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슈롄 (문단 편집) == 상세 == [youtube(PynRL0PKjoc)] '''뤼슈롄 전 부총통 인터뷰''' [[일제강점기]] [[대만]] [[타오위안]]에서 태어났고, [[국립타이완대학]]을 졸업하였다. 1979년 벌어진 [[대만]]의 [[민주화]] 운동인 [[메이리다오 사건]] 당시 1급 주동자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이후 [[특별사면]]되었다. [[민주진보당]]의 창당 멤버로 이후 1997년 [[타오위안]] 현장에 당선되었으나, 2000년 [[대만]] [[대만 정부총통 선거|정부총통 선거]]에 [[천수이볜]]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여 부총통에 당선되어 사퇴하였다. 대만독립에 있어 원친근린론을 주장하면서 중국을 먼 친척이며 가까운 이웃이지만 현재 대만과는 구별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부총통 기간 동안 [[대만어]]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민진당(대만)|민진당]] 내에서나 [[여론조사]]에서나 상당히 고전을 많이 했다. 민진당 내에서 주석(대표)을 맡기도 했지만 대만어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당내에서도 비토가 나왔으니... 게다가 [[천수이볜]]과 더불어서 뤼슈렌 부총통은 처음부터 [[부정부패]] 혐의가 있어서 임기 8년 내내 반대파의 공세에 시달렸고 2008년 [[중국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부총통 시절의 행적은 결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대만 민주진영의 원로로서는 그럭저럭 인정받는 편. [[2004년]]에 [[천수이볜 암살 미수 사건]]이 터졌을 때 천수이볜과 같이 유세하고 있던 중에 오른쪽 무릎에 찰과상을 입었다. 2008년과 2012년에 민주진보당 총통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셰창팅과 차이잉원에 각각 밀려 탈락했다. 2018년 11월로 예정된 대만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에서 수도인 [[타이베이]] 시장으로 출마할 뜻을 밝혔으나 경선에서 탈락했다. 제15대 중화민국 총통 선거에 무소속 자격으로 대선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포기했다. 이후 [[한국]]을 방문해 [[대한민국 국회의사당|국회의사당]]에서 [[한국-대만 관계]] 증진의 일환으로 한국판 [[타이완 관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2019년 [[차이잉원]] 총통의 [[화독]] 노선에 불만을 품고 [[민주진보당]]을 탈당, [[천수이볜]]이 창당한 [[일변일국행동당]]에 입당했다. 2021년에는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china/2021/10/28/BXTDA22JFFDGPK7YMFFSUDTVLE/|"대만은 단 한시간도 中과 같은 나라였던 적이 없다”]] 라고 말하며 그 근거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