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군 (문단 편집) === [[로마 왕국|왕정]] 시기 ===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RkqytjPkL._SX368_BO1,204,203,200_.jpg]] 초기 로마군은 부족 단위로 구성된 집단을 [[왕]]이 이끄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왕이 [[징병제]]로 제도를 개혁하여 이것이 정착된다. 기원전 500년 이전까진 대략 9,000명 정도를 징병했는데 6,000명 정도는 중보병이었고 2,400명은 경보병, 그리고 600명은 기병으로 구성되었다. 왕이 두 명의 [[집정관]]으로 바뀌면서 이 9,000명은 두 집정관이 나눠서 지휘하게 되었는데 따라서 각각 4,500명씩 지휘하게 되었다. 소규모 국가답게 당시 잘 나가던 북쪽 [[에트루리아]]와 바다 건너 [[고대 그리스|그리스]]를 적극적으로 모방했으며 에트루리아에게 패배한 이후에는 밀집대형 전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팔랑크스]]와는 달리 로마는 백인대를 구성했는데 이는 소규모 부대로 주변 도시들을 약탈할 필요가 원인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군인 대부분은 농경기엔 농사를 지었다. 덕택에 원정에선 약한 모습을 종종 보였는데, 큰 문제가 안 되었던 것이 당시 '로마'는 현재의 [[로마시]]보다 작았기에 방어적 전투 혹은 로마 주변에서 전쟁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용하던 장비는 에트루리아군이나 그리스군과 큰 차이가 없었으리라 추정된다. 자세히 알기 힘든 것이 로마군의 아무리 예전 모습을 추정하더라도 공화정 시기 정도이기 때문에 왕정 시기의 로마군에 대해선 제대로 알기 힘들다. 일단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고, 그나마 남아 있는 사료 등도 믿기 힘든 게 많아 제대로 조사하기 힘들다. 병력 구성이 어떤 식이고, 어떤 장비를 착용했고,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자세히 안 남아 있고, 단편적으로 있어서 거의 상상의 영역으로 메꾸는 식이다. 사료가 적으면 유물이 이를 보완해주면 되는데, 유물도 적어서 연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