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드아일랜드 (문단 편집) == 역사 == 1636년, 매사추세츠 청교도 식민지의 로저 윌리엄스라는 사람은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믿고 싶은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사상을 전파했는데 이에 분노한 영국 법원에 의해 체포돼 본국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종교의 자유의 기준은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라틴어로 cuius regio eius religio, 즉 그 지방 봉건 영주나 도시 자치회 같은 해당 공동체의 정치적 지도자의 종교를 따르는게 일반적인 관용의 척도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한 급진주의자.] 그러나 그는 체포되기 전에 메사추세츠에서 떴고 로드 아일랜드 주변에 정착함으로써 로드아일랜드의 시초를 세웠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마지막으로 가입(1790년 5월 29일)하여 "13주"의 일원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등록된 주들은 [[뉴욕주]]에서 분리된 [[버몬트]], [[버지니아 주]]에서 분리된 [[켄터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분리된 [[테네시]] 등이었으니, 13년 뒤 [[오하이오]]가 들어올 때까지는 로드아일랜드가 사실상 마지막 추가된 주. 다만 로드 아일랜드 주는 주 헌법을 별도로 제정하지 않고 [[영국 국왕]] [[찰스 2세]]가 수여한 식민지 특허장에 근거한 통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에 편입되었다. 이 때문에 로드아일랜드 주에서는 '''일정한 재산을 소유한 백인 남성과 그 장자'''에게만 선거권이 있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커졌으나 주정부는 식민지 특허장에 근거해서 모두 거부해버렸다. 이 때문에 빡친 시민들의 일부는 토머스 도어를 중심으로 1834년부터 인민당을 결성해서 재산과 상관없는 참정권을 요구하였다. 1841년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주의회'''를 결성하여 '''모든 백인 남자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독자적 주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1842년 5월에는 '''주정부의 무기고를 털려다가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대립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문제는 주 내에 존재하는 별도의 2개 주정부에 대한 정당성 다툼이었기 때문에 [[미국 연방대법원|연방대법원]]까지 갔지만 [[통치행위]]라는 개념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선에서 끝나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1844년 토머스 도어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다가 1년 후 석방되었지만 그간의 노역으로 건강이 안좋아졌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이른바 "도어의 반란(Dorr Rebellion)"이라고 부른다. 비록 이 사건에서는 도어가 감옥에 끌려가면서 끝났지만 재산이 선거권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1843년에 주 헌법을 제정하여 '''백인 남성에 대한 보통선거권이 주어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나중에 1851년 도어는 연방 정부에 의해 사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