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롤리타 (문단 편집) === 해석 === >나는 그 효과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표지가 암시하고 있는 그 순진함은 내게 험버트 험버트의 시선이 향하는 불공평한 대상이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롤리타』는 (어휘적인 곡예, 선정성, 간헐적인 유머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고 슬픈 책(돌로레스 혹은 ''비애'')이며, 계속 그런 책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섹시한 책이 아니다. ''에로틱''한 책도 아니다. >---- >피터 멘델선드, 자서전인 《커버: 북디자이너의 표지 이야기》에 나오는 글 〈『롤리타』 표지 만들기〉에서 [[https://emmanuelpolanco.com/Lolita|엠마누엘 폴란코의 표지 디자인]]을 언급하며. 언뜻 보면 어린 소녀한테 성인 남성 하나가 놀아나는 이야기 같지만, 조금만 깊이 읽어보면 사실은 __'''미사여구로 포장한 폭력의 이야기'''__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많은 학자들과 서평가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보코프는 교묘하게 험버트가 얼마나 잔인하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인지 보여 주는 힌트를 곳곳에 잔뜩 집어넣어 놓았고, 험버트가 서술하는 온갖 미사여구를 섞은 매혹적 사랑 이야기가 결국 롤리타에게는 선택의 여지 없이 참아야만 했던 성적 학대이자 [[강간]]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롤리타는 감기에 걸려서도 험버트와 [[성관계]]를 가져야 했고, "왜 당신과 이런 더러운 짓을 해야 하느냐"라며 험버트에게 화내기도 한다.] 롤리타는 미적으로는 아름다운 러브 레터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공감 능력이 철저히 결여된 남자의 거창한 변명이기도 하다. 내용을 읽다 보면, 험버트는 롤리타를 '''님펫(Nymphet)'''이라 부른다. 님펫은 [[님프]](Nymph)에서 유래된, 험버트가 만들어낸 단어이며, 님프를 연상시켜 동화적 느낌을 내도록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린 여자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페도필리아]](소아성애)적인 그 욕망을 동화적 느낌으로 가릴 수 있는 '''교활한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즉, 저 님펫이라는 단어부터가 험버트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상당히 미화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님펫이라는 단어를 님프(Nymph) 와 [[꼭두각시]]를 의미하는 퍼펫(Puppet)의 합성어로 보기도 한다. 즉, 이 말대로라면 험버트는 자신의 페도필리아 성향을 님프라는 동화적인 느낌을 내어 포장하는 동시에, 롤리타가 험버트 본인의 성적 욕망을 위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험버트가 롤리타를 미화하며 찬양하지만, 그녀의 내적 고민이나 괴로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예를 들어 롤리타의 학교 선생이 "돌로레스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적으로 미성숙하다"고 하자, 남자아이들을 초대해 주는 것 외에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적 미성숙은, 어린 시절의 [[강간]] 트라우마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험버트와의 여행 장면에서, 롤리타는 어떤 정상적인 가족[* 맥크리스털네 가족으로, 1부 험버트의 일기에 등장하는 롤리타의 학급 친구 명단에 있다.]과 대화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게다가 롤리타는 험버트에게 강간당한 뒤 '제발, 제발 그만-' 하면서 운다. 돌로레스 헤이즈와 험버트의 롤리타의 관계가 모방의 대상과 모방물의 관계와 흡사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나보코프는 단순히 범죄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창작물을 통해 모방=창작=예술이 대상을 완벽히 묘사할 수 있는지, 나아가 그러한 묘사의 정확성이 미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를, 즉 대상과 창작자와 창작물 그리고 독자까지[* 어떤 의미에서 험버트는 돌로레스 헤이즈라는 대상의 독자이다.]의 관계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간 장면은 철저히 험버트 본인 시점에서만 묘사한다. 독자가 험버트의 현란한 말솜씨에 끌려 공감하다, 얼핏 보이는 '''"롤리타는 험버거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했다"'''와 같은 험버트의 서술에서 드러나는 추악한 현실이 선사하는 강렬한 대비에 흠칫 놀라게 되는 부분이 많다. 나보코프의 뛰어난 필력 덕분에 가능한 것. 이름부터가 희극적인 험버트 험버트를 향해, 작가는 사실 상당히 냉소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롤리타가 12살에 찰리 홈즈와 [[성관계]]를 가진 것이나[* 성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주위 친구들의 행동을 멋모르고 따라한 것이라, 하고 나서도 어리둥절해하기만 하지만.] 성적 호기심을 드러내며 험버트를 유혹하는 듯한 장면이 있다고 해서 롤리타를 [[팜 파탈]]로 분류하고, 험버트를 롤리타의 유혹에 넘어간 가련한 남자라고 평가하는 독자들도 다소 있는 듯 하지만, 롤리타의 이 '''유혹'''[* 롤리타의 어머니가 죽기 전 같이 살던 시절의 유혹을 말한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소녀가 성인 남성을 선망함으로써 어른의 역할을 연습[*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역할 행동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것이다. 물론 어린아이들도 하는 일. 여자아이의 경우 성인 여성을 보고 여성적 행동을 학습하고, 성인 남성을 보고 연애를 연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하는, 발달상 이상할 것도 없는 행동임을 알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롤리타는 편모가정에서 자란 아이였다. 게다가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때 나타난 친절하고 잘생긴 아저씨에게 부모에게 부족하게 받았던 사랑을 원했던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엄마 샬롯 헤이즈는 자기 배로 낳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롤리타를 '''자식 취급하지 않는 모습'''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처음 험버트와 결혼했을 때는 둘만의 결혼생활을 즐기기 위해 롤리타를 짐짝 취급하며 멀리 보내버리려고 하고, 나중에 험버트가 롤리타에 대해 쓴 충격적인 일기들을 보고도 한다는 소리가 '''"늙은 헤이즈는 바보가 아니야."''', '''"다시는 그 형편없는 계집애를 보지 못할 줄 알아요!"'''였는데,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접근하지 못하게 하지, 새 남편이 욕정을 품은 상대가 12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불륜녀에게 하듯 질투하지 않는다. 애에 대한 [[모성애]]라곤 단 1도 없는 최악의 [[막장부모]]다.] 험버트가 유혹당했다고 말하는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롤리타는 그냥 제 눈에 근사하게 보이는 성인 남자 앞에서 성인 여자를 흉내내 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방식이 좀 거칠고 요령 없기는 했지만, 험버트의 시선을 빼고 내용만 본다면 [[사춘기]] 소녀의 어리광으로 귀엽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유아들이 어렸을 때 흔히 하는 "○○이랑 결혼하고 싶어."라는 말이 "너와 이렇게 평생 친하게 지내며 재밌게 놀고 싶다."지 진짜로 "결혼하고 싶다."라는 의미는 아닌 것과 근본적으로 똑같은 상황이었던 것.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던 롤리타에게, 언제나 친절한 험버트 아저씨는 유사 아버지 겸 좋은 연애 연습 상대였던 셈. 만에 하나 롤리타가 실제로 유혹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가정할지라도, '''정신 제대로 박힌 어른이라면 거절하고 잘 타일러야 맞는 것이다.''' 그러니 험버트가 당한 일은 철저하게 자업자득이라는 점, 피해자는 롤리타라는 점을 잊지 말자. 애초에 험버트가 [[강간]]했을 때, 롤리타는 전과 똑같이 그저 장난삼아 성적인 흉내를 낸 것에 불과했고, 자기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잘 몰랐다.[* 기껏해야 아저씨가 당황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른을 당황시키기 위해 친 장난에 불과했던 것.] 그러나 험버트는 자기 행동의 결과가 어떨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롤리타가 멋모르고 장난치는 것뿐임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유혹당했다고 포장하고 강간한 것. 이후 롤리타의 엄마가 죽자 오갈 데 없어진 롤리타의 신세를 이용해, "날 신고하면 너도 [[고아원]]에 간다"라고 위협하며 지속적으로 강간했다. 게다가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롤리타가 자라 어른이 되어 내 취향이 아니게 되면, 롤리타를 [[임신]]시켜 딸이 태어나면 그 애를 [[키잡]]할까' 하는 미친 생각도 했다. 험버트가 "로가 늙어서 볼품 없어졌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로를 사랑한다"라는 내용의 일기를 썼을 당시 롤리타는 겨우 10대 후반이었다는 점에서, 험버트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애초부터 교수로 일했던 험버트가 감옥에서 고백록을 써 죄인이 된 자기 자신을 최대한 방어하려 든 것으로 볼 수 있겠으나, 마지막에는 자신의 행동을 '이런 [[근친상간]]의 패러디'라며 자책하기도 했고, 롤리타에게 갖고 있던 모든 돈을 준 뒤 롤리타를 험버트에게서 빼내 성적으로 학대한 퀼티를 찾아내 죽이기도 한 것으로 보아, 만행을 저지르고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개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과연 어느 쪽일지는 읽어 보고 결정하자.[* 다만 극작가 퀄티와 문학교수 험버트가 사실상 동일한 층위의 인물이며, 실제 이들 간의 결투가 미 서부의 그것과는 다르게 추하고 우스꽝스럽게 끝이 난다는 점에서 험버트가 모든 일의 원흉인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분신에 지나지 않는 퀄티를 살해하여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현대의 독자가 보아도 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자주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하지만, 단순히 한 인간의 도착적 성벽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로 올수록 탁월한 문학성 덕분에 높이 평가되는 소설이며, 관련된 연구도 점점 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문학 연구가들에게도 본격적으로 탐구되는 분위기. 물론 책은 무엇보다 독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소설의 문학성과는 별개로, 내용 때문에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페도필리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강력히 부정했으며, 험버트 또한 혐오하는 인물이라고 못박았다. 애초에 소설 자체가 주인공이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돌로레스와 진정한 의미의 교감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을 우화적으로 꼬고 있는 내용이다. Dolores는 꽤 흔히 쓰이는 여자 이름인데, [[라틴어]] 및 [[스페인어]]로는 '''고통'''[* 복수형이다. 단수형은 dolor.]이라는 뜻이다. 작가가 노리고 지은 이름. [[유럽]]계 [[이민]]인의 눈으로 본 1950년대의 [[미국]]의 정경 측에서도 자주 해석된다. 또한 나보코프가 [[러시아]]에서 추방당해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 고국을 그리며 살았다는 점에 착안해 험버트가 작가처럼 과거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으로, 즉 단순 [[소아성애]]일 뿐 아니라 회귀 심리가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험버트가 롤리타를 처음 봤을 때 장면을 살펴보면 롤리타가 13살 때의 여자친구와 대단히 닮은 모습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youtube(bhQPavmWnT8)] 그런데 상기의 해석이 과연 맞는 해석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나보코프는 철저한 [[탐미주의]] 문학가였으며 문학에서 윤리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언어유희, 독자를 가지고 노는 트릭, 믿을 수 없는 화자, 아이러니 등인 것으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나보코프가 진정으로 의도하고자 한 바는 롤리타를 윤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이들을 조롱하고자 한 것일 수 있다. 한림대 연구교수인 [[로쟈|이현우]]가 이 해석을 따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