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마니아/역사 (문단 편집) === 1346 ~ 1867, 공국들의 시대: [[왈라키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 [[트란실바니아 공국]] === 중세에 번영을 누렸던 [[불가리아 제국]]과 동로마 제국이 차례로 몰락하자 현재 루마니아 영토 내에서도 여러 공국들이 들어섰다. 오늘날 루마니아의 남부에는 [[왈라키아 공국]](1351 ~ 1859)이, 그리고 북동부와 오늘날 몰도바에는 [[몰다비아 공국]](1346 ~ 1859)이 들어섰다. 몰다비아의 절반인 프루트 강 동부는 현재 [[몰도바]]로 독립해 다른 나라가 되었고, 트란실바니아는 1918년에 루마니아와 합병될 때까지 줄곧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그냥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다. 지형상으로도 트란실바니아는 카르파티아 산맥에 의해 다른 두 지역과 분리되어 있다.] 발라히아[* 영어 위키백과의 [[http://en.wikipedia.org/wiki/Wallachia|관련 항목]] 참조.]는 발라키아 혹은 왈라키아라고도 읽는다. 현재의 수도인 [[부쿠레슈티]]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698년 이래 왈라키아 공국의 [[수도(행정구역)|수도]]였으며 몰다비아 공국의 수도였던 [[이아시]]는 이아시 대학을 필두로 현재 루마니아의 중요한 교육도시로 입지를 굳혔다.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오랜 시간 나뉘어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의 지역의 영웅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왈라키아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은 [[불가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 [[폴란드 왕국]] 등에게 포위된 채 발전이 지지부진했으며 두 나라로 나뉘어져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으로 지낸 구도가 5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트란실바니아의 경우, 두 나라와 맥락이 좀 다르다. 왈라키아 출신으로 트란실바니아 총독을 지내면서 [[헝가리 왕국]]을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지켜내어 [[헝가리]]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후녀디 야노시]]는, 현대의 기준으로는 [[헝가리인]]이지만, [[루마니아]]에서도 영웅시하고 있다. 또한 후녀디 야노시의 아들로 '''헝가리의 국왕'''이었던 [[마차시 1세]] 같은 경우에는, 루마니아의 국가에서도 '위대한 그림자(mărețe umbre)', 즉 '위대한 조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다만 마차시 1세 부자를 루마니아에서도 추앙하는 것은 트란실바니아에 대한 루마니아의 [[역사]] 주권 확립 의도가 다분하다. 트란실바니아에서 [[루마니아인]]은 수 백년 동안 [[농노]]로서 사람 대우도 못받았기 때문에 루마니아인 혈통이 조금이라도 섞여있으면 어떻게든 부풀려야 영토 점유 정당성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1570년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 형식의 [[헝가리인]] 자치 공국인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들어섰다. 1699년 이후로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1867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재편되면서 다시 [[헝가리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전국이 되면서, [[루마니아 왕국]]이 민족자결주의를 핑계로 강제편입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