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록발라드 (문단 편집) === 90년대 === 90년대는 지금까지도 가장 높은 국내[* K팝 아이돌 음악이 글로벌화되면서 해외 직구도 늘어난 오늘날과 직접 비교하긴 환경적 차이가 있다.]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던 시절인만큼, 이런 가요계 호황에 힘입어 록발라드 장르도 성행했다. 단적으로 1997년 발매된 [[N.EX.T]]의 싱글 [[Here, I Stand For You]]가 약 70만 장이 팔렸다.[* 참고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 80만 장이 팔렸다.] 이 장르가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시기는 대략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80년대 [[부활(밴드)|부활]]과 [[시나위(밴드)|시나위]]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김종서(가수)|김종서]]가 1992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대답 없는 너]], [[겨울비]]를 연달아 히트시킨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엑스 재팬]]의 예상치 못한 한국 인기로 일본식 록발라드 감성까지 알려지면서 한층 더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여파는 1993년 부활의 [[사랑할수록]], 1995년 [[김정민(1968)|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뱅크(밴드)|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1996년 [[최재훈(가수)|최재훈]]의 널 보낸 후에, 1997년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금지된 사랑(노래)|금지된 사랑]], 1998년 [[김민종]]의 착한 사랑, 1999년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노래)|천년의 사랑]] 등으로 이어졌다. 당시 록발라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음악그룹)|듀스]]같이 새롭게 떠오르는 장르였던 [[힙합]], [[룰라]]와 [[코요태]] 등 댄스음악, [[김건모]], [[신승훈]], [[이승환]] 등 가요계의 호황을 이끈 주역들 사이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탑은 아니더라도 엄연히 주류 장르 중 하나로 차트의 상위권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며 위상을 알렸다. 이 외에도 [[이브]], [[김성면|K2]] 등 많은 가수들이 활동하면서 한국형 록발라드 음악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록발라드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가수들이 많이 나오면서 호응을 받아 90년대 발라드 히트곡 중에는 록발라드 넘버도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