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니아(아이돌)/활동 (문단 편집) === 2012년 === 2012년 드림콘서트에서 갑자기 등장했으며 발표도 하지 않은 노래인 ''''''를 선보였다. || '''라니아 - Killer 2012년 드림콘서트''' ||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UKOgitqnMI)]}}} || 티저도 뮤직비디오도 없이 방송에서 최초 공개되는 곡이다! 심지어 음원도 안 풀렸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조명이 매우 붉어서 시뻘건 무대로만 기억하는 듯...(...)~~호응을 해주고 싶어도 난생 처음 듣는 곡~~] 전주 부분에 목을 따버리는(!) 안무가 인상적이다. 시종일관 시뻘건 핏빛 무대, 내내 암울한 분위기, 귓가를 어지럽히는 사이렌 소리, 전체적으로 Dr. Feel Good과 흡사한데 그보다 확 심하게 다크해졌다. 마치 좀비들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로 벌써부터 한쪽에서나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 원래 "Killer"의 곡 제목은 '''The Killer'''였으며, 발매일은 [[2012년]] [[5월 24일]]이었다. 하지만, 아래 서술할 Style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음원 발매가 취소되었으며, 이후 [[Goodbye's the New HELLO|첫 미니 앨범]]에 정식으로 수록되게 된다. 이 노래로 Just Go 후속 활동을 하려고 했었으나 역시 아래 서술할 회사 문제와 [[황이나|멤버]] 탈퇴 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회사에서도 무척 아쉬웠는지, [[2016년]] [[5월 8일]] 데뷔 5주년 기념으로 내놓으려 했던 싱글에 다시 한 번 "Killer" 트랙을 4기 멤버들 버전으로 공개하려고 했다. [[김다래(1991)|그]][[태은|러]][[장진영(1993)|나]]]... 6월 중순 컴백한다고 하는데... 컴백은 [[9월 16일]]로 늦춰졌다. * KBS 다큐멘터리 3부작인 '13억이 본 한류' 2편인 <아시아의 마음을 훔치다>에 출연했다. 같은 소속사 선배였던 [[간미연]]도 출연해 멤버들 사이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뼈있는 충고를 준다. 다만 데뷔한 지 500일 정도 지났는데도 ''''정산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9개월 정도의 공백기를 청산하고 [[9월 21일]]에 네번째 디지털 싱글 《[[STYLE(라니아)|STYLE]]》를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STYLE(라니아)|STYLE]]>'''. 그러나 메인보컬 멤버인 [[코스믹걸|주이]]는 탈퇴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활동 때는 함께 하지 않는다.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팝팝팝 이후 몰락해가던 라니아에게 구원의 동앗줄이 내려왔으니, 바로 국내 3대 소속사 사장 중 한 명인 '''[[양현석]]의 지원이었다.''' 같은 해 4월, '''”돕고 싶습니다. ‘닥터 필 굿’ 때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팀, 잘돼야합니다. 조건 없이 뭐든 돕고 싶습니다“'''라는 뜻밖의 전화를 받은 뒤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0922000042&md=20120922120003_E|#]] 국내 연예계에서 이런 식의 다른 소속사 가수에 대한 파격적인 일은 전무후무한 일인데, YG 측은 “오래된 의리와 보은 때문”이라고 전했다. 소속사 측은 “양 대표는 최근 방송 출연 당시 1996년 처음 제작한 킵식스의 흥행 실패로 파산 위기에 놓였을 때 다른 기획사 사무실 한 켠에 위치한 지하 단칸방을 내준 지인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지인이 현재 라니아 소속사 대표다” 세간에도 괜찮은 이미지였던 [[양현석]]은 아예 이미지가 [[대인배]]로 굳어 버렸다.[* 지금 들으면 웃긴 소리지만 이 때는 양현석의 이미지가 연예기획사 사장들 중 가장 좋았었다. 반면 박진영의 이미지는 많이 안좋았었다. 요즘 들어 욕을 많이 먹는 아티스트들의 사건 사고도 [[G-DRAGON]]의 대마초 사건, [[승리(인물)|승리]]의 섹스 스캔들 사건, [[대성(BIGBANG)|대성]]의 사망사고 사건 정도로 비교적 적은 편이였고 당시 [[BIGBANG]]과 [[2NE1]]의 인기, [[이하이]]의 성공적인 데뷔, [[타블로]] 영입, 싸이의 [[강남스타일|국제적 대성공]] 등 아티스트를 지원해주는 이미지가 있었으며 활동 주기 문제도 없었다. 특히 K팝스타에서 박진영의 온갖 편협한 평론과 대비되는 열린 마음으로 주가가 높았다. 하지만 박봄의 마약 사건 이후로 아티스트들의 활동 감소, 계속되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사건사고, 본인의 처신 문제 등으로 이미지를 다 까먹었으며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본인에 대한 비판을 나름 수용한 박진영과는 입지가 완전히 반대로 바꿔었다는게 아이러니.] 단순히 곡 지원만 해 준 것이 아니라 멤버들에게 짐싸들고 회사로 들어오라고 했다. YG 연습실에서 연습시키고, 작곡([[타블로]]와 YG소속 작곡가 최필강)과 작사(타블로)도 담당, 안무와 편곡,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 녹음 전부 제공하는 등 해당 앨범 활동의 프로듀싱을 하나부터 열까지 싸그리 맡았다. 어떠한 요구조건도, 단서도 없이 이뤄진 뜻밖의 일이었다. 가요계에서는 이번 일이 유례가 없는 사례다. 라니아의 소속사 DR뮤직은 ”음악에 대한 조건없는 열정, 실력 가수에 대한 아낌없는 호의와 선의, 이 모든 것을 보여준 양현석 대표 및 YG 엔터테인먼트 전 스태프에게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멤버들은 양현석을 아예 양세주(양현석+구세주)님이라고 부른다. 이후 잠시나마 [[멜론]]차트 2위에 오르는 등의 신인그룹으로서 걸출한 성과를 냈다.[* 다만 이전에 암흑기가 워낙 길었던지라 이걸 못 믿은 몇몇 네티즌들이 순위조작이 있었던 거 아니냐고 악플을 달기도 했다. 2020년대 이 문서를 읽는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2010년대 초반 당시의 멜론 실시간 차트는 신인 아이돌 그룹도 충분히 차트인할 만큼 널널했고, 화제성만 조금 있다면 상위권 진입도 가능했다. 이후 5분 차트 등을 도입하며 멜론 측이 대놓고 팬덤 싸움을 부추김에 따라 차트인이 극단적으로 힘든 환경이 형성되었다.] "[[STYLE(라니아)|STYLE]]" 노래 자체는 좋다는 사람도, 별로라는 사람도 있는 등 평가가 갈리는 편이지만[* 닥터 필 굿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이 때의 라니아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라니아만의 색이 없어졌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한 해 데뷔하는 걸그룹이 30팀 정도 되는 상황에서, 특히나 포화상태라고 여겨졌던 걸그룹 바닥에서 '그나마'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걸그룹이 1집부터 대박을 터뜨리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으므로 [[걸스데이]]의 경우처럼 싱글 3~4집에서 포텐을 터뜨린 만큼 '망할지도 모르는 그룹'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아이돌'로 평가가 반전되었다. 데뷔 후 주요 비주얼 멤버 조이의 탈퇴 등으로 홍역을 겪었지만 아주 밝은 미래는 아닐지라도 망하지는 않겠구나 싶은 걸그룹으로 진화하였다.~~양느님 만세~~ "Dr. Feel Good"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STYLE(라니아)|STYLE]]" 활동 등으로 탄력을 받아 "[[STYLE(라니아)|STYLE]]" 활동 종료 후에는 미국으로 진출할 예정. 서부 최대 힙합 및 R&B 전문 레이블사인 '엠파이어 레코드'사와 유통 계약을, [[크리스 브라운]]의 마케팅 디렉터인 마이크 윌리엄스 산하의 '파이어웍스'사와는 매니지먼트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팬들은 국내 인기가 반드시 해외 성공을 좌우하지는 않더라면서(...)[* 대표적인 예가 [[초신성]]. 국내에 비해 일본에서의 인지도가 더 높은 편이다.] 그나마 길었던 활동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위안 삼는 중. 11월자 멘즈헬스지에는 화보가 실렸다. 11월 4일경에는 KBS 2TV 출발 드림팀2에 출현해 [[로엔 엔터테인먼트|로엔]] 소속 걸그룹인 [[피에스타(아이돌)|피에스타]]와 방송분량을 놓고 말 그대로의 진흙탕 싸움(!)인 머드레슬링 경기를 선보였다. 간만에 단체로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이라 독기가 올랐는지 진흙탕 싸움의 승자는 라니아가 되어 1분간 신곡공연이 재생되었고 패자인 피에스타는 10초간 재생되었다. [[리코(1989)|리코]]가 학업을 이유로 [[탈퇴|활동을 중단]]했다.--그리고 영영 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