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푸라푸 (문단 편집) == 생애 == 스페인이 도래하기전 필리핀 제도에서는 기존의 주류 종교였던 [[힌두교]]와 [[남방불교]],[[애니미즘]]을 믿던 대부분의 세력들이 서서히 [[이슬람]]에 잠식 당하고 있었다. 스페인이 나타나기 최소 100년전 부터 이미 기존 세력들과 이슬람 세력들간에 전쟁과 휴전, 무역재개를 반복했던 기록이 있다. 필리핀에서의 이슬람 팽창은 크게 두가지 루트로 나뉘는데, [[인도네시아]]에서 가까운 필리핀 남부의 [[술루 제도]]를 포함한 [[민다나오]]섬 서부를 중심으로한 이슬람화와 [[브루나이]]에서 가까운 [[마닐라]]에서의 이슬람화가 있다. 스페인이 도착한 시점에서는 이미 팔라완 과 민다나오의 절반이 이슬람 세력권에 들어갔고 결정적으로 국제 무역도시였던 [[마닐라]]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슬람에게 필리핀 제도의 주도권이 넘어갔다. 한편, 중부 [[비사야 제도]]는 이슬람 세력들과 반목이 심한 곳이였다. 최소 스페인이 나타나기 100년 이전 부터 이슬람 세력들과 자주 전쟁을 해오던 지역이였다. 나름 지역 맹주급의 [[세부]] 왕국과 부투안 왕국이 결혼 동맹을 맺고 통합을 모색했지만 비사야 전체가 통합되는 결과는 가져오지 못했고, 더군다나 비사야 제도의 국가들 입장에서는 [[마닐라]],[[팔라완]] 등이 이슬람 세력화 되면서 서쪽, 북쪽,남쪽으로 향하는 항로들이 봉쇄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동쪽은 망망대해인 [[태평양]]이 있었다. 사실 비사야 지방을 비롯한 기존 세력들이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스페인을 불러오고 [[스페인 제국]]의 신하가 된것이 [[필리핀 도독령]] 역사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이슬람 세력은 [[세부]] 코앞에 있던 막탄 섬을 점령했고, 라푸라푸는 막탄 섬의 [[이슬람교]]를 믿는 소영주로, 세부 섬을 다스리는 국왕인 라자 후마본과 막탄 섬 지배를 두고 대립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필리핀 제도에 스페인이 등장했다. 스페인의 마젤란 함대가 나타나기 전에도 포르투갈인들과 필리핀인들 사이의 교류와 무역은 자주 있었다. 대항해시대에 있어 필수적인 인재들이였던 필리핀인들을 자주 고용했던 포르투갈이였고, 포르투갈 함대와 이 지역의 무슬림 함대가 해전까지 벌이던 실정이였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존재감은 쉽게 퍼졌고 필리핀인들 입장에서 스페인의 마젤란 함대가 처음으로 조우한 유럽인들은 아니였다. 스페인의 [[페르디난드 마젤란|마젤란]] 원정대가 필리핀에 상륙하자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포르투갈의 방식인 지역 통치자와 친밀관계를 형성하고 그의 정적을 제거함으로써 지역의 호응을 얻고자 하였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방식으로 세부 국왕 라자 후마본과 의형제 관계를 형성하고, 막탄 섬 지배를 두고 경쟁하던 막탄 섬 연합 소영주인 라푸라푸(Lapu-Lapu)를 죽이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라푸라푸는 힌두교, 불교계인 라자 후마본과 달리 무슬림이었다. 즉, 자신이 속한 왕국의 국왕과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다. 필리핀은 왕권이 낮은 상업 봉건제였고 대규모 침략을 당하거나 각자의 이익이 하나로 일치된 전투가 아닌 이상, 군사동원력 또한 금전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일반적인 전투에서는 영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부터 필리핀 제도는 인도 계통의 세력들과 이슬람계 세력들이 무역으로 협력, 공존하면서도 세력다툼이 일어나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기존 세력들과 이슬람 세력들은 때론 전쟁을 하면서도 무역으로 공존하던 복잡미묘한 관계였기에 전면전을 하지않던 상황에서 스페인에 많은 군대를 붙여주지 못하였고 제3의 세력으로 등장한 스페인군을 이용해 막탄섬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자 했다. 마젤란은 라푸라푸를 조그만한 막탄 섬의 소영주이니 쉽게 이길 것이라고 오판하였고, 첫번째 전투에서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스페인인 60여 명과 세부인 200 ~ 300명이라는 소수 병력만 이끌고 갔다. 그렇다고 마젤란이 닥치고 쳐들어간 것은 아니고 먼저 세부인을 사신으로 보내 항복과 같이 라자 후마본의 막탄 섬 지배를 인정하고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특히 마젤란의 요구가 사실상 협박이었기에 라푸라푸를 화나게 만들었다. 물론 무슬림이었던 라푸라푸는 비웃음과 함께 요구에 대해 세부인 사신을 두들겨 패서 보내는것으로 답변했다. 그리고 부족들에게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마젤란이 소수 병력을 이끌고 막탄 섬으로 쳐들어오니 해안에서 마젤란의 예상과 달리 준비되어 있는 라푸라푸의 1,500여명의 전사들과 맞닥뜨리고 만다. 스페인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싸우길 마다하지 않았는데, 800년간 이슬람과의 [[레콩키스타]] 전쟁과 유럽 각국과의 오랜 전쟁경험으로 다져진 중근세 시기의 스페인 병사들의 보병으로써의 기량은 유럽 최강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 때로는 2배 또는 10배에 가까운 적을 상대로 승리할 정도의 강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카탈루냐 용병]] 참조.] 더군다나 [[아메리카]]에서 [[아즈텍]],[[마야]],[[잉카]] 등의 인디언 문명들을 각각 몇백명의 [[콩키스타도르]]병사들로 [[무쌍]]을 찍고 난 후, 멸망시킨 전력이 있다. 적군의 숫자는 중근세 시기의 스페인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였다. 스페인이 오기 전 필리핀 제도 또한 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성상 종교, 문화, 민족, 언어가 제각기 다른 여러 세력들이 난립하며 무역과 전쟁을 꾸준히 지속하였다. 기록이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으나 고대부터 [[전국시대]] 같은 상황이 끊임없이 벌어졌던 것은 분명하다.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참패했고 마젤란은 끔살당했다. 라푸라푸 측의 사상자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젤란은 퇴각 와중에 무거운 갑옷과 불편한 무릎 때문에 뒤쳐지고 말았고, 하필 다친 무릎에 다시 부상을 입어 결국 쓰러지고 만 것이다. 라푸라푸 군대는 침략자들이 총과 화살을 쏴대는 것에 일부 병력이 죽거나 다치는 걸 보고 거리를 두고 떨어져 화살과 돌을 던져댔다. 스페인 원정대는 화약이 바닥나서 적들이 내던지는 돌에 압도당했다. 그나마 이들은 단단한 투구와 갑옷으로 돌팔매질을 버텼다. 하지만 라푸라푸 군대는 이걸 보고 저들 침략자들이 장거리 무기가 이젠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몰려와서 이들을 공격하며 투구와 갑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다리를 집중 공격했다. 결국 마젤란은 명성에 비해서는 결코 곱지 못한 최후를 맞았다.] 원주민군의 창과 검에 끔살된데다 원주민들 측에서 시신을 돌려주지 않아 시체마저 수습하지 못했다. 몇 번의 전투가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기록에 따르면 원주민 촌장 라푸라푸에게 원하는 만큼 재물도 주고 수습할 테니 시신을 인계해 달라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하며 라푸라푸가 오히려 그의 시신을 전승 기념물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라푸라푸와 [[칼리 아르니스]]가 재평가되고 있으며 스페인 도래 이전의 20개가 넘는 필리핀 국가들의 군사력 또한 연구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스페인은 마젤란 원정대 실패 이후에도 4번의 추가적인 필리핀 원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막탄섬은 민다나오 중서부와 가깝고 그곳에 있던 이슬람 술탄국들과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막탄섬은 민다나오 이슬람 세력들의 [[비사야 제도]] 정복의 최전방에 위치한 전초기지였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막탄섬이 정복당하고 [[필리핀 도독령]]이 설립되면서 17개 이상의 필리핀 중소국가들은 스페인에 충성을 맹세하고 자치권을 받고 스페인 제국의 [[가신]]이 된다. 하지만 민다나오의 3개의 이슬람 왕국들은 스페인의 회유를 거부하고 300년간 전쟁을 하였다. 피가페타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적들은 모두 마젤란에게 달려들었다. 적들 중 한 사람이 크기만 조금 큰 [[언월도]]와 비슷하게 생긴, 칼몸이 흰 넓적한 장검으로 마젤란의 왼쪽 다리를 베었다. 그 공격에 마젤란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적들은 철창과 [[죽창]], 칼몸이 흰 넓적한 칼로[* '캄필란' 이라고 하는 필리핀 전통 무기이며 특징은 생물의 벌어진 입을 묘사하느라 갈라진 칼자루 디자인이다. 필리핀의 전통 무술 [[칼리 아르니스]]에서 쓰이는 무기이기도 하다.[[https://www.google.com/search?q=Kampilan&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jGkPbNu-TlAhXSKqYKHcwzCeYQ_AUIEigB&biw=1920&bih=937#imgrc=KcunMHCz_awC5M:|이미지]]] 마젤란에게 달려들어서 우리의 거울이자, 빛, 위안을 주는 사람이자 진정한 안내자를 죽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