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경호텔 (문단 편집) === 배경 === 대한민국이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두던 1980년대에 그나마 남은 경제력이 있었던 북한은 한국에 지지 않기 위한 체제 경쟁에 몰두해 있었다. 한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1988 서울 올림픽]] 개회 확정 이후 외교적으로도 세계적인 영향력이 급속히 증대했고, 북한 역시 [[제3세계]] 외교에 더욱 공들이며 동시에 [[아웅산 테러]] 등으로 지속적으로 한국의 국제적 지위에 위협을 가해 왔다. 내부적으로도 북한은 서울의 [[서울신라호텔|신라호텔]]을 보고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서 평양에 [[고려호텔]](45층/143m/1985년 8월 9일 완공)을 건축했고,[* 그래도 이쪽은 류경호텔과 달리 북한 대표 호텔로 제 역할을 하긴 한다.] 서울의 [[서울종합운동장]]을 보고 평양에 [[릉라도 5월 1일 경기장]](1989년 5월 1일 완공)을 건축했다. 또한 [[주체사상탑]], 평양 개선문 등 다양한 대형 건축물들이 건축된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1984년에 [[대한민국]]의 [[63빌딩]]을 보고[* [[63빌딩]]은 1983년 11월 5일에 상량식을 했다.] [[김정일]]이 체제 경쟁으로 건설 지시를 내렸다.[* 비슷한 일화로 1992년 대한민국을 방문했던 북한의 부총리 [[김달현(1941)|김달현]]이 [[포항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에 이어 [[경주시]]를 방문해 [[천마총]]을 보고는 "이 무덤을 보니 [[동명왕릉]]의 높이를 높여야겠다"고 발언했고, [[유홍준]]의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 의하면 실제로 위 김달현 일화 직후 김일성은 동명왕릉이 "1,500년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서 지금의 높이가 된 것이니 원래 높이는 얼마나 더 컸겠느냐"며 비바람에 깎이기 전의 원래의 높이를 계산해 그만큼 더 높이라고 교시를 내렸다고 한다. [[열폭|별의별 사소한 부분에서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 북한의 집착]]을 알 수 있는 부분들.] 지금에야 이보다 훨씬 층고가 높은 건물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63빌딩]]은 당초 [[일본]] [[도쿄]]에 있던,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선샤인 60]](240m)를 9.6m 정도 제치고 아시아 최고층 건물에 올라섰다(지붕 높이 249.6m, 안테나 높이 274m).[* 이 지위는 1986년 [[싱가포르]]에 [[원 래플즈 플레이스]](280m)가 건설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이 때문에 아마 김정일이 '100층짜리 호텔 건물'을 지으라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