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오스/역사 (문단 편집) === 아이 라오(Ai Lao, 哀牢, 애뢰) === 라오족의 고대 조상으로 짐작되는 애뢰는 [[후한서]] 남만서남이열전 애뢰이(哀牢夷)전에 기록되어있다. * 애뢰 건국신화 옛날 뢰산(牢山=애뢰산)에 살던 여성 어부 사일(沙壹)이 침목(沈木)[* 남월지역에서 나무를 베어 물 속에 넣어 겉은 썩히고 속은 단단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부딪히는 소리에 감응하여 아들 10명을 낳았다. 이때 침목이 용으로 변신하여 사일을 찾아왔다. 아들 9명은 놀라서 도망치고, 남은 1명의 아들 등을 침목룡이 핥아주었다. 그리하여 그 아들의 이름을 조어(鳥語)[* 새소리처럼 들리는 남만오랑캐의 말]로 구륭(九隆)이라 하였는데, 배좌(背坐, 등지고 앉음)라는 뜻이다. 장성한 아들들은 아버지 침목룡이 핥아준 구륭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뢰산 아래 살던 부부는 10명의 딸을 낳았고 사일의 아들 10명과 각각 결혼하여 그 자손들이 번성하여 애뢰가 되었다. 흩어져 살면서 소왕(小王)을 각각 두었다. * 47년, 애뢰왕 현률의 녹다 정벌 애뢰왕 현률이 보낸 애뢰 군사들이 대나무 바구니 배를 타고 장강과 한수 사이(호북성 일대)의 녹다(鹿茤)를 공격해 사람들을 사로잡아 돌아오던 중 천둥벼락과 홍수를 만나 수천명이 익사하였다. 애뢰왕 현률은 애뢰 6곳의 소왕(小王)을 모아 다시 녹다를 공격했으나 녹다왕이 6소왕을 죽이고 격퇴하였다. 애뢰 군사들이 6소왕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었는데 밤에 호랑이들이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파먹으니 겁에 질려 퇴각하였다. * 51년, 애뢰왕 현률의 한나라 내부 현률왕은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애뢰가 주변 나라들을 공격한 것은 예로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 이번에 녹다를 공격했다고 하늘의 처벌을 받았으니 이는 하늘이 돕는 성스럽고 현명한 황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마침내 현률왕은 한나라 월수군 태수 정홍에게 내부하였고, 한 세조에게 애뢰군장으로 책봉받았고 이후로 매년 한나라에 조공하였다. 이때 애뢰의 호구는 2,770호 17,659명이었다. * 69년, 애뢰왕 류모의 한나라 내부 애뢰왕 류모가 한나라에 내부하였다. 이때 애뢰에는 77읍왕(邑王)이 있었고, 호구는 56,890호, 553,711명이었다. 한현종은 애뢰국에 애뢰현, 박남(博南)현을 설치하고, 익주군 서부도위 불위(不韋)현, 휴당(雟唐)현, 비소(比蘇)현, 접유(楪楡)현, 사룡(邪龍)현, 운남(雲南)현 등 6현을 떼어 붙여 영창군(永昌郡)을 신설하였다. 이로써 한나라는 박남산(博南山, 운남성 다리산 서남쪽)과 란창수(蘭倉水,박남산과 라민산羅岷山의 사이에 남북으로 흐르는 강)를 지나는 길을 열었다. 한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한나라 덕이 넓어 신속하지 않던 곳까지 열었도다. 박남산(博南山, 운남성 다리산 서남쪽)과 란창의 나루를 지나도다. 란창수(蘭倉水,박남산과 라민산羅岷山의 사이에 남북으로 흐르는 강)를 건너니 (한나라와는 다른) 것들인 사람((它人)이 되도다. * 76~77년, 애뢰왕 류뢰의 반란 애뢰왕 류뢰가 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수당성(雟唐城)을 공격하니 태수 왕심이 엽유현으로 도망갔다. 애뢰현 사람 3천명이 박남현을 공격하여 불을 질렀다. 한숙종은 월수군, 익주군, 영창군의 오랑캐와 한인(漢人) 9천명을 모아 토벌했다. 이듬해 영창군 사룡현 곤명 오랑캐와 노승 등이 박남현에 있던 애뢰왕 류뢰를 죽이고 애뢰 군사를 깨뜨렸다. 노승은 상을 받고 파로방읍후로 책봉되었다. * 애뢰의 내부와 애뢰의 반란 진압을 거치면서 한나라가 이 일대에 진출하자 94년, 돈인을왕 막연의 조공, 97년과 120년, 탄국(미얀마 샨족) 옹유조왕의 2차례 조공을 받는 등 미얀마,인도,대진(大秦=로마)로 가는 새로운 길을 확보하였다. * 애뢰의 풍습 애뢰 사람들은 코를 뚫고 귓불을 어깨까지 늘어뜨리는데, 읍왕(邑王)들은 어깨아래 세 치까지 더 늘어뜨린다. 땅은 기름져서 오곡과 뽕잎이 잘 된다. 물감을 들이고 무늬를 수놓는 방법을 알아서 모시포를 짜서 무늬를 넣으니 비단과도 같았다. 오동나무 꽃의 털로 짠 포는 하얀 빛이 때를 타지 않았는데 죽은 사람에게 덮어두었다가 수의를 만들어 입혔다. 대나무는 마디가 길어 1장(한길)이나 되는데 복죽(濮竹)이라 불렀다. 운남현에는 머리가 둘인 신성한 사슴이 있는데 독초를 먹을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