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키☆스타 (문단 편집) == 미디어 믹스 == 콤프틱에 연재된 만화가 인기를 끌자 마침내는 캐릭터들이 성우를 배정받고 [[드라마 CD]]와 [[NDS]]용 게임이 발매되기에 이른다. 드라마 CD는 2005년 8월 24일에, DS용 게임 [[러키☆스타 모에드릴]]은 2005년 12월 1일에 발매되었고, 이후 애니메이션화가 대히트하여 [[하루히즘]] 이후로 또 다시 1년만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다. 스즈미야 하루히가 성공을 바탕으로 이것 저것 시도 해보았다면, 러키스타의 경우 본격적으로 노리고 전개해서 성공한 것이 큰 차이이다. 러키☆스타는 비록 장기 프로젝트도 아니였고, 무도관 라이브 단발로 끝났지만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의 원조로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성공했다는 엄청난 의의가 있다. 당시 [[아니사마]]같은 애니송 페스티벌도 아니고 성우들이 출연하는 단독 애니메이션 이벤트로 무도관을 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시기였다. [[캐릭터송]]의 원조는 아니지만, 러키스타는 본격적으로 캐릭터송만 50곡 가까이 전개했으며 오프닝과 댜앙한 엔딩곡과 게임 관련 싱글 등 러키스타 관련 노래를 모두 합치면 100곡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앨범을 발매하여 기존 캐릭터송으로 유명한 [[마법선생 네기마!]]도 뛰어넘었으며,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캐릭터송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또 라이브에서 애니메이션 장면을 재현하는 등. 현대의 [[성캐일치]] 라이브들의 원조가 되기도 하였다.[* 이 분야의 원조로 평가되는 [[아이돌 마스터]]조차도 본격적인 미디어 믹스의 전개는 러키스타보다 늦은 [[THE iDOLM@STER 2]]부터 였다.] 이처럼 러키☆스타는 계획된 미디어 믹스 체계 속에서 애니메이션의 히트를 기반으로 캐릭터, 음악, 게임, 라이브로 전개되어 나갔으며,사회적으로는 오타쿠 업계에서 최초로 [[성지순례]]현상이 주목 받기도 하였다.[* 일본 오타쿠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성지순례 마케팅이 유행한 것은 [[걸즈 앤 판처]] 이후로 본다.] 이후에 나올 현대의 모든 [[미디어 믹스]] 작품들은 러키스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대부분의 컨텐츠는 이미 러키스타에서 다 시도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게임이 콘솔 게임에서 모바일 게임 위주로 바뀐 정도. 다만 러키☆스타는 무도관 라이브를 마치고 [[박수칠 때 떠나라|박수칠 때 떠났기에]] 애니메이션의 단발성 히트와 상품 전개로 끝을 맺어, 인기도 확 식어버렸고, 원작의 파워까지 확 죽어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로서는 크게 평가받지 못 했다. 그 후 쿄애니는 [[케이온(만화)|케이온]] 등에서 이러한 애니메이션 기반 미디어 믹스 전개를 이어나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