개 대회 연속 우승과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먼치킨(클리셰)|먼치킨]]급''' 기록을 찍는, 그야말로 정말 적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그러나 이 조합이]] [[콩라인|올림픽 금메달과는 끝내 인연을 맺지 못한다]].''' [[2000 시드니 올림픽]]과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모두 '''충격의 8강 탈락을 경험'''한 것이다. 김동문은 그래도 1996년 신예 시절의 금메달과 2004년 아테네에서 남자 복식 금메달([[하태권]]과 함께 차지)을 차지했을 정도로 남자복식도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최강까지는 아니었던 여자 복식에서 뛰던 라경민은 결국 여자 복식에서는 올림픽 4위와 동메달 하나를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라경민은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 ~~고로 올림픽에서는 [[콩라인]]~~[* 그래도 세계선수권과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많이 한 덕분에 연금 점수는 한계선까지 채웠다.] 라경민의 금메달이 없는데는 1996년 애틀랜타에서는 자신이 학교 스승이던 박주봉과 같이 하면서 그만 얼어 버린 탓이 컸다. 반대로 2000년 시드니에서는 김동문과 라경민 모두 주눅이 들었고, 2004년 아테네에서는 김동문이 얼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우승후보 0순위라는 부담감이 그들을 주눅들게 한 것. 실제로 올림픽 배드민턴 종목의 징크스 중 하나가 혼합복식에서 세계랭킹 1위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징크스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세계랭킹 1위인 [[인도네시아]]조를 누르고, 세계랭킹 10위였던 [[이용대]]-[[이효정(배드민턴)|이효정]]조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징크스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중국의 세계랭킹 1위 장난-자오윤레이 조가 금메달을 차지 하면서 깨졌다.이 중국 조는 2016년까지 부동의 세계랭킹 1위 였으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치면서 다시 징크스에 발목이 잡힌다. 여기서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이 리우 올림픽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선수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용대-이효정에 패해 은메달을 땄던 인도네시아의 낫시르 선수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