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클리스 (문단 편집) == 생애[* Reckless: Pride of the Marines, Andrew Geer, 1955, Part One, p.15-119. 저자 앤드류 기어 중령을 비롯한 미 해병대원들이 전 마주의 언급만 듣고 기록한 생애인데다, 전 마주가 자신의 본명을 비롯한 실제 사연을 드러내기 꺼렸기에 아래의 이야기에 각색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저자인 기어 중령도 인정하고 있다. (Geer 1955, p.14) 일단 레클리스는 [[한국마사회]]같은 한국 쪽 기록으로는 공식적으로 경주마로서 기록이 없다. (다만 신설동 경마장 시절 자료는 원체 구하기 어렵기도 하고, 경주마로 데뷔하기 전에 입대했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어미였던 아침해의 혈통과 전적은 관련 자료가 없기에 불명이며, 레클리스의 혈통과 정확한 품종 또한 알려지지 않았다.] == 원래 레클리스는 [[전쟁]] 전에는 [[서울]] 신설동 서울경마장에서 아침해라는 이름의 [[경주마]]로 지내온 제주 암말의 딸이라고 한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30717160010.jpg|width=100%]]}}}|| || 신설동 경마장 풍경 || 당시 이 [[말(동물)|말]]은 신설동 경마장에서 젊은 마주인 김혁문[* 작가에 의해 가명이라고 명시되어있고,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이 키우던 경주마였다. 김혁문은 8살 나이에 가족과 함께 우연히 신설동 경마장을 지나다가 경기장에서 한 적갈색 암말을 본 뒤 말이라는 동물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이 적갈색 암말의 일본인 마주와 기수의 눈에 띄어 귀여움을 받으며 경마를 구경할 수 있었다. 기수가 거친 수말에 기승하다가 낙마할 위기에 처하자 수말의 고삐를 붙잡고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 진정시켜 기수의 목숨을 구하였는데, 이 일에 대한 보답으로 적갈색 암말의 견습 구무원이 되어 조련사와 기수 훈련을 받았다.[* 그냥 일만 시킨 것이 아니라 견습으로 들어갈 때 50엔의 계약금을 주기까지 했다. 이 당시 김혁문의 가족은 모아둔 돈이 15엔이 채 되지 않았고, 월 15전인 보통학교 학비조차 버거워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일본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탐탁치 않게 여기며 김혁문에게 맡기기만 했다.] 이 적갈색 암말에는 일본 이름이 따로 있었으나, 김혁문은 이 말을 아침해라고 불렀고, 마주와 기수도 이 이름으로 불렀다.[* 일본인들은 발음을 어려워하여 불꽃(Flame)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해를 히(火)로 발음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침해는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여러 경주에서 1착을 기록한 명마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병대 대령인 마주와 대위인 기수는 전사하였고, 더 이상 마주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김혁문은 짐말을 돌보는 역할로 강제 징용되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일본인 조련사들로부터 멸시당하는 지옥같은 몇년을 보내게 된다. 아침해를 비롯한 경주마들도 짐말로 징발되어 전쟁 끝에는 마체가 망가질 정도로 혹사당하였다. 다행히도 아침해는 김혁문의 필사적인 보살핌 끝에 몸이 회복되고 김혁문을 기수로 태우면서 은퇴전을 치룰 수 있었다. 은퇴 후에는 아침해에게 걸맞는 수말을 붙여주어 혈통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침해는 첫번째 새끼를 낳은 지 3일만에 산후열로 사망하고 만다. 어미를 너무나도 닮은[* 다 자란 후 어미와 외모가 다른 부분은 오른쪽 앞발의 색이 갈색이었다는 것 뿐이라고 한다.] 망아지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김혁문은 삶의 의지를 잃고 근 1년간 망아지를 다른 망아지들과 함께 방치하다시피 하였으나, 이 망아지가 어미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임을 깨닫고, 어미의 이름을 따와 아침해라고 이름 붙였다. (어미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기 때문에 엄밀히는 '''아침해 2세'''가 진짜 이름이라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이 망아지 시절에 들개한테 습격당한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이후로도 개나 개과 동물을 보면 다 죽여버리려 할 정도로 날뛰었다고 한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umamusme&no=1794108|#]]]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아침해는 어미보다도 더욱 영특하여 훈련을 잘 따랐고 한번 훈련받은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김혁문은 자신이 사랑하던 암말의 유일한 혈육인 아침해를 무척 아꼈고, 다른 망아지들과 같이 달리는 병주 훈련을 할 때 더 빠르고 힘차게 나아가는 것을 즐기면서 1950년 7월에 치를 예정인 데뷔전을 준비하며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신익희]]를 기념하는 일요일의 7번째 경주가 열린 후 신설동 경마장은 폐쇄되었고 아침해에게는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6.25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후 김혁문의 가족이 피난을 갈 때 아침해는 수레를 끌고 가족을 한명씩 태우며 [[서울특별시/영등포|영등포]] 방면으로 한강을 헤엄쳐 건너서[* 한강의 수위가 21세기 현재처럼 깊어진 것은 1987년에 [[김포대교]]와 [[잠실대교]]에 수중보가 설치된 후이다. 1950년에는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아 말이 그나마 헤엄쳐 건너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레클리스 덕분에 김혁문 일가는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이 벌어지기 전 서울을 탈출할 수 있었다.] 서울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부산까지 당도했다. 부산에서 김혁문과 아침해는 항구에서 군수품을 하역하고 운송하는 일을 했다. 이후 국군이 북진에 성공하면서 김혁문 일가는 1952년에 서울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Geer 1955, 80-84] 하지만 누나 김정숙이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자 [[의족]]을 구하기 위해서 결국 아침해를 미해병대에게 팔게 된다.[* 김혁문이 아침해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약 1년 후 해병대 장병들이 새 편자를 갈기 위해 서울경기장을 찾아왔을 때였다. 경마장에 있던 사람들은 망아지 시절부터 지켜봤던 아침해를 기억하며 환영해주었고, 장제사 일을 하던 김혁문은 아침해가 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뛰어와서 서로를 알아보고 머리를 맞대며 재회하였다. 하지만 해병대 장병들은 후술할 페더슨 중위가 아닌 사육사 레이텀 중사의 인솔하에 있었기에 장제사가 아침해의 전 마주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일이 끝났을 때 레클리스의 발굽은 말끔히 정리되었고 장제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김혁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Geer 1955, p.145-146)] 미해병 1사단 5연대 [[무반동포|무반동화기]]소대 에릭 페더슨(Eric Pederson) [[중위]][* [[페더슨 장비]]를 발명한 존 페더슨의 아들.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현지임관|사병 출신 장교]]이다.]는 발사 이후 진지 전환을 해야하는 무반동총[* 무반동총은 직사 화기이고 발사시 대량의 후폭풍이 발생하기 때문에 발사 즉시 위치가 노출되었다. 따라서 진지 전환을 하지 않으면 박격포와 포격의 일차 목표가 되었다.]을 따라가며 탄약을 나르는 탄약병들이 다른 해병들보다 먼저 지치는 것을 확인하자, 진지 주변의 거친 지형을 뚫고 탄약을 나를 수 있는 수송용 군마를 찾다가 아침해를 발견하고 250달러에 구입하였다. 이후 아침해는 1952년 10월 26일자로 [[미 해병대]]에 입대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