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배틀 (문단 편집) == 개요 == Line Battle. 정식 명칭은 아니고, 각종 매체에서 쓰이다가 자리잡은 [[신조어]]다. [[전열함]]간의 전투에서 구축한 전선을 뜻하는 Line of Battle이란 용어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나 구체적인 어원은 불명이다. 이러한 전투 형태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없지만, 굳이 가리키는 단어를 찾는다면 병사들이 일렬로 선 것을 가리키는 선형진(line)혹은 선형전술(linear tactics) 정도가 있을 따름이다. 서로 합의를 한 듯 '''양측이 선형진(line)을 유지'''한 채로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 '''무기 사정거리 내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형태의 전투를 의미한다. 주로 [[전열보병]], [[전열함]] 간의 전투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전투 양상은 오로지 화력에 올인하는 전술이였고,[* 이는 [[전열보병]] 항목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니 참고.] 프랑스 혁명전쟁 이후 대규모 상비군 시대가 열렸지만 대다수 유럽국가는 경제력의 한계로 인해 나타난 어쩔 수 없는 전술이었다. 현대에는 총기에 대한 정보가 흔하고 군에 입대하면 실탄 사격 훈련으로 병사 개개인이 총을 어떻게 쏴야하는지 잘 아는 상태이지만, 당시로선 총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이 많았으며 실탄 훈련은 국가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아 절대 불가능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제외.] 게다가 머스킷의 다소 저열한 성능이 더해져 일반 징집병의 유효 사거리는 50m가 최대였다. 그렇기에 가까이 접근하여 적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려면 다수의 화력으로 일제사격으로 적을 한방에 꺾는 전술이 효과적이였기에 이러한 전술이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당시 [[화승총]]의 명중률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숙련된 사수'의 경우 충분히 7, 80m내에서의 조준사격과 저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이 화승총의 높은 명중률에 강한 인상을 받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의미에서 '조총'이라고 불렀다는 걸 생각해보자. 명중률이 그렇게 안 좋다면 수많은 근대의 사냥꾼들이 어떻게 그걸로 사냥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나선정벌]]이 가능했던 것도 조총 덕분이었다.] 프랑스의 샤쇠르, 독일의 예거 부대의 경우처럼 숙련된 사수들[* 샤쇠르,예거는 대개 사냥꾼 출신들을 부르는 말로, 아예 이름부터가 해당 언어로 사냥꾼 부대라는 의미다. 우리말로는 엽병이라 부른다.]로 부대로 편성하여 산병전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먼저 봉건기사와 용병에 의존하던 체계에서 대규모 상비군 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군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하여 병사들 개개인의 자질과 훈련도는 극도로 저하됨으로써 머스킷의 명중률을 충분히 살릴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또한 매 사격 때마다 흑색화약 특성상 연기가 나오는데, 수십 수백 명이 뭉쳐서 쏘면 연막탄 수준이다. 당연히 2번째 사격부터는 연막에 시야가 가려진다. 이는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의 영향이 컸다. 당시 대다수의 유럽은 모병제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프랑스 혁명정부가 신병을 대거 징집함으로서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머릿수'''가 받쳐주기에 계속되는 전쟁을 이겼고, 나폴레옹 역시 국민개병제를 실시함으로서 전 유럽을 정복한 것이였다. 그렇기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에 상응하는 병사 수가 필요했기에 징병제를 실시하게 됐다. 다수의 비숙련병 물량이 소수의 정예 숙련병을 압도하면서(총의 특성이다) 생겨난 교리. 문제는 한정된 예산에 머릿수가 늘어나니 개개인에게 들일 돈이 부족해졌고, 이는 대충 한방 쏘고 총검돌격하는 교리로 이어졌다. 여기서 예외인 건 돈지랄의 영국 정도. 영국은 실탄으로 훈련하는 등 사격에 공을 들였고, 덕분에 어지간한 돌격은 사격만으로 쓸어버리는 전공을 세우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