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역사 (문단 편집) === 스탈린 시대 === 스탈린은 [[서기장#s-3.1]]으로써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 및 [[니콜라이 부하린|부하린]]을 포함한 당내 유력 인사들을 몰락시켰으며, 제1차 5개년 공업화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이 시점부터 소련은 본격적인 [[산업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제1차 공업화 이후 제2, 제3차 공업화 계획이 진행되며 훗날 [[독소전쟁]]을 수행할 전시공업의 기틀을 닦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반발이 거세서 지방마다 크고 작은 봉기와 [[퉁구스 공화국]]과 같이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또한 [[집단농장]]화를 추진함에 따라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야기하여 수백만 명이 아사했으며, [[대숙청]] 시기 지식인들을 다수 처형하거나 수용소로 끌고 가면서 군사, 로켓 분야를 제외한 소련의 학문이 크게 쇠퇴하였다. 1930년대 중반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부상하자, 스탈린은 처음에는 히틀러를 경계하였으나 곧 유럽에서 패권을 추구할 기회로 여기면서 1939년 8월 [[나치 독일]]과 함께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소련은 독일과 비밀협정을 통해 [[발트 3국]]을 합병하고,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 동부 영토를 자국으로 흡수했다. 소련은 [[폴란드 침공]] 이후 [[핀란드]] 또한 [[겨울전쟁]]으로 병합하려 했다. 하지만 [[핀란드군]]의 완강한 저항과 대숙청으로 인한 소련군 장교단의 약화로 인해 오랫동안 고전했으며, 이는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결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서유럽과 동유럽 국가를 정복한 [[나치 독일]]은 1941년 6월 22일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면서 소련을 상대로 [[독소전쟁|전쟁]]을 선포했다. 전쟁 초기 소련군은 [[독일 국방군|독일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수도(행정구역)|수도]] [[모스크바]]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며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빠졌다. 그러나 1941년말 [[모스크바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도를 포함한 정치중심부가 함락되는 일을 면하면서 전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독일군을 패배시키면서 [[쿠르스크 전투]]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어서 1944년에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결정타를 먹이며 1년간 승승장구를 거두면서 동구권 각 나라의 공산주의 세력을 지원하여 전후 위성국가로 만들었고 1945년 5월에는 [[나치 독일|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하여 독소전의 승전국이 되었다. 나치 점령 시절의 [[소련 군정청]],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 [[로코트 자치국]]에서 활동한 [[러시아 해방군]], [[카민스키 여단]], [[동방부대]] 등의 군 세력이나 소수민족들은 종전 후 시베리아의 [[굴라크]]로 끌려가거나 처형되었다. 독소전이 끝나고 세 달이 지난 45년 8월 8일에는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남하하며 대일전을 시작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한반도 북부 지방 일부와 슘슈 섬에서 멈추게 된다. 소련군이 한반도에서 북위 38도 선 북쪽까지 내려오고 남북 분단에 영향을 미친 것은 종전 이후의 이야기다. 전쟁이 끝나자 스탈린은 [[철의 장막]]으로 불리는 공산주의 국가들만의 폐쇄적인 경제권을 형성했으며, 소련은 이들 위성 국가들의 주요 공산품을 독점적으로 수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