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이저디스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 [youtube(kP4H7bjsXbM)] || || 1996년 삼성전자의 레이저디스크 데모 영상[* 와이드TV 용으로 추정된다.] || 한국에서는 비싼 가격 때문에 가정에는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레이저디스크 재생에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전축]]의 부속품이기도 한 [[앰프]]와 공유하는 것이 경제적이었으며, 레이저디스크 재생만을 위해 크고 비싸고 무거운 재생기와 전축, [[소니]] [[트리니트론]] TV 셋 다 사는 건 당시 한국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경제 사정이 나아진 1980년대 중반, 특히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의 영향으로 이제 막 컬러 TV 보급이 완료되는 시기였으니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는 언감생심이었다. 주로 상류층과 마니아 위주로 보급되었으며 중산층과 서민층들은 TV 성능 문제로 인해 보급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의 집에 장만한 TV로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만 들여놓는다고 VHS보다 노이즈만 없을 뿐 훨씬 나은 화질을 보여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살 이유가 없었다. TV 또한 그에 걸맞은 낮은 도트피치의 CRT를 사용한 제품이어야 제 화질이 나온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 보급된 보통의 20인치 이상 TV는 고급형 제품이 아닌 이상 CRT 성능이 떨어져 겨우 VHS나 볼만한 수준이었다. 레이저디스크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삼성전자]]나 [[금성사]]의 고급형 제품이나 소니 [[트리니트론]]급으로, 23인치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일본산 TV는 수입 규제 품목이라서 충무로 등지에서 현지 가격의 2배 이상을 주고 사야만 했다. 제대로 화질을 맛보려면 꽤 많은 돈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일본 내수용]]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TV 시청을 위해서는 UHF 전파를 수신하거나 VCR 같은 외장형 튜너를 구비해야 되고 부피가 커서 밀수입을 하기가 번거로우므로 대부분 미군 PX 유출품을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1991년에야 관악산 송출 [[KBS 1TV]]가 UHF ch.25로 전환되었으며 그 전에는 VHF-Low ch.5로 송출되었다. 그것도 [[SBS]] 개국 덕에 전환된 것이다.][* 독점 계약된 경우 [[미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제3국 생산품을 수입했다.] 1970~80년대 한국에서는 아직 댄스 음악이나 아이돌 같은 '''보는 음악''' 시대가 아닌, [[라디오]]나 [[카세트테이프]] 등으로 팝송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듣는 음악''' 시대였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가정용 전축이나 음반 산업이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도 [[토토즐]] 같은 TV 음악 방송 쇼에 당시로서는 화려한 무대 장치를 내세우려는 시도를 한 적도 있었지만, 뮤직비디오라기 보다는 즉석 무대에 가까워서 [[뮤직비디오]] 문화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이후 [[1990년대]] 이후에서야 '''[[Video Killed the Radio Star|보는 음악]]''' 시대가 갓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보기 힘들었지만 A/V 카페, [[노래방]]이나 대형 놀이 시설, 아주 가끔씩은 큰 학원에서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명동, 돈암동, 이태원, 신촌 등 당시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모이던 거리에 해외 뮤지션의 공연이나 뮤직비디오, 한국 미개봉 영화(특히 그때도 상영 금지던 일본 영화) 레이저디스크를 프로젝션 TV나 레이저 프로젝터로 틀어 놓고 술, 음료와 안주거리와 간단한 식사를 파는 A/V 카페가 여러 군데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식당, 술집의 영업이 끝나는 밤 12시 이후 심야가 되면 문을 걸어 닫고 슬쩍 야리꾸리한 것을 틀어주는 일도 많았다. 자정 넘어 영업하면 단속하던 시절. 그러다보니 한국에 가장 먼저 소개된 레이저디스크 타이틀은 살색이 잘 나오는 [[포르노]]였다. 타이틀이 많이 발매되지는 않았으며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다. 예를 들어 비디오로는 나오지 않은 [[킹콩]] 1933년판이 한국에서는 레이저디스크로 삼성에서 정발되기도 해 괴수물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나중에 DVD로도 나왔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정발 괴수물로 레이저디스크로 나온 경우는 이게 유일했다.] 그 외에도 [[SKC]]나 나름대로 이름있는 영상 매체 회사들은 레이저디스크 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국산 영화를 담은 레이저디스크도 제법 나왔다. 심의상 문제가 되는 장면이 아닌데도 장면 삭제가 되어 출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건 디스크 1장에 영화를 다 넣을수 없을 경우 러닝 타임을 줄여 2장 짜리 영화를 1장으로 줄여 출시하는 수작을 부린 것이다. 예전 1~2세대 오타쿠들이 레이저디스크를 VHS로 보기 위해서 [[용산 전자상가|용산]]과 더불어 자주 찾아갔다는 [[회현역]] [[지하상가]]가 있는데 [[형레코드]]를 위시한 몇몇 미디어샵에서 레이저디스크 영상을 VHS로 떠 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당시 직수입 레이저디스크를 보려면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해서 [[리지텍]]이라는 업체에서 캡션 표시기를 생산한 적이 있었다. 2000년대가 되기 훨씬 전에 유선방송, MTV가 활성화되고 노래방 등에 밀려 다 사라졌다. 하지만 노래방에서는 늦어도 이미 레이저디스크에 노래를 저장하던 시대가 훨씬 지난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갖추던 경우가 간혹 있었다. 한국에서도 레이저디스크는 물론 마이크를 꽂으면 레이저디스크 카라오케 기능을 지원하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가 1992년부터 약 3~4년까지 생산되었다. [[인켈]], 삼성 등 여러 회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레이저디스크 카라오케의 보급보다 우리가 노래방 기기라고 부르는 영상 컴퓨터 노래 반주기가 먼저 개발되었다. 레이저디스크 카라오케는 노래방 유행을 타고 나온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레이저디스크에 음악을 저장해서 트는 시대가 훨씬 지나고 디지털 파일로 노래를 저장해서 틀어주는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배경 화면을 깔끔하게 꾸미기 위해 레이저디스크에 저장된 배경 화면을 깔고 노래방 기계를 작동시키는 경우가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남아있었다. 물론 정보 기술이 발달해서 노래방 기기 안에 배경 영상마저 저장할 수 있게 된 1990년대 말 이후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사장되었다. 이유는 노래방 기기 성능이 개선되어 자체적으로 배경 영상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러지 못한 노래방 기기의 신곡이 단종된 것이 주 원인이다. 1990년대 이전 세대라면 노래방에서 반주 음악에 따라 열대 바다 같은 풍경이 나오는 걸 보다가 MTV 영상이 나오는 걸 경험한 경우가 있을텐데 이것이 레이저디스크를 재생하는 노래방 기기였다. 다만 MTV 실시간 방송을 배경 화면으로 끌어당겨 쓰는 경우도 있었다. 레이저디스크 교육 타이틀도 한국에서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곧 이어 등장한 DVD에 의해 급격히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