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벤나 (문단 편집) == 역사 == 라벤나라는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에트루리아]]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스스로를 ‘라스나’라고 불렀는데, 거기에서 어원이 왔을수도 있다.] 로마인들은 [[포 강]] 삼각주를 정복하고 기원전 89년에 라벤나를 [[로마 공화국]]의 연합 도시로 받아들였다. 라벤나는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 군대를 집결시킨 곳이었다.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전투 이후 [[로마 제국]]의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이 항구는 로마 제국 함대의 중요한 주둔지였다. 라벤나는 로마 통치하에서 크게 번영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2세기 초에 70km 길이의 수로를 건설했다. [[마르코만니 전쟁]] 기간 동안 라벤나의 게르만족 정착민들은 반란을 일으켜 도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이유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더 많은 야만인들을 이탈리아로 데려오는 것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이탈리아로 데려온 사람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동서 로마 분열 이후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는 408년 수도를 [[밀라노]]에서[* [[로마]]는 이전부터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곳으로 옮기고 그 후의 서로마 황제들도 이곳에 눌러앉아 제국을 통치했다. 당시 라벤나는 5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도시가 늪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가 용이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도시의 항구와 동로마와의 해상 교통이 좋았기 때문에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것으로 보인다. 호노리우스 사후 사실상 서로마 제국의 통치자가 된 [[갈라 플라키디아]]는 조카 [[테오도시우스 2세]]의 지원으로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3세]]와 함께 라벤나를 발전시켰다. 이후 [[오도아케르]]가 [[라벤나 함락|라벤나를 함락]]해 서로마를 멸망시켰고 서로마 멸망 이후에는 오도아케르 왕국이 수도로 삼았다. 493년에는 [[테오도리크 대왕]]이 오도아케르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라벤나를 함락시키고 [[동고트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오도아케르와 테오도리크의 그 추종자들은 모두 아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었지만,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던 라틴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문화를 꽃피웠다. ||<-2> [[파일:Alboin's_Italy-it.svg.png|width=100%]] || ||<-2> 575년 이탈리아 반도의 모습 || ||<#FF8442> '''{{{#FFF 주황}}}''' ||동로마 제국 || ||<#B0C4DE> '''{{{#000 회색}}}''' ||랑고바르드 왕국 ||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Italien_zur_Langobardenzeit.jpg|width=100%]] || ||<-2> 동로마 제국, 랑고바르드 왕국이 공존했던 이탈리아의 지도와 오른쪽 위 교황령의 지도 || ||<#EDACC4> '''{{{#000 분홍}}}''' ||동로마 제국 || ||<#E79833> '''{{{#FFF 주황}}}''' ||랑고바르드 왕국 ||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탈리아 반도]]를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수복하기로 결심한 후]] 535년 그의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이탈리아를 침공했고 540년 라벤나를 정복했다. 554년 이탈리아 정복이 완료된 후, 라벤나는 이탈리아 동로마 정부의 소재지가 되었다. 이후 랑고바르드족이 침입하자 이곳에 [[라벤나 총독부]]가 세워져 751년까지 약 200년 간 동로마의 이탈리아 지역 통치를 담당했다. 727년, 738년에 잠깐 [[랑고바르드 왕국]]에게 점령되었지만, [[교황]]의 지원으로 회복하였다. ||<-2> [[파일:907px-Aistulf's_Italy-it.svg.png|width=100%]] || ||<-2> 751년 랑고바르드 왕국이 라벤나를 점령한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모습 || ||<#FF8442> '''{{{#FFF 주황}}}''' ||동로마 제국 || ||<#B0C4DE> '''{{{#000 회색}}}''' ||랑고바르드 왕국 || 그러나 751년에는 랑고바르드족의 침공을 버티지 못하면서 마지막 총독 [[에우티키오스]]의 사망 이후 동로마의 이탈리아 통치는 남부로 한정되었다.[* 그 지역을 통치하는 사람을 그리스어로 Catepan, 그 영역을 Catepanate of Italy라 한다.] 756년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랑고바르드 왕국을 몰아내고 이 지역을 교황에게 기증하였고, 그 뒤로 [[교황령]]에 속하였다. 1321년 [[단테 알리기에리]]는 [[신곡/천국편|신곡의 천국 편]]을 마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이곳에 묻혔으며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라벤나의 명소로 남아있다. 1527년부터 1529년까지 라벤나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잠깐 받은 적도 있지만, 그 후 교황령에 돌아왔다. 1636년 5월에는 엄청난 홍수로 피해를 입었다. 이후 300년 동안 운하망이 주변의 강을 우회시켜 늪지의 물을 빼냈고, 홍수의 가능성을 줄이고 도시 주변에 넓은 농경지를 만들었다. 1798년 [[프랑스 제1공화국]]의 괴뢰국인 치살피나 공화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이후 [[프랑스 제1제국]] 하에서 [[이탈리아 왕국(프랑스 제1제국)|이탈리아 왕국]]에 할양되었으나 1814년 교황령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1861년 [[이탈리아 통일]]을 통해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폭격으로 도심이 피해를 입었다. 현대 [[이탈리아]]에서는 [[에밀리아로마냐]]의 도시이며 인구는 16여만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