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역사 (문단 편집) === 옐친 시대 === [[소련 해체|소련 붕괴]] 이후 소련의 구성국은 모두 독립했고, 소련의 왕초였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으로 개편되었다. 소련이 갑작스럽게 해체되면서 기존의 [[러시아 SFSR]] 내의 자치공화국들과 자치주들이 문제가 되었다.[* [[체첸-인구시 공화국]], [[타타르스탄 공화국]],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사하 공화국]], [[칼미키야 공화국]], [[모르드바 공화국]], [[추바시 공화국]], [[우드무르트 공화국]], [[투바 공화국]], [[부랴티야 공화국]], [[알타이 공화국|고르노-알타이 공화국]], [[하카시야 공화국]], [[북오세티야 공화국]],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 [[카라차예보-체르케시야 공화국]], [[카렐리야 공화국]], [[코미 공화국]], [[마리 엘 공화국]], [[다게스탄 공화국]]. 그리고 자치주 중에서는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아디게야 공화국|아디게야 자치구]]. ] 이들의 자치 [[최고 소비에트]]는 [[1990년]] [[7월 20일]] 북오세티야 ASSR을 시작으로 러시아 SFSR 내에서 [[https://ru.wikipedia.org/wiki/%D0%9F%D0%B0%D1%80%D0%B0%D0%B4_%D1%81%D1%83%D0%B2%D0%B5%D1%80%D0%B5%D0%BD%D0%B8%D1%82%D0%B5%D1%82%D0%BE%D0%B2#%D0%9F%D0%B0%D1%80%D0%B0%D0%B4_%D1%81%D1%83%D0%B2%D0%B5%D1%80%D0%B5%D0%BD%D0%B8%D1%82%D0%B5%D1%82%D0%BE%D0%B2_%D0%B2_%D0%A0%D0%A1%D0%A4%D0%A1%D0%A0|주권의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주권 선언을 발표하여 러시아 SFSR 소속이 아닌 새로운 소련의 SSR임을 주장하였는데, 소련이 해체되면서 갑자기 독립국이 되어버렸다.(러시아 SFSR 외 지역에서도 일어났다. ASSR중엔 [[크림 공화국]], [[카라칼팍스탄]], [[나흐츠반]], [[트란스니스트리아]]/AO 중엔 [[가가우지아]], [[나고르노-카라바흐]]도 주권선언.) 그러나 이들은 [[체첸]]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자치권을 부여받는다면 [[러시아 연방]]에 가입할 생각이 있었다. 이에 따라 옐친 정부는 각 정부들과 협상을 벌여 [[1992년]] [[3월 31일]], 모스크바에서 [[https://ru.wikipedia.org/wiki/%D0%A4%D0%B5%D0%B4%D0%B5%D1%80%D0%B0%D1%82%D0%B8%D0%B2%D0%BD%D1%8B%D0%B9_%D0%B4%D0%BE%D0%B3%D0%BE%D0%B2%D0%BE%D1%80|연방 조약]]을 체결시켜 타타르스탄과 체첸을 제외한 기존 러시아 SFSR 영토를 모두 회복하였다. 타타르스탄은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여 2년 더 협상한 끝에 [[1994년]] '러시아 연방과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국가 당국과 권한의 상호 위임 사이의 관할권 구분에 관한 협정'을 체결해서 러시아 연방에 가입했으며, 체첸은 끝까지 거부하면서 [[체첸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외에도 갑작스러운 해체로 인해 1992년부터 1993년까지는 1978년에 제정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이 [[러시아 연방]] 결성 이후에도 한동안 헌법 역할을 했다. 당시 1978년 제정된 소련 시절 헌법은 1990년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다당제]]가 용인되고 [[민주주의]], [[지방자치]]가 헌법에 명시되는 등의 개헌이 이루어졌으나, 근본적으로는 [[소련]]의 존재를 전제로 한 헌법이었다. 따라서 소련의 구성국이 아닌 독립 국가가 된 러시아 연방은 새롭게 헌법을 제정해야 했다. 이 때 러시아의 정치체제는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웠다. 대통령의 권한 또한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에 가까워, 대통령은 총리를 지명할 수 있었지만, 의회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또한 의회는 대통령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거나 국정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새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존 최고회의의 권한보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대통령제]]''' 헌법을 원했다. 반면 러시아 최고회의는 소련 시절과 비슷하게 최고회의가 실권을 쥐는 '''[[의원 내각제|내각제]]'''처럼 제정되길 원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 문제를 가지고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여러 차례 조율했지만, 당연히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옐친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경제 파탄과 옐친의 비민주적 통치행위로 인해 최고의회는 점점 옐친과 대립각을 세웠다.[* 옐친 정부에서 경제가 파탄나자 최고회의는 옐친과 점점 대립했고, 옐친이 지명한 총리에 대해 최고회의가 동의해 주지 않아 내각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자 행정명령으로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해 옐친이 헌법에도 없는 '[[의회해산|최고회의 해산]]'을 단행하고 새 입법부를 선출하려 하고, 이에 맞서 최고회의는 옐친을 [[탄핵]]하려고 들자, 대통령과 최고회의는 결국 무력 충돌을 벌였다. 이 사건이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이다. 1993년 10월 최고회의가 해산 결정에 반발해 모스크바에서 무력 봉기를 일으키자, 옐친은 군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최고회의의 무력봉기를 제압했다. 이어 1993년 12월 러시아 연방 헌법을 제정해 자신의 꼭두각시가 된 새 입법부(국가두마)에서 이를 통과시켰다. 이 헌법안은 국민투표에서 54.8%의 투표율, 58.4%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정식으로 헌법이 되었다. 이 헌법은 [[프랑스 헌법]]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이원집정부제]]를 표방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은 이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에 비해 크게 강해졌다. 경제적으로 러시아 연방은 소련식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한 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사회혼란이 발생했다.[* 사실 러시아 정부가 일명 충격요법으로 불리는 급격한 전환을 추진한 배경에는 1980년대 말 계획경제 체제가 급속도로 무너지면서 경제가 사실상 마비 직전까지 악화된 이유가 컸다. 소련 시절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분업화된 생산체계가 마비되어 버리자,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 적자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자구책을 장기간에 걸쳐 추진하기 어려웠다.] 특히 소련 해체 직후 1990년대 말까지 [[러시아 루블]]은 여러 차례 [[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통화로써 자산손실을 일으켰고, 임금수준의 급격한 하락, 복지정책 감축으로 인한 사회안전망의 붕괴, 빈부격차 심화로 인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이로 인하여 1990년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욕을 잃었다. 여기에 혼란한 정치 상황까지 겹치면서 결국 각국에 막대한 자금을 빌리고도 갚지 못해 [[모라토리움]]까지 선언하기에 이른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러시아/정치,version=60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