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온(니카라과) (문단 편집) == 역사 == 원래 레온은 현 위치에서 30km 정도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건설되었다. 1524년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가 건설한 이 도시는 오늘날 "구(舊) 레온"이라는 뜻의 레온비에호(León Viejo)로 불린다. 레온비에호는 모모톰보 화산 분화에 뒤따른 수차례의 지진을 겪고 1610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레온비에호의 폐허는 1960년 발굴되었고 202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페인 식민지 시기 레온은 니카라과 주의 중심지였다.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레온 대성당[* 정식 명칭은 레온의 성모승천 대성당(Catedral de la Asuncíon de María de León)이다.]이 1706년 건설을 시작하여 1740년에 완공되었다. 1786년 스페인 [[보르본 왕조]]가 일으킨 중앙집권적 개혁의 일환으로, 당시 중미를 관할하는 과테말라 도독부(Capitanía General de Guatemala)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기존의 코레히미엔토(corregimiento) 제도를 대신할 인텐덴시아(intendencia)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니카라과는 레온 인텐덴시아(Intendencia de León)로 불렸고 레온 인텐덴시아의 주도도 당연히 레온이었다. 1813년에는 중앙아메리카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와중에 니카라과 국립자치대학(UNAN)이 설립되었다.[* 오늘날에는 수도 마나과로 캠퍼스 본관이 이전했지만 레온에도 분교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와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 시대를 거쳐 1839년 완전히 독립할 당시 레온은 니카라과의 수도로 선포되었다. 이후 몇년간 니카라과의 수도는 진보 성향의 레온과 보수 성향의 그라나다 사이에서 수차례 이전했다. 수도 위치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1852년 두 도시 사이의 [[마나과]]로 정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1950년 레온의 인구는 3만 1천명이었다.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1956년 9월 21일 이곳에서 시인 리고베르토 로페스 페레스에 암살되었다. [[니카라과 혁명]] 당시 [[FSLN]] 반군의 아성으로서 정부측 헌병군(GD)과 격전이 벌어져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구시가지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오늘날에도 니카라과 좌익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예를 들어 1979년 이래 지금까지 모든 시장이 FSLN 당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