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덩후이 (문단 편집) ==== 친일 ==== [[파일:20130408zf0001.jpg]] 젊은 시절 [[검도]] 복장을 한 모습. [[대만]] 정치인 중에서도 대표적인 [[친일파]]이다. [[대만일치시기]]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리덩후이는 그런 걸 떠나서 같은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친일]] 성향을 보여준 인물이다. 특히 이 친일이라는 게 일본 내 우익 인사들과 교류하는 것이 많다 보니 그의 행보 역시 우익적 행보로 보일 때가 많아 문제였다. 물론 대만일치시기에 대한 부정적 발언도 했지만 또 친일은 유지한다는 점에서 묘한 인물이다. [[파일:118124060015516429084.jpg]] [[파일:118124068608416429574.jpg]] [[파일:01oys0611-0201.jpg]] 심지어 '''[[야스쿠니 신사]]에도 참배'''했다! 그것도 방일 시마다 매번 빠지지 않고 참배했다. 본인의 형 리덩친(李登欽, 일본명 이와사토 다케노리(岩里武則), [[1921년]] ~ [[1944년]] [[12월 15일]])이 합사되어 있다고 하며, 리덩친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 해군 병으로 입대해 필리핀에서 전사했다. 겸해서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중국]]과 [[한국]]이 만들어낸 문제라고 해서 제대로 [[특정 아시아|중국과 한국]]의 [[어그로]]를 끌었던 적이 있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070610000267|#]]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일본]] [[https://www.segye.com/newsView/20080925004255|편]]을 들기도 했다. 당시 [[마잉주]] 정권의 [[대만 외교부]]는 "조어도는 중화민국의 영토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발언을 철회할 생각은 없는지 2015년 7월말에는 다시 일본을 방문해서 해당 발언을 반복했고, 중국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총통이었던 [[마잉주]]는 대만 유력지 <중국시보>에 리덩후이의 말에 반박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마잉주]] 당시 총통은 대만 야당한테 친중 반일 정치가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던 상태였다. 일단 본인은 자신의 대일 외교 방향이 친일도 반일도 아닌 '우일'(友日)이라고 해명하기는 했다.~~어째서인지 [[友|글자를 살짝 비틀면]] [[반일|反日]]이 된다.(...)~~] 리덩후이 본인의 모어는 당연히 [[대만어]]이고, 제2언어가 [[일본어]], [[표준중국어]]는 제3언어이다. 일본어가 표준 중국어보다 편하다고 하며, 지금도 표준 중국어는 유창한 편이 아니라고 한다. 표준 중국어를 하는데 대만어 말투가 많이 들어가 있다. 대만 독립에 매우 긍정적이기에 중공에 비판적인 일본 인사들과의 교류가 많다. 그리고 이들과 교류하기 위해 일본을 자주 찾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입국 비자 내지 말라고 일본을 압박하지만 일본이 [[병먹금|그걸 들어줄 리는 없다.]] 일본 인사들과 인터뷰를 할 때에는 일본어를 쓴다고 한다. 관련 발언이나 주장들을 근거로 종합하자면 리덩후이는 [[미국]]보다는 [[일본]]이 [[대만]]의 생존 여부에 대해 지리적, 전략적으로 보다 큰 이해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일본이 중공에 직접 맞설 정치/군사 대국의 행보를 본격화함으로써 대만의 후견 국가 내지는 제1동맹 역할을 하는 것을 기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리덩후이가 일본의 반공 진영,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한 정치/군사 대국화 지지 세력과 밀접히 교류했던 것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파일:attachment/a02bc70c.jpg]] 만화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적이 있다. 대상이 바로 [[에다지마 헤이하치]]. 옆의 두 사람은 각각 [[츠루기 모모타로]]와 [[다테 오미토]]를 코스프레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8월 22일]]에는 [[https://www.yna.co.kr/view/AKR20150822033400089|일본 우익 잡지 중 하나인 'Voice'와의 인터뷰]]에서 "70년 전에는 일본인…조국(일본 제국)을 위해 싸웠다."는 발언을 하여 대만 정치권 내부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원래 "70년 전에 일본인이었다."는 발언은 과거 일본 우익 인사들과의 인터뷰에서 꽤 자주 언급했었다. 리덩후이는 이 발언을 좀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반복했고 대만의 총통 선거와 겹쳐 다시 이슈화된 것으로 보인다. [[훙슈주]]는 "국민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면 나라가 일본에 다시 넘어간다!"고 발언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전직 총통 예우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http://kor.theasian.asia/archives/143657|#]] 반면 [[차이잉원]] 주석을 비롯한 [[민주진보당|민진당]] 측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결국 리덩후이의 발언은 친일, 반일 논란을 넘어서 대만에 대한 중화민국 정부의 지배 정당성, 대만과 중국 본토와의 관계 등 보다 민감한 역사, 정치, 사회적 논란에 관한 대만 내부의 첨예한 논란을 드러낸 일면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15년 9월 13일에는 본인도 그동안의 발언이 좀 과했다고 느꼈던지 "대만이 줄곧 외부의 통치를 받고, [[https://www.segye.com/newsView/20150914004785|대만인이 일본의 '노예'로 전락했던 점을 대만인으로서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본이 패전 후 대만에 대한 통치권을 포기하여 대만이 중화민국의 성(省)이 되었는바, 설상가상으로 "[[일본 제국|개]]가 가더니 [[중국 국민당|돼지]]가 온 꼴."[* 이 표현은 리덩후이 개인만의 발언은 아니며, 2차 대전 후 대만을 접수한 국민당의 실정(失政)에 실망한 대만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퍼진 이야기였다. [[2.28 사건]] 문서 참고.]이라고 말하여 국민당 정권 디스는 빼놓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