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배틀 (문단 편집) == 실질적 문제 == >적을 만나게 되면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달려있으니, 얼굴은 누렇게 되고 입은 마르며, 손은 떨리고 다리는 힘이 빠져서 배운 기술은 모두 잊어버린다. 화기(火器)는 더욱 일을 그르치니, 하늘을 향해 쏘기도 하고, 총을 쏘면서 머리를 돌려 도망칠 길을 보기도 하고, 탄환을 입에 머금고 조급하게 총을 쏠 준비를 하다가 뱃속으로 삼켜 버리기도 하고, 탄환 넣는 것을 잊기도 하고, 탄환을 먼저 넣고 화약을 나중에 넣기도 하고, 큰 총구에 작은 탄환을 넣어서 기울여 겨눌 때 탄환이 빠져나오기도 하고, 준비가 끝났는데 화승이 땅에 떨어져 습기에 꺼져버리기도 하고, 혹은 약선의 약이 저절로 타버리기도 한다. '''열 자루의 총 중에 겨우 예닐곱 자루가 발사되고, 그 중에 두세 발의 탄환이 적중될 뿐이다.''' 이것들은 수많은 전투 중에 직접 보고 시험해 보아 알게 된 것이다. -『[[척계광|기효신서]]』 4권 수족편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머스킷의 성능 그 자체에 있었다. 전장식 머스킷의 특성상 아무리 사격에 숙달된 사수라고 해도 머스킷으로는 1분에 2~3발이 한계였다. 게다가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에서 화약과 총기는 매우 값비싼 화기였고, 당연히 사격 훈련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 현대군도 사격훈련 한번 하는데 엄청난 물자를 요구한다. 군필자 중 행정병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군의 질적 향상에 노력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근세 최대이자 최고의 국가였던 프랑스는 막대한 규모인 자국군 병사들의 사격훈련에 사용되는 화약 값을 감당할 수 없어 아예 실사격 훈련을 하지 않았다. 빈 총으로 사격 훈련을 할 때도 부싯돌[* 자세한 건 [[플린트락]] 참조.]이 아까워 나무조각을 끼워놓고 했을 정도. 동시대에 실사격 훈련을 마음껏 한 국가는 섬나라라는 특성 덕분에 소수 정예로 육군을 키울 수 있던 데다 해외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초석이 펑펑 나는 인도 시장을 독점한 영국이 유일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개 진형을 운용하고 병사 개개인의 조준 사격 실력만으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망상에 가까웠다. 산개 진형의 가장 큰 카운터는 따로 있었는데 [[용기병|병사 개개인이 1~2분 수준의 장전속도로는 기병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밀집 대형이 아니면 기병한테 다 도륙당하는 일이 빈번했고, 총검으로 방진을 구사해도 엉성하면 박살 나는 건 똑같다. [[총검]]이 없던 때는 [[파이크]]병들이 기병들로부터 총병을 보호해줘야 했었다. 그래서 사격에 대한 감도 없는 병사들을 가지고 최대의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찾다보니 나온 것이 마치 [[팔랑크스]]를 재현하듯 밀집대형을 지어(또한 전장식이어서 장전 시간도 필요했으므로) 일정한 화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일제사격을 하여 명중 확률을 올리는 것이었고, 이러다 보니 병사의 수에 승패가 갈리게 되고, 이렇게 되니 또 이기기 위해 병력을 늘리고, 병사 수가 늘어나니 훈련비용은 더 감당이 안 되는 악순환을 통해 병졸 수와 확률적 명중률에 의존하는 라인배틀이 정착되게 되었다. 물론 실전에서는 몇 번 쏘고 한쪽 병사들이 자신들의 피해에 겁을 먹으면 다른 쪽이 [[착검돌격]]을 해서 [[백병전]]으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옆에 서있는 전우들이 우수수 총 맞아 죽어가고 있는데 적이 다시 장전을 하고 자신을 조준한다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몇몇 병사는 공포에 질려 도주하게 되는데 병사 한 둘이 도주하기 시작하면 다른 병사들도 우루루 도주하기 시작하고 결국 와해된 전열에 적들이 돌격해서 완전히 마무리 짓는 게 일반적인 전투 전개 양상이었다. 결국 라인배틀은 '''어느 쪽 전열보병이 더 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는 병사 없이 더 끈질기게 버티는가'''가 핵심 요소였다. 따라서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전열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전투 중 도주 시 무조건 사형같은 엄격한 군율을 세우고 도주한 병사를 본보기로 혹독하게 고문하다 처형하는 일이 제법 있었다. 라인 배틀 방식은 19세기 중후반 퍼커션캡의 발전으로 드물게 자행되면서 반작용으로 동시에 [[참호]]가 발전한다.[*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 돌격전술의 형태는 이미 19세기 때 등장한 전투 형태이다. 대표적인 예로 떠오르는 전쟁이 [[보불전쟁]]과 [[남북전쟁]], 슐레스비히 전쟁이다. [[보불전쟁]] 슐레스비히 전쟁 때는 라인 배틀이 전혀 발생되지 않았고 규모는 작지만 1차대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참호전]]이 더 많이 발생되었다.] 그러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 [[기관총]] 같은 신무기의 확산으로 밀집대형으로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게 되면서 사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