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텐부르크옵데어타우버 (문단 편집) == 역사 == [[프랑크 왕국]] 시대인 9세기에 처음으로 도시의 존재가 기록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는 [[자유도시]][* 지방 영주나 교회에 속하지 않고 국왕의 중앙 주권에 소속된 도시로 납세와 군대동원 의무 면제의 혜택이 부여되었다.] 로 지정되어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7세기 독일을 뒤흔든 [[30년전쟁]]에 휩쓸리기도 하였으나 '''능력자의 출현''' 덕분에 용케도 파괴의 참화를 모면하여 오늘날까지 옛 도시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1631년 10월 [[가톨릭]]군의 지휘관 [[틸리 백작]]이 로텐부르크를 점령했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 살던 소년이 그 지역의 [[와인]]을 권했고[* 독일, 특히 바이에른 지방이 맥주로 유명하긴 하지만 로텐부르크가 포함된 프랑켄 지역은 백포도주가 더 유명하다.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에서는 특산물 광고하려고 만든 전설일거라고 말한 바 있다. 얼마 안되는 전설로 여러 관광상품을 만드는 유럽의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 것.] 그 와인맛에 감탄한 백작이 "('''3.2리터짜리''') 큰 잔에 부은 와인을 '''원샷'''하는 능력자가 있으면 도시의 약탈과 파괴를 관두겠노라"고 선언했다. 이에 당시 시장이었던 누슈(Nusch)가 나서서 '''다 마셨다.''' 그리고 시장은 며칠 동안 [[꽐라]]가 되어 잠만 잤다는 얘기도 추가된다. 아무튼 도시를 약탈하여 한몫 챙길 꿈에 부풀어있던 틸리 군은 망연자실하며 물러났지만 그 덕분에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 유산은 남았으니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야기는 [[대한항공]]의 광고에도 소개된 바 있으니 기억하시는 분도 많으실 듯. 또한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로도 소개된 바 있는데, 여기서는 큰잔이 아니라 와인저장에나 쓸법한 큰 오크통으로 묘사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GZmeJxoUJdg|#]] 지금도 로텐부르크 시청사의 시계탑에서 매 정시마다 이 장면을 재현한 인형이 나온다고 한다. 마셔라 마셔라! 하면서 갈구는 틸리 백작의 모습도 보인다. 다만 위치상 다소 보기 힘든 곳에 있다는건 함정. 전설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다 마시고나면 관광객과 시민들이 존경의 박수를 친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으로, 과거 모습을 그려둔 천으로 가려두고 있다.[* 딱 위의 사진 반대편으로 쭉 걸어들어가면 보이는 건물이다.] 아무튼 이 전설 덕분에 지금도 백포도주가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다. 하지만 영문위키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약탈을 당했고 몇 년 후 흑사병이 번져 몰락했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Rothenburg_ob_der_Tauber#The_Thirty_Years'_War|#]] 동그란 모양의 고운 [[설탕]]을 뿌린 [[페이스트리]] [[과자]]인 [[슈니발렌]](Schneeballen)[* 맛도 다양하고 조각조각 깨먹는 방식으로 먹는 재미도 있어서 선물용으로 추천. 특히 초콜릿 맛이 진하고 맛있다.]도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다만 어른 주먹 만큼 크기가 커서 먹다가 입과 손이 온통 설탕 투성이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망치나 단단한 것으로 깨서 먹는 편이 낫다. 어쨌든 옛 풍경을 간직한 덕분에 19세기 말 쯤 되면 전통적인 모습이 유럽 전역에 알려져서 관광업이 흥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나치]]에게도 주목을 받아서, [[나치 독일]] 시절에는 나치에 의해 가장 독일적인 도시의 전형으로 선정되고 이상적인 나치 공동체를 세우려는 운동이 벌어져서 독일 전국에서 로텐부르크 관광 상품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유대인]]들이 일찌감치 도시에서 추방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로텐부르크는 살아남았다. 독일 본토로 연합군이 진격하고 독일의 패배가 눈앞으로 다가오던 전쟁 말기, 로텐부르크에도 당연히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미국 전쟁부 장관인 존 맥클로이는 로텐부르크의 역사적인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 사령관에게 방위군과의 전투에 앞서 먼저 협상을 하게 하였다. 협상의 내용은 방어(그리고 폭격과 포격으로 도시는 파괴)와 후퇴(하지만 도시는 무사) 중 양자택일하도록 한 것으로, 결국 방위군은 후퇴를 선택[* [[아돌프 히틀러|히틀러]]의 후퇴 금지 및 사수 명령은 아직 유효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하였고 로텐부르크는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비록 피해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어서 폭격으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건물 수백채가 파괴되기는 했지만 다른 많은 도시들이 완전히 박살난 것에 비하면 피해가 매우 적어서 전후 매우 빠른 속도로 도시가 복구되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