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순감옥 (문단 편집) == 역사 == 1902년에 의화단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러시아령 다롄|러시아령 관동주]] 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1843~1918)가 수송로 보급을 명분으로 동북3성을 점령했는데, 이에 항의하는 중국인들을 무차별 폭력진압해 구속시켰다. 이에 따라 기존 감옥이 초과수용 상태라 알렉세예프 총독이 니콜라이 2세 황제에게 건의해 뤼순 원보방에 새 감옥을 착공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으로 건설이 중단된 채 러시아군은 뤼순을 일본에 뺏겼고, 1907년까지 26,000평방미터 부지에 감옥 267개를 더 지었다. [[관동주|일본 점령기]] 동안 중국인을 비롯해 한국인 독립운동가, 러시아인 등이 수감되어 처형까지 당했고, 초기 정식명칭이 관동도독부감옥서였다가 1920년에 '관동청감옥', 1926년 '관동청형무소', 1934년 '관동형무소', 1939년 '뤼순형무소' 등으로 각각 변경됐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감옥은 소련군에 접수되어 폐쇄됐고, 1971년에 중국 정부가 인수해 '제국주의침략유적보관소'로 개조됐다. 1988년 중국 국무원으로부터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돼 문화재가 되었다. 그러나 소재지인 뤼순이 군항지라 군사기밀 보호를 이유로 외국인들의 출입 및 사진촬영이 금지됐다. 한국 언론에 공개된 사례로는 1988년 삼일절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78404|KBS 9시 뉴스와]] 1997년 광복절 [[MBC 뉴스데스크]] [[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984502_30717.html|'카메라출동'이었다.]] 2009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즈음해 외국인에게 문을 열었고, 7년후인 2016년 [[KBS 2TV]]의 예능 [[1박 2일]]에서 [[1박 2일/2016년/하얼빈을 가다|이곳을 직접 방문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