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승기 (문단 편집) == 영향 == 비날론으로 섬유부족 문제를 해결 하였고, 북한 주민들도 비날론으로 만들어진 옷에 대해 좋은 반응을 내놓았지만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를 건설하려 할때 리승기 박사와 우수한 박사의 중간 공정을 거치자는 충언을 무시한채 무리하게 신기술을 적용하겠다며 공사비를 필요이상으로 늘려놓았고 결국 만들려는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는 가동도 못한채 고철덩어리가 되었으며 비날론도 [[고난의 행군]]으로 제대로 만들지 못하게 되며 북한내에서 점차 쓰이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북한 정권이 순순히 실패를 인정할 리도 없고 주체과학이란 [[궤변|얼토당토 않은 담론]]을 들고나왔기에 그 핵심인 리승기의 지위는 굳건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김일성이 장수를 빌며 [[산삼]]을 보낸바 있으며 그의 90살 생일에는 김정일이 직접 생일상을 가지고 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북한 국민들에게도 매우 큰 존경을 받는 인물들 중 한명이다. 비날론은 비록 일반 합성 섬유에 불과 하지만[* 밧줄 등 산업용 섬유 용도로 쓸만한 기계적, 화학적 특성을 지녔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의복 용도로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너무 번들거리고 주름이 쉽게 지고 보온성도 없고 수용성이라 물에 한번 빨면 확 줄어들어버리는지라 작업할때 막 입는 용도로 쓴다던가 걸레짝으로 쓴다고 한다.] 북한 정부에선 주체 섬유라고 거창하게 선전을 했으며 북한에선 가장 뛰어난 과학자 중 하나로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한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워너비이다. ||[[파일:external/www.jajuminbo.net/b__img_2271%5B0%5D.jpg|width=300]]|| ||평양 신미리 애국렬사릉의 리승기 박사의 묘. || 이후 1996년에 향년 90세로 사망하여 국장이 거행되었고 평양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